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급식세대가 아닌 나는 국민학교부터 중,고등학교까지 도시락을 들고 다녔다. 대학 때는 도시락이 필요치 않아 엄마가 편해졌지만, 회사 생활을 하면서 다시 도시락을 갖고 다녔다. 급식을 먹는 아이들을 보면, 부러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도시락은 뭐랄까? 참 따뜻하고 포근했던 추억을 갖고 있는, 엄마는 많이 힘드셨겠지만 그래도 도시락은 나에게 있어 추억의 음식이다.

 

 

국민학교 시절 도시락 추억

 

국민학교(졸업 후 한참이 지난 후에 초등학교로 변경됐지만, 왠지 초등학교는 입에 잘 붙지 않아서 말이다) 저학년 때는 도시락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전 수업만 했기에, 수업 끝나고 집에 와서 밥을 먹으면 되니깐 말이다. 아마도 4학년때부터 도시락을 갖고 등교했던거 같다. 책가방과 신발주머니 여기에 도시락까지 어린 나이에 어깨에 매고, 손에 들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도시락을 갖고 가기 시작하면서 수업이 많아졌고, 더불어 공부도 많이 해야 할 시기가 왔음을 알리는 신호였지만 좋았다. 도시락은 항상 4교시가 끝난 후 점심시간에 먹었다. 혼자 먹는 것보다는 짝꿍과 뒤에 있는 친구들과 함께 먹어야 더 맛이 있었다. 도시락 반찬으로 그 집의 재정상태(?)를 알 수 있었지만, 그때는 그저 함께 먹는게 좋았다. 그래도 김치만 갖고 오는 얘들보다는 계란말이, 소시지, 햄 등을 갖고 온 친구들과 먹는게 더 좋았지만 말이다.

 

 

국민학교 5학년때, 괴짜인 남자 녀석들이 있었다. 그 중 한 녀석이 나와 짝이었는데, 참 특이하게도 도시락을 먹었다. 도시락 밥의 반 정도를 한 숟가락에 담아 입이 찢어지더라도 한 입에 먹어야 했던 녀석이었는데, 그렇게 먹으면 게임에서 승리라도 한 듯, 무지 뿌듯해했었다. 여기에 지금보다 더 드럽고 드러운 책상에 밥을 뿌리고 그걸 이러저리 책상을 닦으면서 먹는 재능(?)까지 선보였다. 아마 그 녀석 지금 그때처럼 먹으라고 하면 절대 안 먹을텐데, 왜 그때는 그렇게 먹었을까나. 그러면 영웅이 된다고 생각했었나? 그리고 반찬 뺏어먹기는 그 녀석의 특기였다. 나야 짝이었으니, 매번 피해자가 되야 했지만, 머리를 써서 계란 후라이를 반찬 통에 담지 않고 밥 위에 담아서 갖고 왔건만 그거마저 먹었던 녀석이었다. 퉤퉤퉤 침까지 뺕어도 그 녀석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어떠한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반찬 뺏어먹기 일인자였다. 계란 옷을 입힌 분홍색 소시지를 갖고 온 날이면 어찌 알았는지, 냄새만 맡아도 아는지 다른 자리에서 뺏어 먹다가 어느새 내 옆에 오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알아서 드셨다.ㅎㅎ

 

 

6학년때 엄마가 잠시 병원에 입원을 했었다. 도시락은 갖고 가야 하는데, 엄마가 없으니 누가 했을까? 내가 했다. 나와 중학생 오빠까지 아침에 2개의 도시락을 만들어야 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아빠 혼자서 도시락을 만들어주셨는데, 매번 전날 저녁에 먹었던 반찬들로 담아 주시기에 안되겠다 싶어 내가 하기로 했다. 반찬은 당연히 나 혼자 할 수 있는 메뉴로 후라이팬과 기름과 있으면 됐던 햄과 비엔나 소시지였다. 한달 정도 입원해 계셨는데, 이때 정말로 햄, 소시지를 실컷 먹었다. 질릴 정도로 먹어서 한동안 먹기 싫었지만, 그래도 도시락하면 기억나는 반찬은 햄, 소시지이다. 지금도 소시지 하나는 잘 부친다. 기름도 적당히 넣어서 느끼하지 않게 말이다. 아 맞다. 계란말이도 이때 터득했던 메뉴다. 없으니 된다고, 엄마가 안 계시는 나도 모르게 어깨 넘어 봤던 기억을 되살려 나름 엄마처럼 도시락 반찬을 잘 만들었다. 물론 반찬은 매번 햄, 소시지, 계란말이였지만 말이다. 그래도 영양소를 생각해서 김치도 조금 넣고 이모가 만들어 주신 장조림도 집에서는 안 먹고 아껴가면서 도시락에 담았다.

 

 

 

중학교 시절 도시락 추억

 

집에서 5분거리에 중학교가 있었다. 집에 와서 점심을 먹어도 되지만, 도시락을 갖고 다녔다. 반찬은 무조건 3개 이상을 원했고, 고등학생인 오빠 덕에 도시락 반찬은 다양했었다. 고등학생인 오빠가 야간자율학습 때문에 도시락을 2개 이상 갖고 다녔기 때문이다. 반찬 투정이 은근 있던 나는 도시락 반찬에 무척 신경을 썼다. 아침 밥을 먹으면서 오빠 도시락보다 부실해 보인다면, 엄마 몰래 오빠 반찬을 내 반찬으로 바꾸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둘째가 질투가 많다는게 여기서도 나오나 부다. 무조건 첫째보다 떨어지면 날 덜 사랑한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이때 사춘기가 슬며시 오기 시작했는지, 괜한 일에 투정이 엄청 심했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는 도시락을 안 갖고 가는 것이었다. 뭐가 그리 싫었는지, 툭하면 도시락을 안 갖고 학교를 갔었다. 그러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바로 후회를 했다. 어차피 손해보는건 나인데 말이다. 그런데도 도시락은 먹었다. 집에서 5분거리에 학교가 있으니, 엄마가 들고 오셨다. 딸래미 밥 굶은건 싫으셨는지, 밉다고 하면서도 도시락을 들고 오셨다. 그나마 학교가 가까우니깐 가능했지, 멀었으면 미운 딸래미 굶게 했을거 같다. 아니다. 나도 학교가 멀었으면, 도시락이 아닌 다른 걸로 사춘기임을 표출했을거 같다.

 

 

반찬은 국민학교 시절처럼 햄, 소시지, 계란말이가 주인공이었다. 월요일은 비엔나 소시지를, 화요일은 계란 옷 입은 분홍 소시지를, 수요일은 스모크햄을, 목요일은 김이 들어간 계란말이를, 금요일은 또 비엔나 소시지를 이런 식으로 반찬을 담아 주셨고, 김치는 생김치가 아니라 볶음으로 해주셨고, 콩자반, 멸치볶음은 절대 먹지 않았다. 싫어하는 반찬을 싸주시면 그 반찬은 담아있던 그대로 갖고 왔더니, 점차 콩자반은 내 도시락 반찬에서 사라졌다. 나름 싫어하는 반찬이라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했던거 같다.

 

 

 

고등학교 시절 도시락 추억

 

드디어 고등학생이 됐고, 도시락도 하나가 아닌 2개를 갖고 다니게 됐다. 더불어 4교시 후에 찾아오는 점심시간보다는 2,3교시 후 10분의 쉬는 시간이 점심시간으로 되어 버렸다. 점심시간에는 절대 굶지 않고 매점으로 달려갔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매점이 없었는데, 고등학생이 되니 매점이 있었고 그때 먹었던 라면이나 빵이 얼마나 맛있던지. 도시락보다 더 맛있게 먹었던거 같다. 그렇다고 도시락을 안 갖고 다니지는 않았다. 그 시절에는 돌이라도 먹을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식욕을 갖게 되면서, 먹기만 했던가 같다. 하긴 지금까지 살면서 최고의 몸무게를 기록했던게 아마도 고3때였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도시락 까먹기 신공은 바로 수업 시간에 도시락을 먹는 것이었다. 이때 조심해야 할 점은 냄새가 많이 나는 신김치는 절대 꺼내면 안되고, 냄새가 별로 안 나는 반찬으로 준비를 해야 한다. 더불어 필기를 많이 하는 선생님 시간을 골라야 하고, 여기에 신의 한수로 가는귀 먹은 선생님이라면 완전 성공할 수 있다. 딱 한번 성공했었다. 책상 사이드를 책으로 요새처럼 만들어 놓고, 밥은 책상 위로 냄새가 날만한 반찬은 서랍에 넣어서 씹는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하면서 수업 중에 먹기 시작했다. 그때 그 스릴이란, 말로 다 표현 못한다. 몇 명이서 먹기 시작했는데, 나 포함 3명 정도가 성공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처구니 없는 행동이지만, 그때는 이게 왜 그리 좋았던지. 일탈이라고 생각을 했었나 보다. 물론 딱 한번만 하고 그 다음부터는 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아마도 그 선생님 시간에 나처럼 다른 반에서도 같은 일들이 벌어졌는지, 그 다음부터 선생님이 달라지셔서 할 수가 없었다. 참 스릴 있고 좋았는데 말이다.

 

 

2교시 후 도시락을 먹고, 4교시에는 매점으로 달려가 과자 파티를 하고, 야간자율학습 전에 2번째 도시락을 또 먹고, 야자 중에 몇 명이 눈빛을 교환한 후 몰래 빠져 나와 학교 앞 분식집에서 떡볶이까지 먹고, 집에 오면 또 저녁까지 먹는 생활들을 반복하다 보니 남는건 내 몸이 옆으로 자라는 현상뿐이었다. 그래도 먹는게 좋았다. 왁자지걸 수다 떨면서 먹으면서 모든 스트레스를 풀었던 그때가 그립다.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분배를 해서 밥과 나물, 계란후라이, 고추장, 고기 등을 갖고 와서 큰 그릇에 다 부어서 비빔밥도 해 먹고, 상추랑 쌈장이랑 갖고 가는 날은 3교시부터 잠과 사투를 벌여야 했지만, 그때는 왜 그리 맛이 있던지. 하긴 뭘 먹어도 맛있기만 했던 시기라서 그런가. 지금은 없겠지만, 그때 도시락 통만 해도 10개 이상은 집에 있었던거 같다. 그리고 코끼리 보온도시락은 필수였다. 수능 보던날 이걸 두고 왔다고 엄마한테 무척 혼났을 만큼, 꽤 비쌌던 코끼리 보온도시락이다. 이 도시락 덕에 겨울에는 국물 있는 반찬까지 먹을 수 있었다. 이러고 보니, 울 엄마 참 고생 많이 하셨구나 싶다. 하긴 엄마랑 장보러 가면 항상 장 바구니에 햄, 소시지, 참치캔은 필수품이었으니깐 말이다. 그러고 보니, 고추, 야채 참치캔이 나오면서 도시락 반찬으로 이 캔 하나 담아 주면 될 만큼 조금은 편해졌을 테지만, 그래도 도시락 싸는게 어디 쉬운가 말이다. 요즘 엄마랑 TV 보면서 급식에 대한 내용이 나오면, 요즘 엄마들 참 편하고 좋겠네라고 하면서도 그래도 급식보다는 도시락이 얘들한테는 더 낫지. 급식은 믿음이 안 가니깐 이라고 하시는거 보면 조금은 불편해도 내 자식이 먹는건데라고 생각하면서 만들어주셨구나 싶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도시락은 필요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햄, 소시지는 정말 쳐다보기도 싫었다. 한때는 도시락 메인 반찬이 한동안은 내 기억에서 사라졌던 이유는 아마도 학창시절 질리게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가끔 계란 옷 입은 분홍 소시지가 생각날 때가 있다. 더불어 문어 모양으로 잘라서 만든 비엔나 소시지도 생각날 때가 있다. 그래서 요즈음 도시락 반찬이 아닌 술안주로 먹고 있다.

 

대학때는 도시락을 갖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학교 식당이란게 있었고, 학교 주변에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니 이것보다는 대학생이 왜 도시락을?? 이 이유가 더 큰거 같다. 대학생이 되자 엄마도 이제 도시락에서 해방됐구나 하셨던 걸 생각해보면, 도시락은 고등학교 때까지 인거같다. 그런데 그 도시락을 다시 갖고 다니게 될지는 정말 꿈에도 몰랐다.

 

 

성인이 돼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도시락은 다이어트를 위해, 조미료가 잔뜩 들어간 식당에 지쳐 갖고 다니기 시작했다.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한두달 정도는 회사 주변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게 좋았다. 오늘은 돈가스, 오늘은 우동, 오늘은 카레, 오늘은 파스타, 오늘은 부대찌개 등등 다양한 점심 메뉴가 좋아서 최고의 낙으로 삼지만 얼마 못 가서 지쳐버린다. 그러다 보면 생각나는게 도시락이다. 그런데 혼자서는 안되니, 동료 몇 명을 섭외해서 함께 진행해야 한다. 점심값도 아끼자고 하면서 도시락 먹는 일에 동참하자고 한다. 마음 맞은 동료가 생기면, 바로 실행에 들어간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하면서 도시락까지 준비하는게 어렵지만, 엄마랑 함께 살고 있으니 부탁을 드린다. 물론 공짜는 안되기에, 떡값을 좀 드리면서 말이다. 더불어 엄마가 해주는게 가장 맛나다는 립서비스도 함께 말이다.

 

 

학교때보다 더 예쁜 도시락 통을 직접 사고, 양은 그때보다 확 줄어졌지만, 맛과 영양은 사서 먹는 것보다 훨씬 높다. 다 먹고 냄새제거를 위해 설거지 정도는 기본적으로 해주는 센스를 발휘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학교때 메인 반찬이었던 소시지와 햄은 사라졌다. 김치와 나물, 잘 안 먹던 멸치볶음에 전날 저녁으로 먹었던 반찬으로 담아 간다. 이게 바로 학교 도시락과 사회도시락의 차이인가? 아니면 내 입맛이 변했던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요즘은 집 반찬이 훨씬 좋다. 한때 다이어트 한다고 밥 대신 두부에 반찬은 새싹채소를 담아서 갖고 다녔던 적이 있었다. 두부는 회사에 있던 전자레인지에 살짝 익히고, 새싹채소를 곁들어서 먹었던 적이 있었는데, 먹어도 포만감은 없었지만 그래도 다이어트한다고 이런 도시락까지 갖고 다녔다.

 

 

 

요즈음 도시락은 안 갖고 다닌다. 간헐적 단식이니, 1일 1식이니 하면서 점심을 거의 안 먹고 있고, 도시락을 갖고 다니는게 귀찮기 때문이지만, 또 모르지. 어느 날 엄마가 해주는 도시락이 최고야 하면서 도시락을 만들어 달라고 할 때가 올지 말이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