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온 곳, 대구. 앞으로 남은 시간은 1시간 30분, 역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는 싫어서 밖으로 나갔다. 검색은 딱 두 단어, 동대구역 + 돼지연탄구이 = 동대구 돼지석쇠 우동이 나왔다. 다른 곳을 더 찾아보다가, 아까운 시간만 허비할 거 같아서, 추가 검색없이 바로 갔다.



동대구역에서 걸어서 10~15분거리, 30분은 이동시간, 1시간은 먹는 시간, 알차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 같다. 괜한 발걸음을 할까봐, 오면서 전화를 했더니 영업을 한단다. 혼자와도 된다고 하니, 도착해서 주저없이 들어갔다. 혼밥과 혼술을 즐겨하지만,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나홀로 고기 먹기, 드디어 대구에서 성공했다. 만약 서울이었다면, 절대 못했을텐데... 낯선 곳에 가면 나도 모르게 용감함이 생기나보다. 낯이 두꺼워지는 건가?!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이어서 손님이 별로 없지만, 얼마 후 빈자리 없이 꽉 찼다. 모두 남자손님으로, 여자손님은 나뿐. 진짜 서울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바닥은 자갈, 돌맹이가 잔뜩. 요런 분위기 참 오랜만이다. 미리 전화를 해서 그런지, 단골인냥 친하게 대해 주셨다.



메뉴판에 1인분이라고 나와 있지만, 1인분만 주문할 수 없단다. 석쇠 불고기와 석쇠(매콤)불고기, 반반이 되냐고 물어보니 안된단다. 하는 수 없이 석쇠 불고기 2인분을 주문했다.



주문 후, 연탄불에 석쇠를 올리고, 그 안에 돼지고기를 넣는다. 그리고 불맛 가득 가득~ 고기가 익어간다. 



기본찬은 청양고추로 인해 깔깔해진 양파간장과 단무지, 깍두기, 상추 그리고 쌈장. 깍두기로 감칠맛을 느끼고 있는데, 연탄불에 익어가는 고기 냄새가 솔솔 나에게로 온다. 아~ 미치긋다. 



내가 앉았던 곳 바로 뒤가 고기를 굽는 곳이었다. 그 덕분에 먹기도 전에 후각은 벌써 포만감이 된 상태였다. 나왔다. 그분이 나왔다. 드디어 나왔다. 



민낯처럼, 겉치장없이, 그저 순수하고 촌스럽고 순박한 자태, 석쇠불고기. 눈 씻고 찾아봐도 화려함은 없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두근거린다. 요런 느낌, 진짜 오랜만이라서 그런가 보다. 다시 한번 냄새부터~ 음... 스멀스멀 연탄불 냄새와 함께 퍼지는 돼지의 향, 어릴적 친구를 만나 듯 참 반가웠다. 그나저나 2인분이라고 하는데, 혼자서 충분히 다 먹을 수 있을 거 같다.



비계를 절대 못먹는 나. 하지만 오늘은 왠지 비계를 먹을 수 있을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왜나면, 비계를 빼고 먹으면 먹을게 별로 없고, 연탄불향에 샤워를 했기에 맛없는 비계가 아닐 거 같기 때문이다.



녹색이가 빠지면 서운한 법. 고깃집에서 나홀로 고기 먹기 + 혼밥에 혼술 시작~



우선 고기부터, 역시 연탄불향이 나는게 딱 좋다. 다음은 고기 올리고, 간장에 빠진 양파와 청양고추를 넣고 아~함. 불고기 간이 강하지 않아서, 간장에 찍어 먹어도 짠 느낌이 들지 않는다. 바삭보다는 촉촉에 가까운 식감, 육즙보다는 향으로 먹어야 하는 석쇠 불고기. 음~ 어릴적에 먹었던 그 맛이 나는거 같다.



고기는 뭐니뭐니해도 쌈이 진리. 넉넉하게 쌈장까지 올리고, 아~함. 좋은데 참 좋은데, 아쉬운 무언가가 있다.



쌈에 마늘이 빠지면 안되는 법. 알싸한 마늘에, 연탄향 가득 품은 고기의 만남,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중간 중간 녹색이로 달래주면 고것도 참 좋다.



원래 고기 먹을때 밥을 먹지 않는데, 요건 이상하게 밥이 당긴다. 흰쌀밥 올려서 또 한쌈. 옆 테이블이 꽉 차는 것도 모르고, 뻘쭘하게 고깃집에서 어떻게 혼밥을, 이딴거 이제는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쯤은 상관없다. 나 혼자 즐기는 이 시간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한가지, 서울이 아니어야 가능하다. 왜냐면, 서울에서 나홀로 고기 먹기는 진짜 자신이 없다.



원래는 김광석 거리도 가고, 매운 떡볶이에, 똥집 골목까지 엄청난 계획이 있었는데, 일정이 꼬이는 바람에 고작 2시간 정도 머물다 떠났다. 여행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구의 맛 한가지는 맛보고 와서 좋았다. 또 갈 수 있겠지.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