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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각 평화누리, 캐논 400D세월의 바람이 무섭구나 (2007 임진각 평화누리, 캐논 400D)

 

순간 1 : 좋아하는 연예인에 대한 호칭의 변화에서~


10대시절,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호칭은 오빠였다. "어제 가요톱텐 봤어?. 울 오빠야가 일등 먹었다." 나에겐 그들은 오빠였다. 달리 부를 호칭도 없었고, 그냥 오빠였다. 꺅~ 오빠 오빠 오빠. 아주 정겹고 다정다감한 호칭이었다.

 

20대 시절, 아직까지 오빠가 유효했다. 오빠라고 부를 수 있는 연예인이 여전히 많았다. 그러나 20대 후반으로 가면서 오빠라고 부르고 있지만, 실은 오빠가 아닌 동갑이거나 동생들이었다. 이 현상은 해가 바뀌면서 급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했으며, 서서히 연예인을 부르는 단 하나의 호칭이었던 오빠가 서서히 사라지는 시점이 오고야 말았다. "요즘 걔 멋있더라. 우리랑 갑이라면서, 자슥~ 디게 멋지네 나오네."

 

30대 시절, 이젠 오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지만, 나만 나이를 먹은게 아니므로 그들에게 오빠라는 호칭이 민망해지기 시작했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무슨 오빠는." 대놓고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더불어 삼촌팬, 이모팬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게 되었고, 짝사랑하던 팬이기 보다는 어린 자식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길로 그들을 보기 시작했다. "그 눔 춤 잘 추더라. 어쩜 그리 귀엽니. 저런 아들 하나 있으면." 앞으로 몇 년이 지나면 손자뻘이 되는 건가? 세월이 야속하구나~

 

 

순간 2 : 아기의 눈은 정직하다~


지하철, 엘리베이터 안에서 간혹 아기들을 만나게 된다. 개인적으로 아기들을 무서워하지만, 스쳐 지나가는 아기들은 그저 귀엽다. 아기의 웃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 아기에게 한 손가락을 내밀어 악수를 하거나 까꿍을 해주기도 한다. 그럼 꼭 옆에 있는 아기의 엄마는 "언니야, 우리 00 이쁘다고 하네. 이쁜 언니 보니깐 좋지." 10대 시절은 언니였다.

 

20대가 되면, 언니에서 이모가 된다. 인척관계도 아닌데 이모가 된다. "봐봐, 이모가 사탕 줄게. 아이가 넘 귀엽네요."라면서 너스레까지 떤다. 언니가 없는 나에게 이모라는 호칭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길에서 만난 아기들에게 난 이모다. 언니에서 이모로 바뀌는 시점에서 살짝 힘들긴 했지만, 이모라는 호칭을 이때가 아니면 들을 수 없기에 내심 즐겼다.

 

30대가 되니, 완벽한 이모가 됐다. 그런데 이젠 다른 호칭으로 변신해야 할 시점이 왔다. 어느 날 마트에서 만난 장난꾸러기 꼬마에게, "이모가 사탕 하나 줄까. 자 이모가 주는 거다. 맛있게 먹어." 혼자 흐뭇해 하면서 아이의 엄마와 눈인사로 안녕을 고하고 다른 길로 가는데, 뒷 통수를 강타한 한마디, "저 아줌마가 자꾸만 이모래?" 헉~ 이젠 이모 졸업을 해야 하는구나.

 

 

순간 3 : 뒤태도 늙나요?


마트나 백화점 식품코너에 가면 놓치지 않고 가는 그 곳, 바로 시식코너다. 집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기에, 높은 경쟁률을 뚫고서라도 새로 나온 제품의 시식은 꼭 하려고 한다. 주말 때는 초딩들과 전쟁 아닌 전쟁을 하게 되지만, 카트를 끌고 다니는 나에게 판매직원은 언제나 우선권을 준다. 물론 구입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맛만 보는 경우가 많다.

 

시식을 하기 위해서라면 산 물건도 없는 텅 빈 카트를 끌고 다니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나는 잠재고객이라는 생각으로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시식을 실시한다. 구입을 하게 되면 당당히 몇 점을 더 먹더라고, 시식만 할 경우 딱 한번만 먹는다. 이건 나만의 정도다. 누구에게나 다 열려있는 시식코너이지만, 열정적인 판매원으로 인해 가끔 난처해지기도 한다.

 

부끄러움이 많은 10대 시절, 엄마의 도움이 없으면 못 먹는 코너였다. 요즘 아이들은 혼자서 엄청 잘 먹고 다니던데, 왜 난 먹으라고 둔 저 맛난 음식들을 그림의 떡으로만 알았는지, 구입하지 않으면 못 먹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엄청 순진하고 순박했던 시절이었다.

 

돈 맛을 알게 된 20대 시절, 사야 할 물품은 식품이 아닌 화장품과 의류였지만, 식품코너는 놓치지 않고 방문했다. 미리 구입한 물품들을 카트에 가득 담고, 당당히 시식을 시작했다. "언니, 이거 오늘만 1+1이야." "아 그래요. 그런데 뒤 맛이 조금 느끼한 거 같네. 담에 올게요." 등등 판매직원과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면서 시식을 즐겼다.

 

동안임을 끝까지 강조하고픈 30대 시절, 카트를 끌고 지나가는 나를 향해, "아가씨, 이거 맛 좀 보고 가요. 오늘만 특별 이벤트기간이에요." 아직은 아가씨구나. 여전히 아가씨로 봐주는구나. 내심 흐뭇해하면서 하나만 먹을까라고 이쑤시개를 들었다. 그런데, 그런데 이제는 뒷모습만 보여줬는데 "아줌마, 이거 맛 좀 보고 가요"라고 한다. 앞모습을 보지도 않고 뒤태만 봤는데, 아줌마라고 한다. 홧김에 "내가 어딜 봐서 아줌마에요"라면서 앞모습을 확 보여주고 싶지만, 앞모습을 보고 "아줌마 맞네"라고 할까 봐 겁이 난다.

 

 

20대 후반까지 술집에 가면 민증검사를 당했던 내가, 이제는 아줌마, 아줌마, 아줌마에 익숙해져야 하는 나이가 됐다. 이젠 알겠다. 예뻐 보이고 싶은 나이가 아닌, 어려 보이고 싶은 나이가 됐다는 사실을 말이다. 또래보다는 어려 보인다는 소리를 듣긴 하지만, 아이의 눈에 비친, 판매직원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은 이젠 어엿한 "아줌마"구나. 그런데 이모까지는 견딜 수 있는데, 아직 아줌마는 낯설다. 내가 인정하는 순간, 아줌마로 전략될까 봐 겁이 나서 그런 거 같으니깐 말이다. 언니는 내가 생각해도 과하니, 아직은 이모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다. 아저씨보다 오빠가 좋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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