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밥 사진이 없어, 돌솥밥 사진으루다.
지난주 수요미식회 밥편을 보면서, 불현듯 떠오르는 추억이 있었다. 기억이란 녀석은 참 신기하다. 잊었다고, 망각의 세계로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작은 충격으로 인해 떠오르니 말이다.
냄비 밥을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우선 쌀을 씻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쌀을 불린 다음에 노란 또는 은색 양은 냄비에 밥과 적당량을 물을 넣는다. 그리고 석유곤로에 성냥불로 점화를 시키고, 강한 불로 끓인다. 뚜껑이 들썩들썩 어설픈 춤을 출 때, 불을 반으로 확 줄인다. 그리고 10여분이 지나면 완전 약한 불로 줄인다. 이젠 살짝 탄 냄새가 날 때까지 그냥 두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절대 뚜껑을 열어서는 안 된단. 감에 의존해서 불 조절을 해야만 고슬고슬 맛난 냄비 밥이 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과정을 다 내가 했을까? 아니다. 쌀을 씻고 냄비에 넣는 과정은 엄마가 한다. 나는 고작 불 조절만 하면 되는 것이다. 별로 어렵지 않네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불 조절을 쉽게 보면 절대 안 된다. 뜸을 들이는 시간을 맞추지 못하거나, 자꾸 뚜껑을 열게 되면 삼층밥이 되거나, 새까맣게 탄 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매 끼니마다 뜨신 밥을 드셔야 하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는 항상 냄비 밥을 했다. 그 덕에 항상 고슬고슬 윤기가 도는 맛난 밥을 먹으면서 자랐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 절에 가셔야 하는 어머니로 인해 아침 만화를 포기하고 부엌에서 불과 씨름을 하면서 밥을 지었다.
토요일 저녁, "곤로에 다 올려놓고 갈 테니, 너는 불 켜서 처음에는 쎈불로 했다가, 냄비 뚜껑이 들썩거리면 중간 불로 아니다. 그냥 확 약한 불로 줄인 다음 기다려. 자박자박 냄비에서 소리가 날 때까지 그냥 가만히 두면 된단다. 중간에 절대 뚜껑을 열면 안 돼. 알았지."
반복학습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았다. 처음에는 말로 설명했다가, 삼층밥을 만들고 난 후에는 직접 며칠 동안 현장학습을 시켰기 때문이다. 한번의 실수가 있고 난 후, 나도 어느새 냄비 밥 짓기 달인이 됐다. 일요일 아침 엄마가 없으면, 알아서 부엌으로 가, 밥을 지었다.
숭늉을 항상 먹어야 했던 가족을 위해, 살짝 탄 냄새가 날 때까지 기다렸다. 냄비 가장자리에 밥물이 넘칠 때도 있었지만, 절대 조급해하지 않고, 불을 더 줄이거나, 완전 스피디하게 뚜껑을 열었다가 닫으면 됐다. 그렇게 나에게 있어 냄비 밥은 식은 죽 먹기가 됐다.
이제는 눈을 감고도 냄비 밥 정도는 충분히 할 줄 아는 능력자(?)가 됐다. 여기서 잠깐, 최상의 밥물을 맞추는 건 항상 어머니가 해줬지만 말이다. 밥과 물은 어머니 담당, 나는 고작 불 담당이었던 것이다.
성인이 될 때까지, 밥은 항상 냄비에 지어야 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렇게 먹었고, 그것만 먹었기에...
대학생이 됐고, 집보다는 밖에서 밥을 먹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밥 맛을 잃어버렸다. 밖에서 먹는 밥은 하나같이 맛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슬고슬하니 밥알이 살아 있지도 않고, 고소한 밥 냄새도 없이, 그저 스댕 밥 공기에 담겨 나오는 푸석푸석한 밥을 먹어야 했다.
이래서 집밥, 집밥이라고 하나보다. 왜 엄마가 만들어 주는 그 밥맛이 안 날까? 왜 식당은 냄비로 밥을 짓지 않을까? 그런 의문이 들 때쯤, 획기적인 솥을 만났다.
전기밥솥이다. 둥글고 커다란 솥에 밥을 넣고, 솥에 표시되어 있는 눈금에 물을 넣고, 뚜껑을 덮는다. 그리고 취사 버튼을 누르면, 밥이 된다는 것이다. 뜸은? 이라고 질문을 하려고 하니, 버튼이 딸깍 소리를 내면서 보온으로 바뀌더니 알아서 뜸까지 다 해준다. 와~ 이런 신기한 물건이 있다니, 문화적인 충격이었다.
냄비를 불에 올리고, 다 될 때까지 쳐다볼 필요도 없이 그냥 버튼만 누르면 되니, 얼마나 신기하고 획기적인 발명품이던가? 왜 그 동안 우리 집은 그 어렵도 힘든 냄비로 밥을 했을까? 의문이 들었다. 설마 전기밥솥을 살 돈이 없어서? 이건 아니다. 왜냐하면 명절에 식혜를 만들기 위해 비슷한 밥솥을 꺼내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식혜를 만들기 위한 물건인 줄 알았다. 한번도 그 솥으로 밥을 한 적을 본 적이 없었다. 바보같이 우리 집이 가난해서, 전기밥솥 하나 살 돈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신기한 발명품(?)을 모른 채 매번 힘들게 밥을 한 어머니가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었다.
"아니 집에 밥솥이 있는데, 왜 매번 냄비로 밥을 해."
"니 아빠가 냄비 밥을 좋아하기 때문이지."
"아빠도 참... 엄말 힘들게 하는구나."
덕분에 나도 맛난 밥을 먹었다는 걸 모르고, 그저 완고한 아버지만 미워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안다. 더 맛난 밥을, 매 끼니마다 뜨신 밥을 먹게 해주기 위한 어머니의 노력을 말이다. 고작 한 달에 2번 대신 냄비 밥을 하면서, 투덜거렸던 내 자신이 가증스럽다.
지금은 편리하다는 이유로 전기밥솥을 사용하는 어머니. 지금은 매 끼니마다 갓 지은 밥을 찾지 않는 아버지. 세월은 어머니에게 편리함을 아버지에게 완고함을 내려놓게 만들었다. 그럼 나는 어떻게 됐을까? 손이 큰 어머니 때문에 항상 식은밥 또는 찐밥을 먹는다. "너는 밖에서 먹을 때가 많으니, 그냥 먹어. 이렇게 식은 밥이 많은데 밥을 또 어떻게 해."
지난 주말 어머니에게 제발 냄비 밥을 해달라고 간절히 빌고 빌어 드디어 오랜만에 냄비 밥을 먹었다. 밥만 먹어도 좋을 만큼, 어찌나 밥맛이 좋던지, 배추김치와 김만으로 혼자서 냄비 밥을 뚝딱 다 먹었다. 냄비채 들고, 바닥까지 빡빡 긁어서 먹었다. "역시 밥은 냄비 밥이지" 하면서 말이다.
가끔 맛난 밥을 먹고 싶을때, 냄비에 밥을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내가 한 냄비 밥은 엉망이 된다. 밥이 질거나, 너무 고두밥이 되기 때문이다. 냄비 밥 하나는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왜 내가 하면 안 될까? 불 조절은 완벽한데, 어머니가 한 그 밥맛이 안 날까?
하하~ 생각해보니, 불 조절만 배웠지, 물 조절은 못 배웠다. 일반 전기밥솥은 쌀 양에 따라 물을 넣을 수 있게 눈금이 표시되어 있지만, 냄비는 아무런 표시가 없다. 밥물을 손등까지 맞추면 된다고 배웠지만, 쌀에 따라 물을 달리한다는 걸 몰랐기 때문이다. 더불어 쌀을 불려야 되는데, 몇 분 정도 해야 하는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 집이 가난해서 창피했던 냄비 밥, 절대 가난하지 않았고 남들보다 더 좋은 밥을 먹었는데, 왜 그때는 몰랐을까? 일요일 아침 부엌에 퍼지던 밥 향기와 냄비 가장자리에 넘쳤던 밥물이 마르면서 생기는 거미줄 같은 하얀 거품을 걷어 먹고 그리고 밥알 하나하나 윤기가 자르르 돌았던 냄비 밥. 매일 먹었던 그 밥이 이제는 어쩌다 한번 먹는 소중한 밥이 됐다.
곤로에 냄비를 올리고 밥이 다 될 때까지 계속 지켜봐야 했던 냄비 밥은 엄마의 사랑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참 바보같이 너무 늦게 알았다. 집밥의 위대함과 소중함은 반찬 가짓수가 아니라, 정성임을 너무 늦게 알았다. 말로는 전하지 못할 거 같아 이렇게나마 남기고 싶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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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밥솥이 90년도 중반에 보급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사실 남자는 부엌살림에 전혀 관심이 없지만,가끔 라면이 고파서? 냄비를 찾아 올리는 것이 전부였던...
재미있게 써주신 글에 아련한 추억속으로 잠기게 하는군요.
저도 예전 자취할때 냄비로 밥을 해 먹던 기억이 납니다
누룽지를 많이 먹었죠 ㅋ
집밥에는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이 많이들어가는거 같아요.
항상 당연한듯 하지만 ,저희도 당연히 감사해야하는거같습니다
12월시작 잘보내시길바랍니다
맛나 보여요... ㅎㅎㅎ 잘보고 갑니다.~^^
호~ 저도 수요미식회 밥편을 보고 썼던 글이 있는데 공통분모가 꽤 있어서 더욱 반갑게 느껴집니다.
http://blog.naver.com/mudoidoi/220550277733
따뜻하고 정감있는 풍경이 그려지는 듯한 글 잘 읽었습니다.
곤로,, 정말 오랫만에 들어보는 단어네요^^
어렸을 때 저희 집에도 빨간색 곤로가 하나 있었던게 기억납니다ㅎ
우리집은 냄비밥을 해먹진 않아서 그 맛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왠지 그 단어만 들어도 벌써 그 구수함이 느껴지는것 같아요~
다음에 완전정복 하셔서 레시피 한 번 올려주세요~^^ㅎ
냄비밥이 맛있는건 다 아는 사실인데.ㅋㅋㅋ
집에서 제가 해먹으려고 하니까
엄두가 도저히 안 나서 아직 시도는 못했어요.ㅎ
일일이 불 줄이고 조절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기엔
아직.ㅋㅋㅋ 압력밥솥의 편리함이 좋은지라.ㅎㅎㅎ
추억이 담겨진 글이네요. 냄비로 예전에 밥 많이 해 먹었어요. ^^
전기밥솥이 편하다지만 맛은 냄비밥 못따라가죠. 어디선가 구수한 향기가 나는 것 같네요.
초딩때 보이스카웃을 해서 산에가면 항상 냄비에 밥을 지어먹고는 했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밥은 가마솥이 맛있어요 누릉지도 맛있구요 아궁이에다가 고구마나 감자 넣고 구워먹어도 맛있지요
전기밥솥은 편리하긴 해도 .. 뭔가 아쉬운게 좀 있지요 ..
냄비밥 .. 요즘 쉽게볼 수 없는데 .. 식당을 가도 찐밥일뿐이고 ..
까칠양파님 어머니의 사랑이 포근하게 다가옵니다 ..
밥을 먹었는데, 사진보니...식욕이 오르네요. ㅎㅎ 이상한 일이죠^^
ㅋㅋ 잘 보고갑니다.~~
점심 때 회사 근처에 자주 가는 식당이 솥밥을 준답니다! ㅎㅎ
갓 지은 따뜻한 집밥 느낌이라 짱 좋아요! ㅋㅋ
매끼니마다... 어머님이 힘드셨겠어요. ㅠ.ㅠ
저희 가족은 전기밥솥에 오래 보온된 누런 밥을 먹곤 했던 터라,
밥맛을 크고 나서야 알게 됐어요. 식당에서.. ㅎㅎ
부모님 두분 모두 너무 바쁘셔서 국도 밥도 며칠분을 해놓고 먹었던
해묵은 기억이, 저도 오랜만에 나네요..
저희집도 냄비밥을 옛날에 하셨다가 안하시더라고요. 지금은 전기밥솥으로 하죠. 그때의 밥맛이 글을 보며 자꾸 생각나게되네요..
친구들과 주로 놀러가서 냄비밥을 많이해먹곤 했습니다.ㅋㅋ 그래서 저에게는 냄비밥은 어머니보다는 친구들이 먼저생각나네요^^ 갑자기 숭늉이 땡기네요^^ 좋은하루되세요~
냄비밥 맛있죠.
꼬들꼬들한게 제주도에 이사를 아직 안해서 원룸에서 냄비밥을 해먹습니다.
냄비밑에 검게 그을리긴 했지만... 햇반을 먹는듯 맛이 기가 막힙니다.
한마디로 최고죠. ㅎㅎㅎ
밥심으로 살아가는 제게 있어서 밥은 그 어떤 음식보다도 소중하고 고귀한 존재이지요.
아침 밥을 먹지 않으면 하루 종일 일을 못할 정도로 밥은 제게
힘이자 기운입니다. ㅋ
저는 밥중에서 돌솥밥을 좋아합니다. 밥의 따끈함이 오랫동안 남아
먹는 내내 따듯함을 느낄 수 있고 밥을 먹고 난 뒤의 숭늉에
말아먹는 누룽지가 일품이거든요.
고마운 밥에 대한 애정의 댓글 남깁니다. 추운 날씨에 감기 조심하세요~
재밌고 찡한 글 잘 읽었어요. 매끼 어찌 냄비밥을 지으셨을지.. 어머님 정성이 대단하셨네요.
저희 집은 압력솥에다 밥을 지어 먹었는데, 글 읽으면서 솥바닥의 누룽지 긁어먹고 물 부어서 숭늉 해먹던 생각이 났어요.
그 구수한 냄새가 참 좋았는데... 요즘은 너나 할 것 없이 전부 전기밥솥이라, 누룽지도 사 먹어야 하는 현실이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