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아~ 안뇽!!!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앉아서 간다는 건, 참 어렵고도 힘든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싶을 만큼 내가 탄 후, 다음 정류장에서 바로 앞에 앉아있던 젊은 총각(?) 일어났던 것이다. 아싸~ 이런 일이^^; 누가 앉을까 봐 얼른 자리에 앉고 고개를 숙인 후, 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정거장을 지났는데, 갑자기 하수도 시궁창 냄새가 났다. 지하철에서 이런 냄새가 나다니, 혹시 바닥에 구멍이라도 났나 싶어 살펴봤지만, 아무 일도 없다. 그런데 잠시 후 그 냄새가 사라졌다. 그리고 몇 분 후 그 냄새가 다시 났다. 뭐지 뭐지, 이 음산한 느낌이 뭐지? 혹시 이건...
주변에 있던 물건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라면 범인은 사람이며, 하수도 시궁창 같은 엄청난 악취는 누군가의 입 냄새라고 결론을 내렸다. 왼쪽은 아저씨가, 오른쪽은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성분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는 남성분이 서 있었다. 범인은 이들 중에 있을 거란 생각에 코를 끙끙거리기 시작했다. 앞에 서 있는 분은 거리로 봤을 때 범인이 아니었다. 키가 엄청 컸고,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왼쪽에 있는 아저씨일가? 전날 회식의 여파로 숙취가 남아 있어 그런가 싶어 봤는데, 글쎄 마스크를 쓰고 있다. 엄청난 악취라서 마스크를 뚫고 나올 수 있을 거 같지만, 아니다.
코로 숨을 쉬면서 주무시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한 명만 남았다. 바로 내 오른쪽에 있는 여성분. 그녀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냄새가 불규칙하게 난다는 건, 주로 코로 숨을 쉬다가 가끔 입으로 숨쉰다는 의미다. 그녀가 모르게, 티 내지 않으면서, 나의 시선은 계속 그녀에게 향했다. 겜을 하던 그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시궁창 냄새가 내 코 안으로 들어왔다.
역시, 그녀가 범인이다. 범인은 찾았지만, 뭘 할 수 있을까? "너에게 하수도 시궁창 냄새가 나. 제발 그 입 좀 다물어 줄래?"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 성격상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 자신도 없고,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할 용기도 없다.
그럼 방법은 하나다. 내가 참는 수 밖에. 그리고 그녀가 제발 입을 벌리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수 밖에.
내 기도가 먹혔는지, 한동안 냄새가 나지 않았다. 참 다행이다라고 긴장을 푸는 순간, 바로 공격이 들어왔다. 감기에 걸린 거처럼 손수건으로 코를 막고 있다가, 잠시 아주 잠시 손을 뗐을 뿐인데, 그때 공격을 하다니. '정말 말하고 싶다. 너에게 냄새가 난다고 정말 말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턱 밑까지 오고야 말았다.
그런데 잠깐만. 분명 운 좋게 자리에 앉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에게 자리를 양보(?)한 그 남자가 지하철에서 내렸나? 분명 자리에 일어나서, 출구 쪽으로 갔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본인에게 온 행운을 포기했던 거 같다. 잠깐의 편안함보다는 쾌적(?)한 지하철 공기를 원했던 거 같다. 운이 좋다고 좋아라 했는데, 아무래도 나도 일어나야 할 듯싶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주섬주섬 가방을 정리하고 있는데, 그녀가 일어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한 여운을 남기면서 그렇게 그녀는 사라져갔다. 가방을 정리하느라 무방비 상태였던 내 코는 또 엄청난 폭풍을 맞이하고야 말았다. 너무나 강렬했던 그녀, 본인에게 시궁창 냄새가 난다는 걸 모를까? 제발 나와 같은 희생자(?)가 더 생기지 않아야 할 텐데, 저 멀리 사라져 가는 그녀가 참 무서워 보였다.
그리고 나에게 자리를 양보한 그를 생각하면서 동질감이 팍팍 느껴졌다. 아니 혼자만 당하지, 괜히 나한테까지 이런 불행을 주다니, 못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뺨 맞고 어디서 화풀이 한다고, 내가 이러면 안 되는지.
그녀가 떠난 자리는 곧 다른 이가 앉았고 더 이상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그녀의 흔적이 너무나 강렬했기에 계속 어디선가 하수도 시궁창 냄새가 나는 거 같았다.
그런데 혹시 나에게도? 이런 생각이 들어, 손으로 입을 막고 반갑지 않은 내 입 냄새를 자체 검사했다. 그리고 양치질을 자주 하기로, 그리고 극심한 다이어트(위에서 나는 냄새일 수 있다고 들은 적이 있어서)를 하면 안되겠구나 하고 다짐했다. 그리하여 그날 저녁 폭풍 흡입을 했다는 풍문이...
운 좋게 만원 지하철에서 앉을 수 있는 행운을 잡았으나. 딱히 행운이었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역시 운은 쉽게 오는 게 아닌가 보다. 운수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는데, 불운이 함께 오는 날이었다. 그런데 하수도 시궁창 같았던 입 냄새를 본인을 전혀 느끼지 못하나? 배 멀리가 날 정도로 극심했는데, 본인은 모른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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