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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예쁜 가을 하늘입니다.

퇴근길, 일상에서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그 길이 나만의 런닝머신이다. 매일은 못하더라도, 일주일에 3~4번 정도는 하려고 노력한다. 생각보다 짧은 코스로 인해 땀이 날 즈음에 집에 도착한다는 게 문제지만.

 

나만의 런닝머신은 2번의 대형 장애물인 교차로를 만난다. 신호를 기다리면서, 잠시 쉬어가는 시간으로 발목 돌리기를 하거나, 어깨를 풀어주면서 그 시간을 즐긴다. 빨간불에서 녹색불이 들어오면 잠시 멈췄던 런닝머신은 다시 움직인다.

 

그런데 가속이 붙기도 전에 갑자기 멈춰 버린다. 내 의도와 달리 어쩔 수 없는 멈추는 것이다. 왜냐하면 얌체 운전자 때문이다. 큰 교차로는 우회전을 할 수 있는 도로가 만들어져 있다. 도로는 건널목이 끝나는 지점과 연결되어 있다. 분명 녹색불이고 가속을 준비중인 런닝머신이 제대로 작동을 하려는 순간, 쌩~. 직진본능이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정말 눈 앞에서 쌩 하고 지나가는 차를 보면 말이 안 나온다. 무슨 큰 일이라도 났을까? 잠깐의 시간도 기다리지 못하는 것일까? 정말 잠시만 아주 잠시만 참아주면 참 좋을 텐데, 왜 그들은 그렇게 질주본능을 발휘하는 것일까?

 

나의 질주본능도 만만치 않지만, 그들을 이길 수 없다. 싸움도 상대를 보고 덤벼야 하는 법이라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가운데 손가락만을 피거나, 묵음 처리된 쌍욕만 할 뿐이다.

 

한번은 빨간불일 때 오는 차가 없어 걸으려고 했는데, 누가 봐도 엄청난 거리에 있던 차 한대가 경적음을 발산하면서 달려왔다. 내가 잘못했음을 알고 있지만, 순식간에 가속을 하다니, 한발 내딛다가 다시 멈춰선 후 지나가는 차를 하염없이 쳐다봤다. '그래 이번은 내가 잘못했지만, 너도 녹색불일 때 멈춘 적이 있었니?'라고 붙잡고 물어보고 싶지만, 찾을 수가 없다. 우회전 후 어느새 많은 차량들 속에 숨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 기적이 일어났다. 녹색불을 무시하고 달리던 차들이 하나같이 다 서 있는 것이다. 오호~ 신호 무시 우회전 운전자에게 엄청난 벌점이라고 생겼나? 모두다 오늘은 착한 운전자 코스프레라고 하듯이, 내가 오기까지 그리고 내가 다 건너고 나서도 그들은 여전히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하면서, 오늘은 무조건 가속에 직진본능이다 하면서 열심히 걸었다. 그리고 또 만난 두번째 교차로, 설마 이번에도 착한 운전자들이 있을까 했는데, 어머~ 오늘 왜들 그러지. 다들 착해 빠졌네. 갑자기 이럴 수 없는데, 정말 이상한 일이 계속 벌어졌다.

 

그런데 이 놀라운 공중도덕의 진실은 곧 밝혀졌다. 평소에 보이지 않던 그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벌점과 딱지라는 엄청난 권력을 가진 그분들이 교차로마다 삑삑~ 소리를 내면서 듬직하게 그 곳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그렇지. 오늘은 왜 이렇게 착해졌나 했더니, 역시..."

 

무슨 행사가 있었나 보다. 항상 막히던 도로에 행사까지 겹치니, 교차로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운전자들을 단속하기 위해 경찰들이 나온 것이다. 그 덕에 다른 날과 달리 짧은 운동시간이었지만, 땀이 날 정도로 걸을 수 있었다. 오늘만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딱 하루뿐이었다. 다음날 같은 시간, 녹색불, 교차로 우회전 차선, 내가 걷고 있음에도 쌩~.

 

나는 그들과 다를까? 나도 그들처럼 운전자가 됐을 때, 무시하고 쌩 달렸던 적은 없을까? 생각해보면 몇 번은 있었던 거 같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바로 앞에서 걷는 사람을 무시하고 먼저 가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녹색불일 때 건너오는 사람이 없다면, 가더라도 신나게 걷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기다려 주는 게 어떨까? 아니 그래야 한다. 경찰이 있건 없건 그래야 한다. 그래야 한다는 걸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 지키는 습관을 실천하는 게 어떨까? 당신들은 차 안에 있으니 로보트 태권브이가 되지만, 걷는 나는 아무런 장치가 없으니 말이다.

 

강자는 약자를 지켜줘야 한다. 무기가 있다고 그 무기를 맘대로 휘두르면 안 된다. 요즘 그런 일이 너무 비일비재 하지만, 그래도 잠깐의 기다림으로 약자를 지켜주는 그런 강자가 되길 바란다. 정말 단 한번이라도 교차로에서 착한 강자를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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