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유산 염리동 역전회관
멀리갈 수 없으니 주출몰지역에서 놀아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격상되기 전에 다녀오긴 했지만, 이번주는 밖에서 점심을 먹기가 넘 힘들다. 나 혼자 힘든 게 아니라 우리 모두 다 힘든 한주를 보내고 있다. 더 나빠지지 않길 바라면서, 지난번 설렁탕에 이어 이번에는 불고기다. 역사가 맛을 만드는 서울미래유산, 마포구 염리동에 있는 역전회관이다.
SINCE 1929.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싶다. 이곳이야 말로, 역사가 맛을 만드는 곳이다. 92년, 정말 어마어마하다. 그나저나 역전회관인데 위치는 역전과는 전혀 동떨어진 곳에 있다. 근처에 공덕역과 마포역이 있긴 하지만, 역 앞보다는 역 뒤에 있다고 해야 맞다. 그런데 왜 역전회관일까? 처음에는 마포가 아니라 용산역 앞에서 역전식당으로 운영을 했다고 한다. 2007년 용산일대에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이전을 했고 이름도 식당에서 회관으로 바꿨다.
서울미래유산뿐만 아니라 타이어(미쉘린) 회사, 블루리본 서베이까지 다닥다닥 붙어있다. 사실 지나다니면서 자주 보긴 했지만, 고깃집이라서 혼밥하기 어려울 거 같아 그동안 가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미래유산 탐방을 시작하면서 조사를 해보니, 혼밥도 충분히 할 수 있기에 당당히 하지만 조금 늦은 점심시간에 도착했다.
다음 포털사이트에는 오후 3시부터 브레이크타임이라고 나오지만, 실제는 2시 30분이다. 30분 차이로 인해, 이날 민폐손님이 됐다. 영화관에서나 봤던 비대면 자동 AI열감지 시스템으로 온도를 체크하고, 이름과 연락처까지 기입한 후에 자리를 안내 받았다. 오른쪽 사진은 역전주라는 막걸리는 만드는 공방이다. 식당에서 막걸리를 자체적으로 만드다니 그 맛이 궁금했지만, 이날은 마시지 않았다. 다시 가기 위한 큰그림이다.
여러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세트메뉴에 일품요리(바싹불고기 31,000원)까지 도저히 혼밥을 할 수 없는 메뉴들뿐이다. 하지만 메뉴판을 계속 넘기다 보면, 식사메뉴가 나오는데 여기서 멈춤을 하면 된다. 왜냐하면 바싹불고기 정식(16,000원)이 있기 때문이다. 점심치고는 살짝 부담이 되긴 하지만, 워낙 궁금했기에 주문을 했다. 매운바싹불고기는 청양고추가 들어간다고 한다.
깻잎 옆에는 간장, 마늘, 쌈장 그리고 갈치속젓인 줄 알았으나 황석어젓이라고 한다. 1대 창업주가 전남 순천에서 호상식당을 했다고 하니, 아무래도 남도 음식맛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밥을 기준으로 미역초무침, 땅콩조림, 무생채, 겉절이, 알배추나물 그리고 샐러드다.
바싹불고기는 순천에서 용산으로 1대에서 2대가 되면서 2대 창업주가 개발을 했다고 한다. 식사라서 양은 살짝 부족한 듯 싶지만, 맛을 음미하기에는 충분하다. 왜냐하면 혼자서 다 먹을테니깐. 비주얼을 보니, 언양불고기 혹은 너비아니와 많이 비슷하다. 바싹이라서 육즙이 없을 거 같은데, 기름인지 육즙인지 고기 사이로 촉촉함이 보인다.
생고기가 아니라 불고기다. 고로 고기만 먹으면 염도가 과하니, 밥과 함께 먹어야 한다. 은은한 숯불향이 입안을 감돌고, 짭쪼름한 감칠맛이 훅 치고 들어온다. 물론 불고기이니 단맛도 있다. 바싹이지만 나름 식감도 살아있고, 어른은 물론 아이까지 다 좋아할만한 맛이다.
짜증날때 짜장면 우울할때 울면이라지만, 개인적으로 우울한 날에는 맛았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우울함을 핑계삼아 호사스런 불고기에 파랑이를 더한다. 역시 둘의 만남은 천생연분이다.
깻잎쌈에 간장은 그닥이지만, 쌈장은 무난하니 괜찮다. 하지만 좀 더 강한맛을 원한다면 황석어젓이다. 불고기 맛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넣으면, 훨씬 더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고로 나의 취향은 황석어젓이다.
고기는 다 먹었는데, 밥에 파랑이까지 많이 남았다. 추가 주문이 필요한 순간이다. 사실 불고기만 먹고 일어났다면 민폐손님이 안되는 건데, 선지술국으로 인해 3시가 다 되어서 일어났다. 프랑스 코스요리를 먹은 것도 아닌데, 혼자서 한시간 반이 넘도록 점심을 먹었다. 따로 선지술국(13,000원)이 있지만, 점심에만 먹을 수 있는 선지정식(9,000원)을 주문했다. 양의 차이일뿐 맛에는 차이가 없다.
선지술국이니 주인공 선지는 가득, 고명인듯 아닌듯 고기도 조금 들어있다. 그나저나 최근에 선짓국을 좀 많이 먹었는데, 선지상태는 역전회관이 가장 으뜸이 아닐까 싶다. 부드러운 푸딩이 아니라, 집에서 직접 만든 도토리묵처럼 탄력이 장난아니기 때문이다.
시원한 국물맛을 책임지는 무도 들어 있고, 국물이 맑은 편은 아니지만 잡내는 일절 없고 담백하고 깔끔하다. 왜 술국이라고 했는지는 국물을 한번 먹으면 알게 된다. 그 다음 행동은 자연스럽게 술잔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이런 선지 비주얼은 처음이다. 지금까지 먹은 선지는 겉과 속이 같았는데, 요건 다르다. 이유가 뭘까? 아~ 무지 궁금하다.
궁금함도 좋지만, 지금은 맛에 집중해야 한다. 밥을 말아서 인사모드로 무한 흡입을 해야 하지만, 중간중간 파랑이와 함께하는 시간도 가져야 한다. 선지술국을 먹으니 술이 생각나고, 술을 마시니 선지술국이 먹고 싶어진다. 마시고 해장하고, 또 마시고 해장하고 우울함은 사라지고 행복함만 만땅이다.
어쩔 수 없이 과식을 해야했지만, 후회없는 선택을 했다. 한꺼번에 둘을 다 같이 먹을 생각은 아니었지만, 나름 나만의 결론을 내렸다. 역전회관은 바싹불고기가 메인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파 가득에 국물이 자박자박한 서울식 불고기를 더 좋아한다. 고로 역전회관에서는 선지술국을 주로 먹을 거 같다. 술국이니 아스파탐이 없는 역전주와 함께다.
마포구 서울미래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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