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탔다. 목적지 없이 그냥 집에서 가장 멀리 가는 버스를 탔다.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기에, 오랜만에 종점여행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종점까지 가기에는 너무 멀었다. 그리하여 아무 생각없이 내렸다. 내리고 보니, 대학로다. 여기까지 왔으니,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낙산공원, 이화벽화마을, 성곽길을 걸어볼까 했는데, 너무 뜨겁다. 아직은 6월인데 자외선이 왜 이리도 강한지, 낙산공원 이정표 앞에서 밤에 다시 오자고 다짐하고는 포기했다. 그럼 식후경이나 할까 해서 찾아간 곳, 평양, 함흥도 아닌 친숙한 냉면을 먹고 싶어 찾아 갔다. 대학로 할매냉면집이다.
작년 가을 연극을 자주 봤는데, 그때마다 지나쳤던 곳이다. 여름이 오면 와서 먹어야지 했는데, 이제서야 왔다. 유명하다는 평양냉면, 함흥냉면, 매운 냉면집을 다 버리고 이 곳에 온 이유는, 할매냉면집이 바로 내 눈 앞에 있어서다. 이눔의 귀차니즘은 집 안이나 밖이나 똑같다.
점심시간이 지난 2시 무렵의 모습이다. 최근에 방송에 나왔다고 해서 사람이 많을까 했는데, 한산하다. 그런데 정말 거짓말 안하고, 내가 들어오고 나서 얼마 후 이 곳은 만원이 됐다. '나 진짜루 사람을 끄는 재주가 있나보다. 아니면 말구.' ^^;
얼큰물냉면, 떡만두국, 순대국이 대표메뉴라고 한다. 이런 메뉴는 결정장애가 있어도 상관없다. 제일 먼저 보이는 메뉴를 고르면 되니깐 말이다. "여기요~ 얼큰 물냉면 주세요."
50년 전에는 15원에 판매했단다. 새콤, 달콤, 매콤한 맛이 진하다고 하는 얼큰물냉면, 그 맛이 궁금하다. 그런데 왠지 낯설지 않을 맛일거 같다. 평양, 함흥냉면을 몰랐던 시절, 엄마 손 잡고 시장에 가서 먹었던 그 냉면과 비슷할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도 할머니가 만들어 주셨는데...
물과 무김치 그리고 가위가 나왔다.
잠시후 익숙한 비주얼의 냉면이 나왔다. 참 육수를 달라고 말하면 주는데, 괜히 달라고 했다. 고기내음이 너무 많이 나서 못 먹겠다.
얼큰물냉면답게 양념장이 과한 듯 많이 들어가 있어, 많이 맵겠구나 했다. 그리고 오이, 무, 삶은 계란, 지극히 평범하고 깔끔한 고명이다. 어릴적 시장에서 먹었던 그 냉면과 너무나 흡사했다. 국물부터 살짝 먹어보니, 역시 새콤하지만, 시큼하지는 않다. 아무래도 겨자와 식초가 필요할거 같다.
친숙하고 익숙한 냉면 면발이다. 함흥냉면처럼 질긴 면발이라 생각했는데, 잘 삶아서 그런지 입술로도 끊을 수 있었다. 굳이 미리 준 가위로 면을 자를 필요는 없을거 같지만, 먹다가 양념이 옷에 튈 수 있으니깐 자르는게 좋을거 같다. 원래 냉면은 자르지 않고 먹어야 한다지만, 질긴 면을 쉬지 않고 먹다가 체한 적이 있어, 알면서도 잘라 먹는다. 그러나 평양냉면은 절대 자르지 않고 그냥 먹는다.
무김치로 냉면을 잘 싸서 오이와 함께 먹는다. 역시 너무나 친숙하고 익숙한 그 맛이다. 새콤하고 달콤하다. 새콤보다 시큼을 더 좋아하기에 먹기 전에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식초를 넣었다. 겨자도 넣었는데, 기존 양념장에 가려 톡 쏘는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무김치로 계속 면을 싸서 먹어도 좋지만, 파스타를 먹듯 젓가락을 이용해 면을 과하다 싶을만큼 말아 입 안 가득 넣어 준다. 씹어줘야 하는데 그냥 호로록 넘어간다. 틈틈이 국물도 함께 먹먹어야 더 좋다. 그런데 시큼, 달콤한 맛을 느껴지는데, 전혀 맵지가 않다. 매우면 물만두를 주문하려고 했는데, 전혀 안 맵다.
그런데 1/3을 남기고 서서히 입술을 시작으로 매콤이 찾아왔다. 안 맵다고 툴툴거렸는데, 늦게 온 것이다. 물만두의 유혹에 흔들렸으나, 그래도 꾹 참고 오로지 나 혼자만의 힘(?)으로 녀석을 정복했다. 국물까지 싹 말끔히 다 해치웠다. 50년 전부터 있었던 곳이라지만, 그 맛은 어릴적 우리 동네 시장에서 먹던 그 맛과 너무 비슷해서 좋았다. 먹을 수 없었던 추억의 맛을 느끼게 해줘서 좋았다. 할매냉면집 얼큰물냉면은 엄청나게 맛있는 맛은 아니지만, 친숙하고 익숙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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