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령화 가족, 제목만 봤을때는 나이 많은 분들이 가족으로 만난다는 내용인 줄 알았다. 박해일, 공효진, 윤제문, 윤여정, 진지희까지 주연급 배우들이 나온 영화로 연기력은 대단할거라 생각했는데, 왜 하필 제목이 고령화 가족일까 했다. 개인적으로 영화 내용과 제목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년이 훨씬 지난 후에 올레티비로 1,200원을 내고 봤다. 어둠의 경로를 이용해 무료로 볼 수도 있지만, 나름 정직한 사회를 위해 결제를 하고 봤다. 그러나 절약을 한다고 올레tv로 첫 등장하는 10,000원을 지나, 3~4개월 후 4,000원을 지나 1,800원 또는 1,200원으로 떨어지는 시점에 되면 본다.
올레티비에서 가끔 포인트를 주는 이벤트를 한다. 얼마 전에 이민기, 박성웅, 이태임 주연의 "황제를 위하여"라는 영화를 무료에 더하기 1,000원 tv포인트까지 준다고 해서 봤다. 그리고 알았다. 6개월 밖에 지나지 않은 영화가 왜 무료에 포인트까지 주는지 말이다. 진짜 넘 재미가 없었다. 첫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칼부림만 기억이 난다. 물론 중간에 이태임과 이민기의 몸으로 말해요 장면이 있기는 했지만, 이야기도 없고 반전도 없고 그냥 폭력만이 가득한 영화였다. 암튼 잼없는 영화를 보고 덕분에 생긴 1,000포인트에 갖고 있던 포인트까지 합쳐 고령화 가족을 봤다. 원래는 다른 영화를 보려고 했는데, 무료로 준 포인트가 사용기한이 있어 급하게 선택해서 본 영화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고, 제목부터 맘에 들지 않았던 영화였지만, 너무 잼나게 봤다. 원수같은 가족이지만, 그 속에서 따뜻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 백수 큰 아들, 망한 영화감독이자 제일 많이 배운 둘째 아들, 엄마를 닮아 결혼 하나는 잘하는 셋째 딸, 그리고 셋째를 너무나 닮은 손녀가 나온다. 그냥 평범한 가족이다. 화장품 방판을 하는 엄마와 큰형은 함께 산다. 경제를 책임지는 엄마, 얹혀살고 있는 큰형 그들만의 세상에 똑똑한 둘째 아들이 집으로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참 낯설지 않은 집이구나 했다. 진짜 평범하기에 왠지 우리집 같았다. 잘난 자식과 못난 자식이 꼭 하나씩은 있는 그런 우리내 가족의 모습을 담고 있는 영화여서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또 하나의 집인 교도소를 자주 애용하는 큰 아들은 출소를 해서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하는 일 없는 백수로 말이다. 그런데 대학도 나오고 영화감독으로 동네에서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란 아들이 이혼에 영화실패까지 폐인(?)이 되어 엄마 품으로 들어온다. 다 큰 아들들은 집에서 밥이나 축내고 있지만, 엄마는 화내지 않고 항상 고기반찬을 해준다. 어미새가 아기새를 위해 하루종일 먹이를 찾아 다니는 거처럼 이 집 아들들은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리고 엄마가 해주는 저녁밥을 항상 같이 먹는다. 늘 싸우지만 저녁밥만은 항상 같이 먹는다.
잠옷과 평상복의 구분이 없는 방바닥을 친구 삼아, 베개를 애인삼아 그렇게 하루를 보내는 백수 큰 아들이다. 조카가 먹고 있는 피자를 뺏어 먹기위해 머리를 쓰고, 조카에게 거침없는 가스를 선물하는 그런 인물이다. tv를 보면서 과감없이 허벅지를 들고 가스를 내보내는 장면을 볼 때, 어릴적 외삼촌이 왜이리도 생각이 나던지. 어린 시절 울 삼촌은 영화처럼 일정 거리를 두고 가스를 선물하지 않는다. 갑자기 엄지 손가락을 잡으라고 하거나, 내 머리 위에 앉아서 묵직한 소리와 함께 다시 머리를 감아야 할 정도로 속 깊은 가스를 선물했기 때문이다. 울 삼촌들과 너무나 닮아 있는 윤제문의 연기를 보면서 그 리얼함에 박수를 보냈다.
백수이지만 로맨틱 사랑을 꿈꾸고 가족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속 깊은 큰 아들이다. 영화 초반에는 그저 무식하고 더럽고 백수인 큰 아들이지만, 서서히 가족의 비밀이 알려지면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듬직한 큰 아들로 변신을 한다. 조카 속옷으로 해서는 안될 나쁜 짓을 하는 바람에 집을 나가게 되지만, 그래도 큰 형이라고 끝까지 동생들을 위해 책임지는 큰 아들이다.
다 자기가 잘나서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실패를 해서 망가지게 되면 가족보다 본인이 더 괴롭고 힘든 법이다. 영화감독으로 대학물까지 먹고 잘난 아들이었는데 영화 실패에 바람난 아내로 인해 이혼까지 밑바닥으로 떨어져 낙오자가 된 둘째 아들이다. 그래도 자존심을 있다고 집에 신세지지 않고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선택은 자살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카운트다운을 할 즈음 엄마에게 전화가 온다. "니가 좋아하는 닭죽 만들어 놨으니 어서 와서 먹어라." 마지막 가는 길을 엄마가 잡아줬다. 그렇게 해서 집에 왔고, 백수 큰형과 함께 첨에 각방을 쓰면서 똑같이 엄마가 해주는 밥만 축내는 아기새가 됐다. 냄새난다고 목욕가라는 엄마에게 "만원만 더 줘"라고 하면서 어리광을 부리는 아들로 돌아온 것이다.
아기새이지만, 큰 아기새보다는 본인은 좀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족의 비밀은 왜 둘째 아들에게만 보이는지, 조카의 흡연 장면을 목격하고 협상 아닌 협박으로 조카의 용돈까지 강탈(?)한다. 다 너를 생각한다는 그 말에 더 화가 나지만, 암튼 조카는 삼촌과 상생을 하기로 한다. 똑똑한 사람이 말은 잘하다고 하더니, 암튼 배운사람 티를 여기서 내는구나 했다. 조카의 피자 사건도 백수 큰 형이 뺏어 먹기 위해 작전을 벌인다. 그러나 머리가 나빠, 조카 말발에 당하자 그가 논리정연하게 일장 연설을 한다. 그리고는 조카의 피자를 먹는다. "난 진짜 피자 싫어하는데, 니 교육상 그러는거야"라고 하면서 말이다. 또 큰 형이 짝사랑하는 여자까지 작업을 건다. 배운 사람이 더 독하다고 하더니, 이래저래 민폐 캐릭터다. 그러나 누가봐도 민폐 캐릭터는 큰 형이기에, 그의 똑똑함이 여기서도 나타나는거 같다.
첫 결혼 실패, 두번째 결혼도 남편의 폭력으로 실패, 3번째 남자를 만나기 위해 집으로 들어온다. 각방을 썼던 형들은 동생과 조카의 방문이 반갑지 않다. 그러나 본인들은 얹혀살기에 아무말 못하고 상극인 두 남자가 한방을 쓰게 되고, 나머지 방은 셋째에게 양보(?)한다. 그나마 경제력이 있는 셋째라 엄마에게 생활비도 주고, 아빠 없는 딸이 불쌍해 용돈도 두둑하게 주는 나름 엄마이자 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마지막 남자라고 믿고 싶은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와 연애를 하게 된다. 오해로 인해 둘째 아들에게 그 남자가 죽도록 맞게 되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집에 오가는 진정한(?) 사위로 거듭난다.
콩가루 집안, 막장 드라마의 요소가 고령화 가족에 스며들어 있다. 그중 너무 많이 봐서 이제는 그만 보고 싶은 출생의 비밀이 이 가족에게도 있다. 그걸 셋째가 터뜨린다. 아무것도 모르는 둘째는 그저 그녀의 얘기에 놀라워 하다가, 다시 첫째가 셋쨰에게 가하는 반격을 보고 더 놀라게 된다. 한명도 아닌 2명에게 출생의 비밀이 있다니, 막장 영화로 손색이 없는거 같다. 이 모든걸 다 알고 있는 엄마는 그저 밥만 챙겨주는 너무나 수동적인 엄마로 나온다. 그래도 밥은 같이 먹어야 한다고, 이래서 식구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엄마는 딸의 모습이 자신과 너무나 닮아 있음을 알기에 더 말을 못했던 것이다.
엄머는 할머니를 닮았고, 딸은 그 엄마를 닮았다. 사춘기 중학생으로 공부에는 영 소질이 없는 아이다. 더불어 좀 노는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는 그런 아이다. 밖에서는 무서운 아이일 수 있지만, 집에서는 삼촌에게 가스를 선물 받고, 피자를 뺏기고, 자신의 나쁜 모습을 들킨 후 둘째 아들에게 용돈을 나눠 주는 그런 착한(?) 아이다. 하지만 콩가루 집에서 살아가기가 힘든 아이는 가출을 결심한다. 그러나 똑똑하지 않기에 험한 곳에서 무서운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걸 가스를 선물해준 큰 삼촌이 구해주러 온다. 그 무서운 곳에서 삼촌을 봤을때 슈퍼맨이라고 생각했을거 같다. 이 사건으로 큰 삼촌은 조직에서 운영하는 바지사장이 되지만, 딸은 가출 이후로 공부는 포기하고 춤으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고자 한다.
엄마는 오늘도 퇴근길에 삼겹살을 산다. 그리고 저녁은 항상 모든 식구가 같이 한 상에서 밥을 먹는다. 자신은 고기를 먹지 않더라고 새끼들을 위해 늘 노릇노릇하게 고기를 구워 준다. 같이 밥을 먹는거 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는 엄마다. 그래서 엄마는 고기반찬이 질리다고 제발 그만 먹자고 해도 오늘도 어김없이 퇴근길에 고기를 산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비밀은 있다. 그 비밀을 다 간직한채 새끼를 위해 먹이를 구하는 어미새처럼 여전히 돈을 버는 우리의 엄마다.
고령화 가족은 밥을 먹는 장면이 참 많이 나온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장면일거 같은데, 특히 된장찌개에 모든 가족이 한번씩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는 장면은 위생적으로 나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바로 이 모습이 가족이자 식구가 아닐까 한다. 식구이니깐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고, 찌개 하나에 온 식구가 다 먹으니 말이다. 나도 예전에는 그렇게 밥을 먹었던 거 같다. 이제는 앞접시에 덜어서 먹지만, 예전에는 두부 하나 더 먹겠다고 숟가락 싸움을 했던 적이 있다. 이게 바로 식구겠지. 같이 밥을 먹고, 찌개에 숟가락을 다 넣고 먹어도 절대 더럽거나 불쾌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콩가루 집안이라고 남들은 욕하지만, 엄마는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식구가 별거니 한데 모여 살면서 같이 밥먹고 같이 자구 같이 울고 웃으며 그게 가족이지." 고령화 가족이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한다. 가족(家族, 부부를 중심으로 하여 그로부터 생겨난 아들, 딸, 손자, 손녀 등 가까운 혈육들로 이루어지는 집단)보다 식구(食口, 같은 집에서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가 더 와닿는 그런 영화다. 가족영화답게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살짝 반전을 기대했지만, 콩가루 식구들은 또 그렇게 잘 살게 된다. 매일 같이 밥을 먹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밥상의 위대함을 알 것이다. 아무리 밉고 싫어도 같이 밥먹고, 같이 자는 식구의 소중함을 아니깐 말이다.
가족보다 식구라는 단어가 더 그리워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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