도화동 선미옥
6월의 먹은 콩국수와 8월의 먹은 콩국수는 다르다. 왜냐하면 여름의 시작과 절정이니깐. 이래서 T.P.O가 중요하다고 하나보다. 시원하고 걸쭉한 콩국수에 송글송글 맺혀있던 땀이 사라진다. 굴짬뽕은 겨울이듯, 콩국수는 여름이다. 마포구 도화동에 있는 선미옥이다.
늦은 점심시간, 직원분들이 엄청난 양의 버섯을 손질하고 있다. 여기서 그동안 먹었던 음식 중에 버섯은 없었는데라고 혼잣말을 하다, 메뉴판을 바라보고 아하~했다. 왜냐하면 버섯은 2인 이상이라 먹고 싶어도 못 먹었던 얼큰해물용이기 때문이다.. 늘 혼밥하러 오니 얼큰해물은 매번 제외였는데, 여름이 지나고 가을쯤 혼자서 2인분에 도전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와야겠다.
칼국수, 수제비 그리고 콩국수에는 갓담근 겉절이와 아삭하니 잘 익은 열무김치만 있으면 된다. 굳이 다른 반찬은 필요치 않다. 보리비빔밥에 열무김치는 필수이니,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면 열무김치다.
고추장으로만 비벼도 될 거 같지만, 아삭한 열무가 빠지면 섭하다. 까끌하니 톡톡 터치는 보리밥에 고추장과 열무김치를 적당히 넣어 숟가락으로 쓱쓱 비비면 끝. 애피타이저라 양은 적지만, 메인이 푸짐하니 보리밥에 욕심을 내면 안된다.
날이 더울수록 콩국수의 가치는 높아진다. 팥빙수나 냉면처럼 얼음동동은 아니지만, 콩이 차가운 성질이라서 먹다보면 서서히 몸속부터 시원해진다. 이렇게 좋은 콩국수를 어릴때는 왜그리도 싫어했는지, 동심은 여전히 간직하고 싶지만 입맛은 어른이로 변해서 좋다.
지난 번에 따로 콩물을 구입하면서 물어보니, 검은콩을 같이 넣어서 콩물 때깔이 다르단다. 땅콩가루는 고명일뿐, 콩물만으로도 충분히 고소하다. 국수를 먹을때 국물보다는 면에 집중을 하는 편인데, 콩국수는 예외다. 면은 그저 건들뿐, 진짜 백미는 콩물이기 때문이다.
짜장면은 아니지만, 먹기좋게 잘 비벼준 후 본격적으로 공격을 하면 된다. 테이블에 소금과 설탕이 있지만, 굳이 간을 추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슴슴하니 간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콩 비린내는 일절 없고, 밍밍할 정도도 아니라서 그냥 먹어도 충분히 좋다. 살짝 간이 부족하다 싶으면, 김치를 먹으면 된다.
콩물도 그러하듯, 면도 때깔이 살짝 다르다. 밀가루 반죽에 무언가를 더한 거 같은데, 물어봐야지 하면서 먹기 시작하면 이내 잊어버린다. 맛에 빠져버렸으니깐. 주문을 받은 후 조리를 하기에 음식이 나오는데 시간은 걸리지만, 퍼지지 않고 탱글탱글하니 쫄깃한 면발이다. 면 사이사이 걸쭉한 콩물이 딱 붙어 있는 건, 참 맘에 든다.
고소한 콩물에 아삭한 오이채와 우웃가사리를 올려서 먹어도 좋고, 탱글탱글한 국수는 숟가락에 올려서 먹기 보다는 후루룩 흡입을 해야 한다. 오른손은 젓가락을 들고 국수를 흡입하고, 왼손은 숟가락을 들고 주유를 하듯 콩물을 입안으로 넣어줘야 한다. 그래야만 조화롭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칼국수에는 겉절이, 수제비에는 열무김치다. 그런데 콩국수는 이거라고 정할 수가 없다. 지난번에는 열무김치가 좋았는데, 이번에는 겉절이가 좋다. 칼국수를 먹을때 면은 다 먹더라도 국물은 남기는 편인데, 콩국수는 차라리 면을 남기지 국물은 무조건 다 먹어야 한다. 둘 다 남기지 않고 다 먹으면 백점. 이제 곧 가을로 접어들텐데, 2020년 콩국수의 시작과 끝은 선미옥이다. 콩국수야~ 내년 여름에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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