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 대성갈치찌개
멸치볶음을 할때 손질한 멸치는 기름을 두르지 않은 후라이팬에 살짝 볶는다. 그래야 수분도 날아가도 비린내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생멸치회를 먹는다고 했을때, 어느정도 비린내가 있을 거라고 예상을 했다. 고등어회도 엄청 잘 먹는데, 멸치쯤이야 식은 죽 먹기겠지 했다. 그런데 비린내는 커녕 보드라운 질감에 고소함과 단맛뿐이다. 이 좋은 생멸치회를 이제야 먹다니, 부산 기장 대변항에 있는 대성갈치찌개다.
누군가는 비도 오고 그래서 네 생각이 난다지만, 나는 생멸치회가 생각난다. 생멸치가 처음은 아니다. 작년 통영에서 멸치회무침에 튀김 그리고 찌개를 먹었고, 지난 겨울 제주에서 멜치국을 먹었다. 생멸치에 대해 불안감은 일절 없지만, 생멸치회는 살짝 거시기(?) 했다.
왜냐하면 제주에서 먹었던 맑은 멜치국은 내취향이 아니었다. 그래서 멸치 요리는 빨간 양념이 필수라 여겼는데, 무슨 심보인지 생멸치회에 대한 궁금증은 갈수록 커져만 갔다. 4~5월 기장은 멸치가 제철이다. 산지에 가야 먹을 수 있으니, 떠나자 기장으로.
비도 오고 그래서 대변항 주변은 인적이 드물더니, 여기는 인산인해다. 밖에 주차 되어 있는 차를 보면서 짐작을 하긴 했지만, 12시도 안됐는데 만원이라니 이게 바로 최자로드의 힘인가 싶다. 하긴 나도 최자로드를 보고 대성갈치찌개 집을 선택했으니깐. 유튜브에서 봤을때는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야 했지만, 지금은 테이블이라 의자에 앉으면 된다.
생멸치회를 먹는다고 따로 말하지 않으면 양념된 회무침이 나간단다. 매우 중요한 포인트라서 꼭 기억해야 한다. 기상예보를 보니, 부산에 비가 내린다고 해서 전날 전화를 했다. 혹시나 멸치잡이 배가 나가지 않아서 생멸치회를 먹지 못할까봐서다. 먹을 수 있다는 답을 듣고서야 안심을 했다.
메뉴판 옆에 있는 다이나믹듀오 최자 사인,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갈치는 제주산이지만, 멸치는 기장산이다. 산지에 왔으니 산지 음식을 먹어야 하는 법. 멸치회 소(20,000원)와 멸치찌개 소(20,000원)를 주문했다. 산지 맛을 제대로 맛봐야 하기에, 방앗잎은 넣아달라고 했다.
반찬 종류는 많으나 딱히 끌리는 건 없다. 삶은 양배추에 뱝이랑 멸치젓갈이랑 넣어서 쌈으로 먹었다. 밥을 많이 넣어야 했는데, 깊은 맛을 느낄 새도 없이 윽~ 짜다.
생멸치회의 비린내를 잡기 위해 깻잎에 상추, 양배추에 다시마까지 쌈채소가 많구나 했다. 아직 생멸치회를 먹기 전이다.
두둥~ 생멸치회 등장이다. 역시나 예상대로 비린내땜에 고추가 고명으로 올려져 있구나 했다. 기장 멸치는 몸길이 10~15㎝ 안팎의 크고 굵은 대멸(大蔑)로 반으로 가른 후, 뼈를 제거했다. 광어랑 참돔처럼 우윳빛깔은 아니고, 고등어랑 전어처럼 몸색깔이 진하다.
은빛 비늘도 제거를 한 것일까? 멸치 속살은 처음 본다. 강도의 차이겠지만 비린내는 확실히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코를 가까이 댔는데, 어라~ 비린내는 하나 없고 고소한 참기름 향만 가득이다. 생멸치회라고 하지만, 리얼 생은 아니고 참기름에 무쳐서 나온다. 아무리 참기름 옷을 입었다고 해도 비린내가 일절 나지 않다니 신기하다. 이때 친구왈, "생멸치회에는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아."
예상과 달리, 비린내는 일절 없고 고소함에 감칠맛이라고 해야 할까나, 상쾌한 단맛이 가득이다. 어찌나 보드라운지 굳이 저작 운동을 하지 않아도 부드럽게 넘어간다. 초장 없이 먹어도 충분하지만, 쌈이라서 초고추장을 아주 조금 더했다.
잔가시가 있지만 먹는데 지장은 일절 없다. 비주얼은 겨울 제철 방어를 먹듯 기름짐이 엄청 날 줄 알았는데, 기름이 올라오긴 했지만 담백할 정도로 과하지 않다. 산지에서 갓잡은 멸치로 만든 회이니, 신선도는 최상급이다. 이런 줄 모르고 비린내 어쩌고 저쩌고 했으니, 무지 부끄럽다.
깻잎은 향을 더하고, 양배추는 식감을 더하고, 다시마는 향에 식감까지 생멸치회를 더욱 빛나게 하는 조연이다. 이 좋은 걸, 왜 이제야 먹었나 싶다. 비린내가 있으면 초록이를 주문하려고 했는데, 알콜의 도움따위는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완벽했다. 겨울이면 굴과 꼬막을 먹듯, 봄 특히 5월에는 멸치회를 먹으러 기장에 가야겠다.
멸치회는 하나만으로도 이번 부산 여행은 성공적이다. 고로 멸치찌개는 기대 이하여도 괜찮다. 왜냐하면 방앗잎은 너무나도 어색하니깐. 본토의 맛을 제대로 느끼고 싶어, 방앗잎을 빼지 말고 넣아달라고 했다. 방앗잎 향이 강한 줄 알고 있었지만, 고수도 잘 먹는데 방앗잎 쯤이야 했다.
칼칼한 국물 속 툭 치고 들어오는 방앗잎의 향, 고수보다는 산초와 비슷한데 처음이라 그런 것일까? 어색하고 낯설다. 친구는 현지인답게 즐겨먹는지 아무 거리낌이 없는데, 나는 자꾸만 목에서 턱턱 걸린다. 맵린이라서 매운 국물땜에 힘들 줄 알았지, 방앗잎땜에 힘들 줄은 몰랐다.
보드러운 멸치회가 너무 좋아서일까? 열을 받아 육질은 단단해졌지만, 생멸치가 갖고 있는 매력은 헐거워졌다. 육질은 단단해졌지만, 뼈는 여전히 연해서 굳이 뼈를 발라내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불편하다면 굳이 뼈까지 먹지 않아도 된다.
대멸이라고 하더니, 멸치가 꽤나 굵직하다. 국거리용 멸치를 사서 물에 불리면 멸치회 맛이 날까? 이런 가당치도 않은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왜냐하면 아직 식사 중인 친구를 기다려야 하니깐. 방앗잎을 넣지 않았더라면, 매운맛 조절을 했더라면, 멸치찌개를 좀 더 많이 먹을 수 있었을까? 아니다. 멸치회를 먹지 않았다면 가능했을 것이다.
작년과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기장 멸치축제가 열리지 않았다. 내년에는 축제도 보고, 멸치털이 배도 만나고, 생멸치회는 기본 찌개가 아니라 멸치튀김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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