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다음책)
히가시노 게이코의 가면산장으로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에 다시 푹 빠져 버렸다. 여기서 잠깐, 미스터리와 스릴러에 대해서 구분을 할 필요가 있다. 미스터리는 범인이 누구인지 마지막 페이지에서 알 수 있다. 즉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면산장이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스릴러는 미스터리와 반대로 범인이 누구인지 첫 페이지에서 알 수 있다. 바로 그렇다.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12송이 백합과 13일간의 살인이 스릴러 소설이다. 그런데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해도 된다. 왜냐하면, 범인의 정체는 알지만, 그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소설 끝부분에 가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인 안드레아스 프란츠는 독일 소설가이다. 솔직히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는 독일 미스터리 스릴러의 전형을 세운 것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출간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독일에서 프란츠 신드롬이라고까지 불리는 스릴러 소설의 유행을 가져왔다고 한다. 그의 작품에는 여형사 율리아 뒤랑이 계속 나온다. 그래서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작품들을 율리아 뒤랑 시리즈라고 하고 12송이 백합과 13일간의 살인도 시리즈 중 하나다. 10개의 시리즈가 있는데, 아직 출판되지 않은 작품들도 있다. 기화가 되면 출판된 작품과 출판될 작품 모두 읽고 싶다. 12송이 백합과 13일간의 살인으로 인해 팬이 됐으니깐.
이 작품은 첫 페이지에서 스릴러 소설답게 범인의 존재를 알려준다. 12살 어린 여자아이 카를라는 친구와 함께 어떤 파티에 참석을 한다. 거기서 뜻하지 않게 기분이 좋아진다는 약을 먹게 되고, 그 이후 그녀는 사라진다. 그리고 2년 후 성매매업소에서 있는 카를라, 아직 14살이지만 마약과 보드카에 빠져 있다. 그러다 우연히 친오빠를 만나게 되고, 오빠는 그녀를 구해주다가 누군가에게 죽음을 당한다. 그리고 반년 후 카를라 역시 죽게 된다.
5년전, 파트릭이 죽은 후 처음으로 그 방에 들어섰던 그날, 남자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본래 남자는 그저 방 안을 한 번 둘러보고, 아들의 손길이 담긴 물건들을 만져보고, 아들의 필체가 적힌 공책을 넘겨보고, 아직은 아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방 안의 공기를 마시고자 했을 뿐이다. 그런데 무심결에 넘겨본 파트릭의 공책에서 깜짝 놀란 만한 내용을 보게 되었다. |
카를라의 안타까움 죽음 때문에 이렇게 무시무시한 연쇄살인을 해야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유명인사라고 치부하는 그들의 더러운 진실들이 하나하나 까 발라지면서, 왜 그가 연쇄살인범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백합은 죽음을 뜻한다고 한다. 그런데 왜 12송이 백합일까? 그는 총 9명의 사람을 죽였다. 은행장, 공인중개사, 미술관 관장, 천주교 사제장, 유명음악가, 의사, 검사장, 내무부장관 그리고 나머지 한명은 책에서 직접. 13일 동안 그의 살인은 연쇄적으로 계속 일어난다.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고, 완벽한 살인을 한다. 그런데 시체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성기와 고환을 자르고, 피로 이마에 666을 남기는 것이다.
이 끔찍한 사건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그녀, 율리아 뒤랑 형사, 솔직히 사건을 푼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범인이 잘 만들어둔 동선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 같지만, 그녀의 냉철한 시선과 부패와 거리가 먼 청렴함이 그녀가 이 사건을 맡게 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범인이 그녀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범인은 뒤랑형사에게 편지를 보낸다. 살인을 한다는 예고장으로 죽은 사람에 대한 묘사를 하지만, 그녀는 밝혀내지 못한다. 누군가 죽게 된다는 사실은 알지만, 누구인지 그리고 언제 죽는지 모른다. 신고가 들어오고, 첫 살인과 같은 모습의 피해자를 본 후에야 이번에 이 사람이구나 할 뿐이다.
『이 자식은 또 일을 저지를 모양인데, 우리는 그게 언제일지, 어디일지 전혀 몰라요. 조만간 전화 한 통을 받고 달려가면 시체와 마주하게 되겠죠. 그럼 우린 앞선 두 사건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무 의미 없는 일을 하게 될 거에요. 어떤 답도 못 얻는 심문을 하고, 소득 없이 단서를 찾아 다니고, 그러고 나면 또 한 장의 편지가 오고, 이 게임은 우리가 대중에게 웃음거리가 될 때까지 계속 되겠죠.(본문에서)』
그런데 사건을 뜻하지 않던 곳에서 조금씩 풀리게 된다. 전혀 다른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속에 연쇄살인을 푸는 열쇠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통해 유명인사라는 사람들의 추악한 진실을 알게 되지만, 왜 범인이 그들을 죽여야 하는지 동기는 끝내 밝히지 못한다. 나는 알고 있는데, 그들은 왜 이리도 모를까? 진짜 알려주고 싶었다. 이래서 미리 알고 보는 게 더 재미가 없는 건가 싶다.
소설에서 뒤랑형사는 연쇄살인범을 찾고 있고, 책을 읽고 있는 나는 범인의 정체를 찾고 있고, 둘 다 같은 사람을 찾고 있었다. 범인의 정체를 암시하는 복선들이 많았을거 같은데, 그 중 한 부분에서 범인이 소설 속 인물 중 누구인지 찾게 됐다. 그전에는 혹시 이 사람이 아닐까 싶었지만, 그 복선으로 인해 확실해졌고 이제는 뒤랑형사가 그를 찾는 과정을 지켜볼 일만 남았다.
그러나 모든 살인이 다 끝나기 전에 뒤랑형사는 범인의 존재를 밝히지 못했다. 모든 살인을 다 끝내고, 범인이 직접 '나 누구요'라고 알려주기 전까지 말이다. 그런데 참 개운하지 않다. 누가 봐도 마땅히 죽어도 되는 사람들인데, 이런 방법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떵떵거리면서 살았을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살인은 정당화되지 않기에, 모든 복수를 마친 아버지는 슬픈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안드레아 프란츠의 작품들 (출처 - 다음책)
이게 영상이었다면, 무섭지는 않지만 끔찍해서 눈을 질끈 감고 봤을 텐데, 책이라 그럴 수 없어 그냥 참고 다 읽었다. 살인 방법이 너무 끔찍했으나, 아버지의 복수임을 알기에 그런 그의 모습이 너무 슬프게 다가왔다. 누구라도 내 자식이 그런 죽음을 당하게 된다면, 똑같이 하지 않았을까 싶다. 왜 죽었는지 모르고 살았던 시간과 죽음의 이유를 알고 복수를 준비하는 시간 그리고 복수를 실행하는 시간, 그에게 있어 어느 시간이 더 끔찍했을까? 아마도 왜 죽었는지 모르고 살았던 시간일거 같다.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12송이 백합과 13일간의 살인은 법에서는 교묘히 피하는 인간들이기에 이렇게라도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도 이런 인간들이 많이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개운함보다는 무거운 맘이 들었다.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은 진짜 쉼을 모른다. 초반부는 읽다가 딴짓이 가능한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하면 책을 놓을 수가 없다. 그리고 앞부분을 기억하기 위해 계속 되뇌면서 읽게 된다. 메모장에 따로 체크까지 하면서 그냥 읽으면 다 밝혀질 범인의 존재를 굳이 중간에 밝히려고 했던 내가 참 우습다. 이런 소설을 만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셜록이 되고, 코난이 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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