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에서 우리만의 비정상 회담을 하던 날. 러시아, 프랑스 그리고 한국인 남녀 이렇게 4명이서 홍대에서 만났다. 외국인 친구들이 나온다는 사실을 모르고 갔다. 홍대 상상마당에 도착하고 나니, 일 년만에 보는 지인과 함께 러시아 친구가 있었다. 영어를 전혀 못한다고 하기에, 그냥 갈까 하다가 목덜미를 잡히는 바람에 맞은편에 보이는 홍대 주차장 골목으로 들어갔다. 홍대도 맛있다고 소문난 집들이 많은데, 막상 찾아보면 안 보이는 이유는 뭔지? 골목 초입에 보이는 박명수 족발의 명수로 정하고 들어갔다. 솔직히 편식메뉴인지라 불편했지만, 외국인 친국들이 좋아한다고 하니 아니 들어갈 수 없었다. 더구나 물주가 따로 있으니 싫다고 할 수도 없어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 안으로 들어갔다(iphone5로 촬영).
박명수 족발의 명수 맞은편에도 족발집이 있다. 그 곳은 칼국수가 무한 리필, 여기는 떡만둣국이 무한리필이라고 한다. 둘다 족발이라 내키지 않아 어디로 들어갈래라고 물어보길래, 그냥 아무데나요 했더니 여기로 들어갔다. 심각한 영어 울렁증에 편식음식인 족발까지 들어가기 싫었나보다. 들어가자 마자 가방을 두고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밖으로 나와 촬영을 했다. 오른쪽에 앉아있는 두명의 남자 바로 일행이다. 흐릿하게 보이니깐 굳이 모자이크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
다시 안으로 들어가니, 일행은 영어로 대화중. 러시아 사람이 영어도 잘하는구나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멍때리고 있었다. 진짜 바보같이 앉아있었던거 같다. 매장내부와 메뉴판을 찍을 생각도 못했으니 말이다. 잠시 나갔다 오니 벌써 주문은 끝나 있었고, 기본찬과 함께 음식이 세팅되어 있었다. 족발전문점이니 부추무침에 배추김치, 샐러드, 쌈채소 그리고 쌈장과 새우젓이 나왔다. 떡만둣국이 무한리필이라고 하더니, 직원분이 냄비에다가 떡과 만두를 넣고 육수를 붓고 갔다(떡만둣국은 잠시 뒤에 자세히).
상상마당 앞에서 가벼운 인사를 했지만, 제대로 자기소개를 해야했다. 물론 이 회담을 주최한 지인이 나에게는 한국어로 그에게는 영어로 이사람이 누구고 뭐하는 사람인지 알려줬다. 난 그저 옆에서 우아하게 다 아는 듯 미소만 짓고 있었다. 잠시 후 주최자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일행에게 전화를 받더니 밖으로 나갔다. 나와 그를 두고 말이다.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그가 먼저 말을 시작했다. "영어 할 줄 아니?" 나의 대답은 짧고 굵게 그러나 굴려서 "리를(little)"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내가 좀 한다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영어를 그것도 완전 네이티브 발음으로 스피디하게 시작했다. '이런 이런 그만 그만, 제발 플리즈 그만'이라고 속으로 아우성을 쳤지만, 그에게 들리지 않으니 완전 난감한 상황에 빠져버렸다.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옆에서 끓고 있는 떡만둣국을 뒤적거리고 벌컥벌컥 생수 원샷을 하면서도 결코 우아한(?) 미소만을 놓치지 않은 채, 주최자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의 말은 계속 됐고 뭐라고 대답을 해줘야 하는데, 머리는 하얀 눈처럼 하얗게 변해갔다. '너 몇십 년동안 영어 공부했잖아, 네이티브는 아니어도 말할 수 있잖아, 그런데 아무리 꿀을 좋아한다고 해도 꿀먹은 벙어리로 있으면 안되지'라는 천사와 '한국에 왔으면 한국말을 해야지, 왠 영어야, 저 사람이 문제 있는거야 그냥 당당하게 무시해'라는 악마가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이 싸움의 끝을 알 수 없기에 그냥 긍정의 의미로 미소만 보여줬다. 지금은 대답을 해줄 수 있는데, 왜 앞에만 서면 목에 무언가가 꽉 막힌 듯 벙어리가 되는지 다시 영어공부를 시작해야 하나. 영어울렁증을 고치는 방법이 정말 없는지 답답했다. 그렇게 몇분이 지나고 프랑스 친구와 함께 주최자가 돌아왔다. 그리고 메인 메뉴도 나와서 나 혼자 섬에 온 듯 먹기만 했다. 그런데 먹을 수도 없었다. 바로 편식음식인 족발이기에 말이다. 그리하여 샐러드만 쳐묵쳐묵했다.
무한리필이라는 떡만둣국이다. 자체적으로 만든 만두는 아닌거 같고, 시중에서 쉽게 살 수 있는 물만두다. 그리고 떡도 비슷하다고 본다. 미리 끓여서 나오는게 아니라 건더기와 육수를 따로 넣어 끓여서 먹어야 한다.
기본찬에 계란이 하나 있던데, 바로 여기에 넣어서 먹으라는 거였다. 라면처럼 한번 끓고나면 계란을 풀면 된다. 그리고 맛나게 먹으면 되는데, 후추향과 함께 조미료 맛이 너무 강하게 느껴진다. 무한리필이라고 해서 한번더 리필을 해서 먹었지만, 딱히 완전 짱 맛나 이 수준은 절대 아니다. 그냥 평범한 맛이다.
메인 음식인 모듬족발이 나왔다. 해파리 냉채인줄 알았는데 저 안에 족발이 들어 있다. 차라리 그냥 해라피 냉채였음 더 좋았을텐데 하면서 윗부분만 먹었다. 냉채족발 왼쪽으로 호통불족발이라고 하는 매운 양념 족발과 보쌈 그리고 무김치와 일반적인 족발인 거성족발이다. 족발은 냉채, 양념 그리고 일반 족발 3종류가 나오고 보쌈과 김치가 나오는 모듬이다. 취항에 따라 골라 먹을 수 있고, 그냥 다 먹을 수 있는데, 나는 먹을게 없었다.
그래도 한번 먹어보자고, 껍데기가 없는 족발부터 시작했다. 살코기 한점과 무김치 그리고 해파리 냉채를 담고 새우젓 하나를 살포시 얹어 먹었다. 그런데 조리과정을 안 봐서 확실히 모르겠지만, 느낌상 미리 썰어 놓은거 같았다. 수분기가 하나도 없이 뻑뻑하고 돼지 누린내가 입안 가득 퍼졌기 때문이다. 급하게 부추무침을 넣어 어느정도 진화를 했지만, 또 먹고 싶은 맘이 싹 사라졌다. 다시 샐러드에 집중하다가, 떡만둣국을 조금 먹고 그리고 다시 샐러드 그런데 이렇게 먹다보면 첨보는 외국인 친구들 앞에서 술취한 모습을 보일거 같아 보쌈에 도전을 했다.
이번에 상추쌈으로 해서 보쌈 한점(비계를 제거하고 싶었으나, 옆에서 맛나게 먹고 있는 프랑스 친구를 보니 편식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을 넣고 마늘, 부추무침, 무김치, 쌈장 등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게 쌈을 싸서 먹었다. 역시 따뜻한 보쌈이 아니라 식은 보쌈이었다. 족발처럼 미리 썰어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전한 호통불족발(매운양념족발)은 살코기가 없다. 아마도 족발을 썰고 남은 발가락뼈 부분을 이용해서 그런거 같다. 어렵게 살코기가 붙어있는 부분을 찾아서 먹었다. 입에서 껍데기의 식감이 느껴졌지만, 양념 맛이 강해서 그런지 물컹보다는 야들야들한 맛이 났다. 그나마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이지만, 혼자 샐러드 2판을 클리어 하고 조미료 맛이 강한 떡만둣국을 엄청 맛난 음식처럼 먹어야 했다. 못 먹는다고 끼적대는 것보다는 나을거 같아서 말이다.
그런데 한국에 온지 5년이라는 러시아 친구와 5개월이 됐다는 프랑스 친구는 어쩜 족발을 잘 먹는지 무척 놀라웠다. 그리고 소주를 받을때 두손으로 받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문화와 예절에 대해 잘 배웠구나 했다. 어릴때 외국인은 무섭고 낯선 존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같이 밥을 먹고 술도 한잔하면서 나의 못된 선입견이었다는 사실을 알았고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그들을 보면서 기특함과 함께 이상하게도 미안함이 느껴졌다.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를 하고 우리만의 비정상회담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들도 우리처럼 한국물가 특히 집문제로 힘들어 하지만, 한국음식은 엄청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그런데 한국말을 하나도 못한다는 그들과 3시간이 넘도록 어떻게 있었을까? 3시간만에 영어울렁증이 치료됐을까? 아니다. 주최자가 나를 속이기 위해 그랬던 것이었다. 알고보니 러시아 친구는 영화,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배우였다. 초반에는 영어로 말하더니 본인이 답답했는지 우리나라 말을 술술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도 왜이리 그들의 말이 다 들릴까 하다가, 아하~ 하면서 웃었다.
ps... 집으로 오는 지하철을 나와 프랑스 친구가 함께 타게 됐다. 나보다 한참 더 가는 친구인지라 자리가 생겨, 앉으라고 했다. 내가 앉아야 하지만, 180 넘는 그 친구를 계속 바라만 보고 있으니 목이 너무 아팠다. 앉으니 내가 아래로 쳐다볼 수 있어서 조금은 편해졌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보니, 눈이 너무 예뻤다. 남자에게 예쁘다고 하면 안되지만, 순정만화에서만 보던 눈을 직접 보게 되니 너무 신기했다. 그래서 완전 가까이에서 눈을 보고 있었는데, 자기 눈에 별이 있다고 했다. 설마 하고 다시 보니, 진짜 눈에 별이 있었다. 난 컬러렌즈를 착용해야 가능한데 하면서 부러워하다, 지기 싫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브라운 아이야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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