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음식 중 최고봉은 뭐니뭐니 해도 치느님이다. 치느님 중 교촌을 가장 좋아하지만, 이번에는 변절(?)을 했다. 왜냐하면 교촌은 2016 달력을 주지만, BHC는 완전 여성스러운 다이어리를 주기 때문이다. 올해는 뭐에 쓰였는지 이상하게도 다이어리에 목숨을 걸고 있다. 작년에 받은 올레 다이어리는 월마다 주는 할인권만 챙기고 나머지는 조각내어 메모지로 쓰고 있으면서 말이다. 아이폰에 있는 달력 어플만으로도 충분한데, 악필인 주제에 무슨 다이어리를, 암튼 그눔의 다이어리땜시 주문을 했다.
주문할때 더 맵게 해달라고 하니, 고추를 많이 넣어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아주 많이 넣어 주세요라고 말했더니, 이렇게나 고추가 많이 들어 있다. 원래 고추의 양이 이정도는 아니라도 한다. 뚜껑을 열자 알싸한 고추향이 물씬 난다. 간장맛 + 매운맛 그래서 교촌치킨과 비슷하다고 하고, 닭강정과 비슷하다고 하던데, 비주얼과 냄새는 그러한 듯 하다.
BHC 맛초킹(가격, 17,000원). 늘 교촌만 먹어서 그런가? 날개 참 실하고 크다. 교촌 닭날개는 한입에 넣고 오물오물 뼈만 바르면 되는데, 이건 절대 한 입에 넣을 수 없다. 한 손만 쓰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되겠다. 두 손에 양념을 잔뜩 묻혀가면서 들고 뜯어야겠다.
역시 닭다리도 참 튼실하니 실하다. 진한 양념이지만, 간은 강하지 않다.
왜냐하면, 튀김옷 안에 있는 살은 하얗기 때문이다. 양념이 전혀 스며들지 않아서, 그냥 고기맛만 난다. 닭다리는 어떻게든 이 상태로 먹을 수 있지만, 닭가슴살은 뻑뻑해서 살만 먹기 참 힘들다.
닭다리이지만 가슴살이라고 치자. 요렇게 고추와 함께 먹어야 그나마 먹을 수 있다. 왜 교촌치킨은 닭고기가 작을까 했는데, BHC 맛초킹을 먹으니 알 수 있을 거 같다. 간장양념이 튀김옷은 물론 고기살까지 충분히 침투하려면, 고기를 작게 만들거나, 닭을 작은걸로 써야 하지 않을까? 맛초킹을 먹으면서 교촌의 비밀을 캐다니, 역시 나의 치느님은 교촌인가보다.
맛있다는 소문이 났지만, 그 소문이 나에게는 적용이 안 된다는 걸, 이번에 또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다이어리로 넘어가자.
민트색과 핑크색 다이어리가 있다고 하는데, 주문할때 고추 많이와 함께 민트색을 지정해서 달라고 요청했다. 사진에는 살짝 진해보이지만, 옅은 민트색 다이어리다. 치킨집에서 주는 거 치고는 참 고급지다. BHC브랜드 표기도 표지에 작게 하나, 중간에 하나, 마지막 페이지에 하나 이렇게 나와있다. 혹시 각 페이지마다 커다랗게 마크가 있을까 했는데 없고, 치킨사진이 여기저기 나와있을까 했는데 전혀 없다. 더불어 광고모델 사진조차 없다. 매장전화번호도, 메뉴소개도 전혀 없는, 어여쁜 여성취향 저격 다이어리다. 인기 캘리그래퍼인 아넬리스가 참여했다고 하더니, 페이지마다 귀엽고 깜찍한 이미지들로 인해 다이어리를 쓰고 싶은 맘이 생겼다. 그런데 극한 악필이라서, 예쁜 다이어리에 흠이 될까 겁이 난다.
"데일리 해피니스 앤드 콤마 다이어리에는 매일의 행복한 순간들을 기록하고 바쁜 일상 속에서 컬러링 페이지를 조금조금 채워가면 작지만 편안한 휴식시간을 가져보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그래서 일상의 행복 그리고 쉼표이구나.
이렇게 꾸미라고 친절히 알려주고 있지만, 저렇게 할 자신이 없다. 예전에 다양한 스티커를 사서, 그림으로 다이어리를 채웠던 적이 있다. 악필이라 글씨가 안되니, 스티커 그림으로 말이다. 올해도 그렇게 해볼까나? 그럼 스티커부터 장만해야 하는데, 이러다 또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겠다.
월간 스케줄표. 월마다 주제가 다른데, 5월은 역시 피크닉이구나. 쉬는 날이 많으니, 더더욱 소풍갈 시간이 많다는 의미겠지. 내년 5월에는 나도 떠나볼까나?! 월간이 있으면 주간이 있어야 하는데, 아쉽게 주간 스케줄을 작성하는 공간은 없다. 여기에 현재 작성 중이거나 보고 있는 페이지를 체크할 수 있는 띠지(속지? 정확한 명칭을 모르겠다.)도 없다. 그리고 표지가 두껍긴 하지만 다이어리를 고정할 수 있는 끈이 있었음, 펜을 함께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음 좋았을텐데. 그런데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있나? 사은품인데 말이다.
BHC 다이어리의 핵심은 아무래도 컬러링 페이지인 듯 하다. 색칠공부를 할 수 있는 페이지가 많기 때문이다. 아 그런데 생각해 보니, 색연필이 없다. 성인이 되면서, 색연필과 크레파스는 먼나라로 이민을 보냈기 때문이다. 스티커에 색연필까지 사은품으로 받은 다이어리에 자꾸만 투자가 늘어간다.
다양한 메모공간들. 그런데 너무 예쁘다. 내가 사용하기엔 머쩍을 정도로 너무 앙증맞고 귀엽다. 프랭클린 다이어리에 익숙해져서 그런가, 요런 꽃무늬와 알록달록 컬러가 낯설게 느껴진다. 대학때만 해도 이런 스타일만 찾아 다녔는데, 어느새 삭막하고 규격화된 회색 다이어리에 익숙해졌나 보다. 다시 젊음, 청춘, 낭만을 느끼기 위해 다이어리만이라도 스무살 시절로 돌아갈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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