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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국시집 서울미래유산

쫄깃한 면발을 기대하지 마라. 다양한 고명을 기대하지 마라. 자칫 밋밋할 수 있으나, 먹다보면 어느새 순수함에 흠뻑 빠지게 된다. 사골 육수에 손으로 만든 면을 칼로 가늘게 썰어 끓여낸 국시. 소박하지만 그 정성만은 절대 소박하지 않다. 역사가 맛을 만드는 서울미래유산 성북동 국시집이다.

 

SINCE 1969. 성북동국시집은 같은 자리에서 2대째를 이어오고 있는 칼국수 전문 식당이다. 국시는 국수의 경상도 방언이다. 하나회를 일거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만든 그분이 파란기와집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곳을 자주 들렀다고 한다. 칼국수 정치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칼국수를 좋아했던 대통령 덕에 문정성시를 이뤘단다. 현재는 1대 이옥만 할머니의 딸인 이수자(2대)씨가 운영하고 있다.

 

역사가 맛을 만드는 서울미래유산, 이번에는 칼국수가 아니라 국시다. 매주 토요일은 휴무.

 

2층에도 공간이 있고, 액자 옆 문으로 들어가면 또다른 공간이 나온다. 12시 30분이면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닌데, 한산해서 혼밥하는데 눈치가 보이지 않았다. 먹을때는 앞, 옆 테이블에 사람이 있었서 찍지 못했다가 나올때 아무도 없어서 후다닥 담았다. 손소독에 연락처를 남기고, 음식이 나올때까지 마스크는 벗지 않는다. 코로나19시대 기본 에티켓이다.

 

국시 국물이 사골이니, 수육이 있는 건 당연지사다. 전에 문어는 주인장이 안동분이라서 그런 듯 싶다. 여럿이 오면 국시는 기본, 수육에 문어까지 먹을텐데 혼밥이니 국시 보통(10,000원)을 주문했다.

 

안동 국시 등장이오~

반찬은 묵은지에 가까운 완전히 익은 배추김치와 고깃집 스타일의 무생채가 나온다. 무생채는 당일에 만든 듯, 생생함이 살아 있다. 

 

주문을 하고 국시가 나올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머리 두건에 앞치마까지 옷에서 느껴지는 정갈함이 음식에서도 느껴진다. 워낙 화려한 칼국수를 많이 먹다보니, 뭔가 많이 빈듯한 느낌이지만 안동 국시는 원래 이렇다.  

 

고명은 애호박과 고기뿐, 그것도 양이 많지 않다. 바지락에, 갖은 해산물에, 들깨에 팥 등 화려함의 극치도 많지만, 요건 순수함의 극치다.

 

사골 육수라고 해서 육향이 강하게 날까 했지만, 은은하니 과하지 않다. 간은 되어 있지만, 슴슴할 정도로 약하다. 그래서 테이블에 있는 양념장을 바로 넣어서 먹기도 하지만, 순수함을 계속 즐기고 싶어서 지금 이순간을 유지하기로 했다. 

 

기존에 먹던 칼국수에 비해 면이 많이 가늘다. 기계로 썬 면이 아니라 칼로 직접 썬 면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간혹 굵은 면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 칼국수는 쫄깃한 면발이 대세인데, 성북동국시집은 쫄깃함보다는 부드러움이다. 그렇다고 퍼진 면은 아니다.

 

아~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자극적인 음식을 즐겨먹진 않지만, 이건 심심해도 너무 심심하다. 물론 사골 육수의 깊은 맛이 느껴지지만, 생얼도 좋지만 비비크림이라도 발랐으면 좋겠다. 

 

이때 필요한 건, 김치다. 무생채와 잘 익은 배추김치, 현재는 무생채가 승리다. 왜냐하면 배추김치가 너무 강해서 국시맛을 다 잡아먹기 때문이다.

 

좀 더 강함이 필요해~

양념장이라고 해서 청양고추 팍팍 고추장 양념일 줄 알았는데, 파 많이에 고춧가루 피처링이다. 하지만 국시와 만나면, 알싸한 파향이 순수천사에서 타락천사로 만든다.

 

강함에는 강함이 진리다. 이번에는 묵은지같은 잘 익은 배추김치가 승리다. 참, 앞접시에 덜어서 먹는 건, 아직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정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후추덕후에겐 후추가 필요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여전히 정답을 찾지 못했다. 아무래도 소환을 해야 할 순간이 왔다. 테이블에는 파양념장밖에 없으니, 직원에게 물어봤다. 후추 있나요? 있단다. 아싸~ 후추 뿌려, 팍팍 많이 뿌려, 후추향에 코가 막힐 정도로 뿌려뿌려. 역시 나의 정답은 후추다. 사골국물에는 후추가 딱이다. 후추를 더하긴 했으니 순수함은 살아 있으니, 배추김치가 아닌 무생채가 승리다. 

 

마지막은 후추에 파까지 다 때려넣고 자극적으로 끝냈다. 자극적이라고 하나, 불닭볶음면같은 진짜 자극적인 음식에 비해서는 여전히 순수하다. 국시를 먹으면서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다. 다음에는 혼자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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