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패밀리 레스토랑은 어렵지만, 어느덧 혼자 먹기가 자연스러워졌다. 양 옆에 커플이 있음에도, 가운데에 떡하니 앉아서 파스타를 먹다니, 이건 LTE급 장족의 발전이다. 그런데 팩트가 맞지만, 살짝 왜곡됐다. 사실 속에 가려진 진실은 커플들을 피해 다른 테이블로 가려고 했으나, 직원이 4인석에서 혼자 먹으면 안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가운데 앉게 됐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주늑들지 않고 도도함과 당당함을 유지하면서 끝까지 잘 먹었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아이폰을 충전 맡기는 바람에, 음악과 영상의 도움없이 오롯이 나 혼자 힘으로 말이다. 그 곳은 바로, 대학로에 있는 봉대박 스파게티다.
원래 가고자 했던 곳은 스시뷔페였다. 입구까지 갔지만, 도저히 문을 열고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아직 나에게 뷔페와 패밀리 레스토랑은 너무나 높은 산인가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대학로 골목을 걷다가 영업 중인지 아닌지 헷갈릴만큼 한산해 보이는 곳을 발견하고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1층에는 사람들이 있길래, 2층으로 올라가려고 하니 안된단다. 그래서 4인테이블로 가려고 하니, 안된단다. 혼자 왔으니, 2인 테이블로 가란다. 양 옆에 커플들이 있는 바로 그곳으로 말이다. 내가 생각해봐도 4인 테이블에 나혼자는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 직원이 안내해주는 곳으로 가서 앉았다. 이 사진은 오른쪽에 있던 커플이 나간 후에 찍었다. 사진에서 왼쪽 끝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카페 분위기는 딱 여성취향이다. 흐릿하게 보이는 저 글씨는, '선영이가 가르쳐준 봉골레 스파게티 대박날까요?" 아하~ 그래서 봉대박이구나.
물과 피클을 리필하고자 한다면, 직접 가서 갖고와야 한다. 그래서 리필하러 갔는데, 물만 담아가지고 왔다. 피클 담은 그릇에 두껑이라도 덮어놓지, 몇시간동안 저 상태로 있는지 알 수가 없기에 안 먹기로 했다.
디저트인 소프트 아이스크림도 셀프다. 직접 가서 손잡이를 누르고 먹을만큼 담아오면 된다. 기계치는 아닌데, 처음하는거라서 다른 사람이 하는걸 유심히 살펴보고 따라했다.
메뉴판. 우선 엄청나다. 왼쪽 한 줄이 다 봉골레 스파게티다. 왜 봉대박인지 이제야 알겠다. 봉골레도 이렇게 다양하게 변신을 할 수 있다니, 살짝 놀랐는데 티를 내지 않으려고 엄청 노력했다. 그외에 다른 피자, 샐러드, 스테이크, 필라프 등이 있다. 메뉴가 많으면 참 곤란한데, 뭘 먹어야 하나? 우선 봉골레가 먹고 싶다. 그리고 크림 파스타도 먹고 싶다. 그리고 살짝 매운 파스타도 먹고 싶다. 더불어 고기도 있었음 좋겠다. 이 모든게 다 들어 있는 파스타를 발견했다. 바로 "크림 불고기 봉골레(가격 7,900원)다". 맵기 조절은 가능하다고 해서, 더 맵게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기다리는 동안, 식전 빵과 스댕에 담긴 무언가가 나왔다.
스댕 속 녀석의 정체는 마시멜로우다. 그냥 먹어도 되고, 초가 함께 나오므로 구워 먹어도 된단다.
굽자, 굽자. 그런데 자꾸 그을음만 생긴다. 촛불 가장 끝에 마시멜로우를 댔더니, 구워지지는 않고 검게 그을음이 생겼던 것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불 속으로 돌진했다.
여기는 그럴싸하게 잘 구었는데, 저 뒤는 완전 새까맣게 타버렸다. 실패했으니 하나만 더 달라고 하고 싶었으나,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달기만한 마시멜로우가 싫기 때문이다.
마늘맛 나는 크로와상이다.
그런데 너무 작다. 반으로 자른다. 한 입 먹고, 그리고 또 한 입을 먹는다. 그랬더니 끝났다.
크로와상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있을때쯤, 드디어 메인이 나왔다. 크림 불고기 봉골레다.
우선 양이 많아 보인다. 그리고 직화로 구웠다는 불고기의 향이 강하게 올라온다. 혼자서 밥을 먹으면 많은 메뉴를 주문하지 못하는데, 여기는 한 그릇 안에 봉골레에, 크림에, 매운맛에 그리고 불고기까지 느무느무 좋다.
앙증맞은 조개가 들어간 봉골레 파스타, 그 속에 크림과 매운맛까지 3가지 음식을 먹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공깃밥 추가를 외치고 싶었던 직화 불고기. 요건 밥 반찬인데, 파스타랑 어울릴까? 살짝 겁이 나기 시작했다.
우선 크림 봉골레부터 먹어보자. 면이 살아있는게, 가닥가닥 씹히는 파스타의 질감이 너무 좋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매운맛과 크림이 섞이면서 매운맛도 아니고, 크림맛도 아닌 그 중앙 어디쯤인 듯한 맛이 난다. 봉골레에서 조개가 차지하는 비중이 참 높은데, 크림과 매운맛에 양보했는지, 너무 착한 조개로 변해버렸다.
그럼 이번에는 불고기를 올려서 먹어보자. 고기랑 냉면, 족발과 냉면처럼 파스타랑 불고기도 좋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따로 논다. 둘이 만나서 시너지를 발휘해야 하는데, 싸우기라도 한 듯 서로의 단점만 보여준다. 파스타의 질감과 불고기의 질감이 너무 달라서, 합동 입장은 어려울 듯 싶다. 결국은 따로 먹기 시작했다. 만약 불고기가 다른 그릇에 따로 나왔다면, 괜찮았을거 같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먹다보니 불고기에서 나온 기름과 크림이 만난 부분의 맛이 난해했다. 맛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데, 과유불금이 생각나는 맛이다. 봉골레는 역시 오리지널이 가장 나은거 같다. 그렇다고 남겼을까? 아니다. 설겆이가 필요없을 정도로 싹싹 다 해치웠다. 맛이 없지는 않았다. 착한 가격으로 푸짐하게 먹을 수 있어 좋은데, 내 욕심이 과했을 뿐이다.
달달한 소프트 아이스크림으로 커플지옥 속에서 완벽한 한끼 식사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먹다보니, 커플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내가 듣고 싶어서 그랬던 건 아니고, 자연스럽게 들려왔을 뿐이다. 봤을때 커플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커플이 아니었다. 선후배팀 그리고 여자사람과 남자사람팀이었다. 처음에는 부러움에 살짝 쫄았는데, 사실을 안 후에는 어깨를 쫙 피고 당당하게 그리고 도도하게 혼자서 자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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