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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키드의 추억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vs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공개방송의 양대 산맥

 

 

 

 

나에게 있어 라디오 키드의 전성기라면, 바로 국민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까지, 즉 심야음주문화를 알기 전까지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이야 팟캐스트로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고 보이는 라디오까지 라디오의 진화가 눈부시게 왔지만, 한편으로는 눈물겹도록 아프다. 예전처럼 워크맨이나 묵직한 라디오를 가지고 그 시간을 기다리면서 DJ의 말 한마디를 쫑긋하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국민학교 6학년때, 처음으로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 내방에는 라디오가 없어, 오빠 방에서 더부살이 하듯 슬쩍 들어가 같이 들어야만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워크맨이 생겨 나홀로 라디오방송을 매일 들을 수 있게 됐지만, 그 전에는 주말 저녁만 오빠 방에서 들어야 했었다. 10시에 시작되는 라디오를 듣기 위해서는 오빠에게 갖은 아부를 떨어야 했다. 이유는 늦은 시간에 시작되기에 듣다 잠이 드는 경우가 종종 있어, 이불을 들고 와야 했기 때문이다. 커다란 라디오를 가운데에 두고, 오빠는 왼쪽 나는 오른쪽에 이불을 깔고 같이 낄낄 웃으면서 라디오 방송을 청취했다.

 

 

9시만 되면 잠을 잤던 내게, 10시 라디오 방송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감행해야 했던 이유는 바로,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때문이기에 가능했다. 토요일 10시에는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일요일 10시에는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를 무조건 들었다. 왜냐하면 공개방송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어느날 오빠 방에서 미친듯이 들려오던 웃음 소리를 듣기 전에는, 주말의 영화도 안보고 왜 방으로 들어갔는지 의아해했다.

 

 

 

 

 

그러나 얼마 후 TV보다 더 재미있는 라디오 공개방송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오빠 방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를 밖에서 몰래 듣다가, 넘 추운 나머지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가 조용히 라디오 옆에 쭈그리고 앉아 듣기 시작했다. 그러다 조금 더 과감해져 이불까지 들고 들어가, 토요일과 일요일 저녁을 같이 보낼 정도로 공개방송에 완전히 푹 빠져버렸다. 그런 내 모습이 딱했는지 불쌍히 여긴 부모님께서 중학교 입학선물로 워크맨을 사주셨고, 그 덕에 오빠와의 동침은 끝이 났지만 그만큼 오빠의 구박을 받으면서까지 들을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토요일 10시에 공개방송을 했다. DJ인 이문세와 객원DJ였던 이경규의 재치있고 위트있는 말 솜씨에, 그 당시 인기있던 가수들이 게스트로 나왔다. 솔직히 기억나는 게스트는 없다. DJ가 좋았을 뿐이다. 어쩜 그리도 말을 잘하던지, 9시면 잠이 들었던 내가 10시를 넘어 12시까지 모든 신경을 라디오에 집중하고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자지러지도록 웃었다.

 

 

토요일에 이어 일요일 10시에는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가 공개방송을 했다. DJ인 이종환과 객원DJ은 이택림이었다. 진행방식은 별밤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작은 차이점이 있었다. 별밤은 이문세와 이경규가 서로 주고 받는 토크였다면, 밤디는 이종환과 이택림의 서로 물고 물리는 토크였다. 가장 기억나는 건 이택림은 이종환을 코쟁이 아저씨라 놀리면서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라는 동요를 이종환 버전으로 코쟁이 아저시는 코가 커요~~라면서 방송때마다 큰 코 이종환을 놀렸다. 이게 왜 그리 웃겼던지, 그 동요가 나올때마다 완전 빵 터져서 웃음이 그치지 않았었다.

 

 

 

 

 

보지 않고 듣기만 하니 좀이 쑤시기 시작했다. 도저히 안되겠구나 싶어. 별밤에 공개방송 신청 엽서를 여러 번 보냈고 드디어 당첨이 돼서 방송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정동 MBC에서 별밤 공개방송을 보던 그 날, 온 세상이 다 내꺼 같았다. 공개방송 티켓을 우편으로 받은 날부터 방송을 보던 날까지 제대로 잠을 못 잤던거 같다. 그만큼 그 시절에 나에게 있어 가장 획기적인 일이었고, 그때까지 인생을 살면서 가장 역사적인 날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별일 아닌 일처럼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죽어도 될 만큼 대단한 날이었던 것이다.

 

 

그 공개방송을 더 잊을 수 없는건 바로, 객원DJ인 이경규가 첫 방송을 했기 때문이다. 그 전 객원DJ는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서 처음에 별밤 공개방송을 들었을 때 객원DJ도 기억나지 않지만, 직접 봤던 그 공개방송만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이문세의 소개로 이경규가 나왔고, 이문세가 첫 방송인 이경규를 못한다고 살짝 놀리면, 이경규는 매번 '다음주에도 또 나올 수 있겠죠. 다음주에 또 보는거죠'라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에 급급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 재미있었다. 무슨 말만 하면 끝에 꼭 다음주에 또 보자고 하면서 유행어 아닌 유행어를 만들었고, 그러면 이문세는 글쎄 나올수 있을까 하면서 첫 방송으로 떨고 있는 이경규를 놀렸다. 방송을 들으면서 정말 이번주가 끝일까 했지만, 다음주 그 다음주 그 그 다음주에도 이경규는 계속 객원DJ로 나왔고, 한동안 그의 목소리를 계속 들을 수 있었다.

 

 

1부 이문세와 이경규의 환상적인 토크를 보고, 2부 중간쯤에 이경규는 다음주에 보자고 하면서 자리를 떠났다. 난 이때를 놓치지 않고, 앞으로 나가서 이경규에게 사인 종이를 내밀었다. 방송 중이었기에 사인을 못해준다는 말을 못하는 이경규는 직접 사인을 해줬고, 그 사인 종이를 코팅까지 하면서 몇 년 동안 잘 보관했었다. 지금은 글쎄 어디 있는지 아니면 없어졌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말이다. 그리고 방송이 끝난 후 이문세 사인까지 직접 받은 행운을 누렸다. 역시나 코팅해서 보관했는데, 지금은 어디에 있을련지.

 

 

공개방송을 시작으로 주말에만 들었던 라디오를 워크맨이 생기면서 매일 청취하게 됐고, 밤디보다는 별밤 애청자가 됐다. 공개방송 티켓을 받기 위해 엽서를 보내면서 예쁜 엽서 뽑내기에도 한번 도전해볼까 했지만, 그것만은 내 능력 밖이어서 아쉽게 도전하지 못했지만, 가끔은 엽서를 보내긴 했었다. 물론 방송에서 내 이름이 나온 적은 없지만 말이다. 실은 한번 있었다. 그런데 별밤도 아니고 밤디도 아닌 새벽 2시에 했던 영화음악 방송이었다.

 

 

 

 

 

별밤은 가요 위주로, 밤디는 팝송 위주로 방송을 했고, 나는 별밤을 오빠는 밤디를 주로 애청했다. 그러나 토요일과 일요일은 둘 다 같은 방송을 처음에는 같이 나중에는 서로 듣게 됐지만, 빼먹지 않고 들었다. 지금은 운전을 해야 라디오 방송을 듣는데, 왜 예전만 못할까 싶다. 그만큼 더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생겨서 그런가? 아니면 내가 라디오의 매력을 빠지지 못하는 세대가 되서 그런가? 하긴 그때는 라디오를 들어야 최신곡을 알수 있었고, 라디오에 나오는 최신곡을 녹음하기 위해 DJ의 멘트가 끝나기 무섭게 녹음버튼을 누르기도 했었다. 지금이야 라디오가 아니어도 최신곡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많아졌으니 너무 풍족해도 문제구나. 없어서 살짝 부족해도 행복했던 나의 라디오키드,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그때의 그 감정으로 그들의 공개방송을 다시 한번 듣고 싶다.

 

 

 

 

번외)

 

◀라디오 키드가 듣고 싶은 음악을 갖는 법▶

공테이프를 산다.

AM보다는 FM을 중심으로 듣는다.

DJ가 노래 초반에 멘트를 넣지 않거나, 노래 끝부분에 광고가 나가지 않길 빈다.

누구누구가 신청한 곡입니다. 누구의 이 노래입니다가 끝나자 마자 녹음 버튼을 누른다.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광고가 나간다면, 욕을 하면서 다시 테이프를 앞으로 돌리고 또 기다린다. 이번에는 제발 중간에 끊기지 않기를 바라면서

 

 

 

◀◁턴테이블과 테이프 2개를 동시에 넣을 수 있는 인켈 오디오 세트가 있을 때▷▶

LP를 구입한다.

한번은 제대로 듣지만, 자주 들으면 먼지가 생기기 때문에 공테이프에 녹음을 해야 한다.

녹음한 테이프 하나만을 듣다보면 테이프가 늘어날 수 있기에,
또 다른 공테이프를 준비해 한번 더 녹음한다.

한 가수당 10곡이상의 노래가 있지만,
이중 좋아하는 노래는 2~3곡 정도일 경우에는 리스트를 작성해서 노래를 녹음한다.
요거 요거 큰 돈 들이지 않고 생일선물로 활용할 수 있는 최고의 아이템이다.

 

 

 

지금은 굳이 힘들게 노래를 녹음할 필요가 없다. 클릭 몇 번 만으로 좋아하는 노래를 고를 수 있고, 테이프가 아닌 조그만 MP3 기계 안으로 빠르게 노래가 중간에 끊어지는 일 없이 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편리함은 좋아졌지만, 그 편리함 때문에 존재의 가치가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 라디오에서 어렵게 녹음해 갖게 된 것과 비교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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