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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목마만 탈 줄 아는 바부~


트라우마란 재해를 당한 뒤에 생기는 비정상적인 심리적 반응을 말한다. 그렇다. "재해를 당한 뒤에 생기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내가 겪은 놀이공원 트라우마는 놀이공원을 간 적도 없는데 생겼기 때문이다. 물론 놀이공원이 처음은 아니었다. 어릴 적에 부모님과 함께 간 적이 있다. 그런데 그때는 바이킹이나 롤러코스터를 탈 수 없는 나이였기에, 그저 회전목마로 만족해야 했다.

 

어릴 때 놀이공원은 제외하고, 바이킹과 롤러코스러를 탈 수 있는 중학생이 됐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놀이공원으로 소풍을 가게 됐다. 드디어 그날이 온 것이다. 나이도 오케이, 몸무게도 오케이, 키도 오케이, 이젠 자격이 됐다. 바이킹, 롤러코스터 등등 무서운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자격이 말이다. 소풍은 언제나 행복하고, 전날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기도를 해왔지만, 이번만은 더 간절하게 기도를 했다.

 

기도도 하고, 소풍에서 먹을 간식도 챙기고, 내일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잠자리에 들려는 순간, 날 부르는 악마의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천사인 줄 알았다.

 

"너 내일 놀이공원으로 소풍 간다면서."

"응"

"그럼 이거 쓰고 가라" 하면서 아껴둔 야구모자를 선뜻 줬다.

^^; (이때 눈치를 챘어야 하는데, 그걸 모르고 그저 좋아라 하면서 받고 말았다.)

"그런데 말이야, 난 작년에 소풍으로 거기 갔다 왔잖아. 그런데 아니다 됐다."

"뭔데, 뭔데, 왜 말을 하다 말아."

"너 이번에 가면 바이킹이나 롤러코스터 다 타고 오겠지."

"그럼 태어나서 처음 타는 건데, 당연히 다 타고 와야지, 도착하자마자 정액권부터 구입할거다."

"그래 그럼 뭐 (잠시 뜸을 들이더니), 그런데 혹시 해서 말하는 건대, 그냥 개의치 말고 들어."

(여전히 모자에 빠져 있던 중) "응, 괜찮아. 말해."

"실은 작년에 소풍 가서 바이킹 탔는데, 글쎄 끝나고 거기에 탄 사람들이 다 내렸는데, 네 나이쯤 되는 어떤 여자애가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앉아 울고 있더라."

"왜??" (이눔의 호기심은 제어가 안 된다.)

"그게 말아. (누가 들을 까봐 목소리를 엄청 줄이고 나서) 그 여자애가 거기에다가 오줌을…."

"…" (이해 못하고 있는 나)

"뭔 말인지 몰라, 바이킹이 엄청 무섭거든. 그래서 많이 놀랬는지 앉은 자리에서 바로 오줌을…"

"앗~ 근데 그런 얘기 왜 하는데?"

"아니, 나는 너 조심하라는 거지. 바이킹이 엄청 무서우니깐, 타기 전에 꼭 화장실부터 가라고 말해주는 거야. 이렇게 동생 걱정하는 오빠가 어딨냐."

 

그리고는 멍한 날 보더니, 야릇한 미소를 지으면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사실 지병은 아닌데, 긴장하면 화장실을 자주 가는 버릇이 있다. 시험 볼 때는 매 시간마다 갔을 정도로, 자꾸만 소변이 마려웠다. 악마 같은 오빠가 그냥 놀린다고 생각하고는 놀이공원과 시험은 전혀 다르다고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하고 난 후 잠에 들었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아무렇게 않다고, 그냥 놀리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바이킹 앞에 서니 긴장이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화장실은 벌써 3번이나 갔다 왔다. 분명 내 앞에 줄이 엄청 길었는데, 어느새 순서가 되었다. 친구들은 걱정하지 말라고, 그냥 별거 아니라고, 설마 니가 오줌을, 하면서 위로해주는데, 그 위로가 위로로 들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가고 싶다고 말하고는 후다닥 화장실로 뛰어 갔다. "이번에 타야 하는데 어디가" 라고 말하는 소리가 점점 희미해질 때가 계속 뛰었다. 이렇게 첫 바이킹과의 만남을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더불어 롤러코스터까지, 무서운 놀이기구를 하나도 못 타고, 어릴 때 마스터했던 회전목마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여전히 바이킹은 무서워~


고등학생이 됐다. 놀이공원에 또 갔다. 그날 이후로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바이킹 앞에 서니, 악마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그 애가 울고 있었다. 왜냐면…" 그만, 그만, 그만 제발 좀 그만. 그러나 역시 악마가 이겼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에도 회전목마만 타야만 했다.

 

성인이 되었다. 이번에는 제발 악마를 이기고 싶었다. 그래서 방법을 생각했다. 물이나 음료수는 절대 마시지 말고, 화장실은 여러 번 가기로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했다.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준비를 했다. 한달에 한번 찾아오는 그날에 사용하는 그걸 사용하기로 말이다. 그것도 밤에 잘 때 쓰는 걸로, 오줌 한번쯤은 다 흡수할 수 있는 대형으로 말이다.

 

만반의 준비를 하니,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바이킹을 탔다. 타면서도 혹시, 혹시, 설마 내가, 아니야 절대 그러지 않을 거야, 계속 걱정만 할 줄 알았는데, 이건 뭐, 너무 무서워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바이킹이 서서히 끝나갈 무렵이 되자 제정신으로 돌아왔고, 놓쳤던 정신줄을 꽉 잡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실수를 했구나. 제어가 안될 때 실수를 했어, 이래서 그 아이가 울었던 거구나.' 그래도 확인사살을 해야겠기에, 엉덩이 밑으로 손을 쓱 넣어봤다.

 

그런데 다행이다. 실수를 하지 않았다. 아니다. 완벽하게 흡수를 해서 그런 거 같아, 바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런 우려와는 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즉,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그리고 성인이 될 때까지, 나는 6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계속 낚였던 것이다. 이런 된장~

 

그때 왜 그런 말을 했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너 아직까지 바이킹 못 타는 거야, 그때 내가 한 말 때문에." 백만프로 이렇게 말하면서 날 놀릴 거 같았다. 괜시리 혼자 무서움에 떨었던 그날들이 너무나 아까웠다. 아니다. 바보같이 철석같이 믿어버린 내가 너무 한심했다.


남들은 중, 고등학교때 마스터하는 놀이기구를 성인이 되어서야 타기 시작했다. 애도 아니면서 무슨 놀이공원이야, 이런 말까지 들으면서 한동안 놀이공원 홀릭녀가 되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놀이공원은 지금도 좋아한다. 탈 때마다 여전히 겁을 먹고, 타기 전에 꼭 화장실을 가야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제는 탈 수 있으니 말이다. 엄청 잘 타는 수준은 아니지만, 무서움에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탈 수 있어 좋다.

 

무섭다고 시도조차 못하는 것보다는 그 무서움을 깨는 시도를 해보는 게 더 좋다는 걸 한참이 지난 후에 알게 됐다. 물론 긴장하면 찾아오는 오줌 공포증은 여전히 갖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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