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동 부민옥
개인적으로 육고기는 살코기만 좋아하다 보니, 비계와 내장으로 만든 음식이 앞에 있으면 늘 작아진다. 친구가 다동에 있는 부민옥에 가자고 하기에, 당연히 육개장을 먹을 줄 알았다. 그런데 덜컥 양곰탕을 주문한다. 뽀얀국물은 맘에 들지만, 내장 특유의 냄새는 여전히 힘들다. 언제쯤이면 내장과 비계 맛을 알게 될까나, 아마도 다음 세상에서나...
고층빌딩 숲에서 단층 건물이라니, 땅값 비싼 동네일텐데 부민옥 주인장은 건물주(님)이 아닐까 싶다. 1956년부터 현재까지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부민옥이다. 서울미래유산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육개장이 시그니처 메뉴다보니 종종 찾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둘이 갔다. 늦은 오후라 브레이크타임일 듯 싶어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그냥 와도 된단다. 2시부터 5시까지 브레이크타임인 줄 알았는데, 코로나19때문인지 영업 중이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내부는 한산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테이블에는 칸막이가 있고, 세척이 가능한 컵과 종이컵도 있다. 개인적으로 종이컵 안쓰기 운동(?)을 하고 있어, 친구와 함께 일반컵으로 물을 마셨다.
부민옥이 처음인 친구라 당연히 육개장을 먹을 줄 알았다. 그래서 선지국(육고기 내장은 먹지 못하면서 특이하게 선지는 먹는다)이나 사골우거지국을 먹을까 했는데, 양곰탕(10,000원)을 먹겠단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살짝 당황했지만, 아내 정신을 차리고 육개장(9,000원)을 주문했다. 나에게 부민옥 = 육개장이니깐. 안주류에 있는 부산찜. 혹시 육고기 부산물로 만든 찜인가 했더니, 아귀찜과 비슷한 해물찜이라고 한다.
기본찬은 변함이 없나보다. 그때도 지금도 깍두기와 배추김치 그리고 멸치볶음이 나왔다. 메뉴가 주로 국물이니 깍두기와 배추김치는 이해가 되는데, 멸치볶음은 왜 나오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고소, 바삭, 달달은 아니고, 울 아부지가 좋아하는 투박한 멸치볶음이다. 집에서도 간혹 먹는데, 어무이표 멸치볶음은 저기에 마늘이 꽤나 많이 들어간다.
양곰탕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양지고기로 만든 곰탕인가 했다. 그런데 양구이의 그 양이다. 일년에 한두번, 아주 가끔 곱창구이를 먹는다. 그때 식감이 좋아서 양구이를 같이 먹곤 했는데, 탕은 처음이다. 비주얼은 설렁탕스러운데 숟가락으로 휘저으니 국물 속에 숨어있던 양이 짠하고 등장했다.
친구는 냄새가 전혀 없어 살짝 아쉽다고 하면서 맛나게 먹는다. 내장이라 냄새가 없을 수 없는데 하면서 맛만 보자고 했다. 건더기는 자신없고 우선 국물에 도전을 했다. 한숟갈은 괜찮지 했는데 결과는 전현 안괜찮다. 냄새가 없다는 친구와 달리, 내 기준에서는 양 특유의 향이 강하게 났기 때문이다. 식감 좋은 양구이와 달리 양곰탕은 힘들다.
부민옥 육개장의 장점이라면 단연코 가득가득 들어 있는 살코기다. 비계를 어찌나 잘 처리했는지, 물렁한 느낌적인 느낌은 하나도 없이, 오로지 잘근잘근 고기만 씹힐 뿐이다. 육개장을 보니, 굳이 양곰탕에 도전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내장이 맛있다고 하지만, 살코기도 충분히 맛있기 때문이다.
대구식 육개장은 얼큰함이 매력이라면, 부민옥 육개장은 얼큰함보다는 달큰함이 매력이다. 개인적으로 단음식을 그닥 좋아하지 않지만, 설탕이 아니라 파에서 우려나온 달달함은 좋아한다. 파가 아니라 가래떡인가 싶을 정도로 굵기가 어마어마하다. 육개장은 오래 끓여야 하는 음식이라 파를 굵게 썰었고, 결과적으로 파의 매운맛은 사라지고 달큰함만 남았다.
고기와 파 그리고 국물은 같이 먹어야 정석이다. 살코기이지만 질기지 않고, 파는 달달하니 부드럽다. 국물은 맵거나 짜거나 자극적이지 않고 순한데 숟가락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다. 입에 착착 감기는 국물맛이랄까? 엄청 많은 살코기가 있는데도 연쇄살국마처럼 자꾸만 국물만 먹게 된다.
처음 왔을때는 밥을 말아서 먹었는데 이번에는 국물맛을 끝까지 유지하고 싶어 말지 않았다. 대신 밥을 올린 숟가락을 국물에 적신 후, 고기와 파를 올려서 먹는다. 육개장만으로도 훌륭하지만, 역시 국물에 밥은 필수다.
깍두기를 올려서 먹어도 좋다는 거, 안 비밀이다. 단 멸치볶음은 예외다. 밥을 말아서 먹으면 든든한 식사가 되고, 육개장만 먹으면 훌륭한 안주가 된다. 양곰탕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졌지만, 육개장 앞에서는 개선장군인 듯 한없이 당당했다.
'맛을찾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뜻한 굴짬뽕 잠원동 아니고 용강동 노독일처 (20) | 2021.02.17 |
---|---|
멍게와 굴이 만나 멍게굴탕 내수동 굴뚝배기전문점모려 (11) | 2021.02.15 |
얼큰한 역전해장국 든든해 염리동 역전회관 (22) | 2021.02.10 |
겨울에는 평양냉면 능라도 마포점 (16) | 2021.02.08 |
과메기 놓치지 않아 내수동 굴뚝배기전문점모려 (21) | 2021.02.05 |
유니짜장은 면으로 시작해 밥으로 마무리 신도림동 신승반점 (23) | 2021.02.01 |
시원 깔끔 담백한 대구탕 을지로4가 삼우일식 (24) | 2021.01.29 |
꼬막비빔밥과 생굴을 한꺼번에 용강동 연안식당 (18) | 2021.01.27 |
매운 굴짬뽕 보다는 하얀 굴짬뽕 을지로 안동장 (22) | 2021.01.25 |
굴밥 굴전 굴젓 생굴까지 다양하게 내수동 굴뚝배기전문점 모려 (20) | 2021.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