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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이어 대고려 918·2018 그 찬란한 도전 두번째 이야기 시작~



청자 국화 모란 버드나무 갈대 대나무무늬 매병

충청남도 태안 마도 인근 해역에서 인양된 매병으로, "중방 도장교 오문부, 댁에 올림. 참기름을 준(항아리)에 채원 봉함"이라고 적힌 목간을 목에 단 채 인양되었다. 목간의 내용을 통해, 수취인은 중방에 소속된 도장교 오문부이고, 운송품은 참기름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요즘 참기름은 녹색이 병에 담는데, 고려시대에는 청자에 담았나 보다. 참기름보다 청자 가격이 훨씬 낮았던 시절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참기름병 색상은 녹색?



문공유 무덤에서 나온 도자기로, 2점은 고려청자이고, 뒤로 흐릿하게 보이는 하얀 자기는 중국백자다. 



눈덮인 해인사 사진을 따라 고려시대 사찰로 간다.


고려시대의 국교답게, 개경에만 수백 개의 사찰이 세워졌고, 강원이나 충청 지역을 비롯한 전국에서 각 지역의 특징을 반영한 불교문화가 전개되었다고 한다. 더불어 고려는 필사와 목판에서 시작된 오랜 출판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고, 종이와 금속을 다루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최초의 금속화자 인쇄본인 '직지'를 간행했다. 이 둘이 만나, 오늘날 목판으로 온전하게 전하는 세계 유일의 대장경인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탄생하게 된다. 


좋은 벗이란, 첫째 그대가 잘못된 행동이나 말을 했을때 일깨원 주는 친구. 둘째 그대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때 마음속으로 함께 기뻐해주는 친구. 셋째 그대가 괴로움에 처했을때 그대를 저버리지 않는 친구이다. '인과경'



나전 국화 넝쿨무늬 경함 (영국박물관)


불교 경전을 보관하던 상자로, 현재 남아 있는 나전 경함은 형태나 크기, 무늬 표현, 제작기법 등이 거의 유사해, 국가적 차원에서 같은 장인들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1272년에 원나라 황후가 고려에 대장경을 요구했을때, 경함을 제작하는 전함조성도감이라는 임시 관청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이를 뒷받침해준다고 한다. 



초조대장경으로 찍은 유가파의 기본 경전

고려의 첫번째 대장경인 초조대장경이다. 고려는 불교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 송에서 만든 개보판대장경을 원본 삼아 1011년부터 자체적으로 대장경을 목판에 새겨 간행했다. 초조대장경은 고려의 사상과 학문 역량이 집결된 지식문화의 결정체라고 한다. 



초조본으로 찍은 화엄경


남송 판본을 원본으로 새긴 '법화경'


송나라 승려 정원의 화엄경 주석서


경패


경전을 펼치지 않아도 어떤 경전이 보관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한 일종의 꼬리표이다. 한쪽 면에는 경전 명칭과 권수를 새겼고, 반대 면에는 부처와 보살 등을 새겼다. 요즘말로 하면 책갈피가 아닐까 싶다. 그나저나 디테일이 엄청나다. 



목판에 다시 새긴 '직지심체요절'


해인사 대장경판에서 인쇄한 조선시대 팔만대장경 (월정사 성보박물관)

팔만대장경은 고려를 침략한 몽골을 불교의 힘으로 물리치기 위해 16년에 걸쳐 완성한 대장경이다. 경판의 수가 8만여 장에 이르기 때문에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른다. 경판은 고려시대는 물론이고 태조 2년, 세조 4년, 연산군 6년 등 조선시대에도 여러차례 인쇄되었지만, 국내에 온전히 남아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한다. 월정사에 소장된 팔만대장경은 해인사 경판에서 직접 찍은 것으로, 고종 2년에 흥선대원군의 후원으로 인쇄한 대장경 2부 중 하나이다.



인쇄된 종이가 아니라 경판을 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법보종찰 해인사 고려대장경판이다. 



지옥의 모습을 새긴 목판 (해인사)

경전이라고 해서, 글로만 되어 있는 줄 알았다. 목판에 새겨진 그림을 보는 순간, 감탄사조차 나오지 않았다. 놀랍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된다. 이런 내맘을 아는지, 안내문에 이렇게 나와 있다. 경전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변상도 목판은 경전에 관한 지식의 정수를 예술로 승화시켰음을 보여주며, 1098년에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화엄경 목판은 고려의 길고 긴 대장경 역사를 알려준다.



가장 오래된 화염경 목판 (해인사)


화엄경의 장엄한 세계를 새긴 목판 (해인사)

화엄종의 근본이 되는 경정인 화엄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묘사한 것이 화엄경 변상도이다. 이 목판은 당나라때 번역한 80권 화엄경의 내용을 요약해 새긴 것이다. 보리수 아래에서 비로자나불이 문수와 보현보살에게 깨달음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아무리 자세히 봐도, 안내문의 내용처럼 보이지 않지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화엄경 목판을 제외한, 2개의 목판 뒷면에도 그림이 새겨져 있다.



법화경 변상도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푸른색의 쪽빛 물감을 들인 종이인 감지에 금니로 그림을 그리고, 은니로 글씨를 쓴 법화경이다.



국왕이 발원한 '불공견삭신변진언경'

사경의 바탕이 되는 푸른 감지와 표지의 장식, 역동적인 신장의 표현, 마치 먹으로 쓴 듯 부드러우면서도 강건한 필획을 구현한 글씨에서 최고의 격식과 예술성을 볼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아미타경 변상도 (영국박물관)


불감은 부처를 모신 작은 집을 뜻한다. 불감은 개인이 사찰 이외의 장소에서 예불을 드릴 때 사용했고, 바위틈에 안치하거나 탑 안에 봉안하기도 했다. 고려의 사원 건축을 충실히 재현한 볼당 형태의 감실에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두 어깨를 덮는 법의를 입고 허리가 다소 긴 비례의 불상은 요나라 불상과도 유사한다. 



수천 개의 숯으로 만든 문은 과거로 들어가는 길로, 불감을 재현한 통로를 지나 고려 불상과 볼화를 만나다.



장곡사 금동약사불좌상


촐조비로자나불좌상


건칠보살좌상


금동아미타불좌상


대승사 금동아미타불좌상


수월관음도 (영국박물관)


둔황 천불동에서 발견된 관음보살도로, 물가에 면한 바위에 앉은 관음보살을 그렸다. 대나무와 죽순이 자라는 암좌에 모습을 드러낸 관음보살은 아미타불의 화불이 있는 보관을 썼으며, 오른손으로는 버드나무 가지를, 왼손으로는 작은 병을 들고 있다. 자세히 바라보면, 디테일에 놀라게 된다. 



수월관음도 (영국박물관)


청자 모란무늬 발우


개성 부근에서 출토된 염주


십인면천수관음보살좌상


고려 후기에 국가적인 재난을 물리치기 위해 천수관음을 모신 법회가 열리기도 했다. 천수관음 신앙은 중국을 통해 전해졌다고 한다. 천수관음을 조각상으로 표현할 때에는, 이 상처럼 천수를 대표하여 40수나 42수를 조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장 위 부처를 든 손은 부처의 약속을 받게 되다, 보래의 상자를 든 손은 땅 속의 보물을 얻게 되다, 경전을 든 손은 총명해지다, 인장은 든 손은 뛰어난 말솜씨를 얻게 되다, 활을 든 손은 출세하게 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한가지 아쉬움이라면, 우리 문와유산인데 영국에서 왔고, 미국에서 왔고, 일본에서 왔다. 간혹 사진 촬영을 하지 말라는 안내문이 있는 전시물을 보면, 일본에서 왔다. 대고려전이 끝나더라도, 상설전시관에서 쭉 보고 싶은데, 그렇지 않은 전시물이 너무나 많다. 내일 셋번째 이야기로 다시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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