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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

경희궁을 몰랐습니다. 궁궐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은 한번 혹은 두번 정도 간 적이 있었는데, 경희궁은 전혀 그러하지 못했거든요. 광화문갈때마다 스쳐 지나가는 곳에 경희궁이 있었지만, 그 곳이 궁궐이였는지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경희궁의 초입인 흥화문을 역사박물관 입구로만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다른 궁에 비해서 경희궁은 전혀 궁궐답지 않은 그저 한옥식 공원처럼 느껴지더군요. 그만큼 훼손이 많이 됐다는 증거겠죠. 조선 후기 이궁으로 유명했던 경희궁이, 지금은 그저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 아쉬었습니다. 너무 사라져서 아쉬었던 경희궁 나들이 시작합니다. (사진은 소니 nex-3n으로 촬영했습니다.)

 

경희궁 서궐도안
서궐도안 (이미지 출처 : 문화재청)

경희궁(慶熙宮)은 조서 후기의 이궁(입니다. 여기서 이궁이란, 왕이 거둥할 때 머무르던 별궁(別宮)을 말합니다. 1617년(광해군 9)부터 짓기 시작해 1623년(광해군 15)에 완성되었습니다. 경희궁의 처음 명칭은 경덕궁이었으나 원종의 시호인 경덕과 같은 발음이라 하여 1760년(영조 36) 경희궁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경희궁이라고 해서 경희대 근처에 있다고 생각하면 절대 아니되옵니다) 경희궁은 도성의 서쪽에 있다고 해 서궐이라고도 불렀는데 이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하여 동궐이라고 불렀던 것과 대비되는 별칭입니다. 인조 이후 철조에 이르기까지 10대에 걸쳐 임금들이 경희궁에 머물렀는데, 특히 영조는 치세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경희궁에는 정전인 숭정전을 비롯하여 편전인 자정전, 침전인 용복전, 회상전 등 10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하면서 경희궁은 수난의 역사를 맞이하게 됩니다. 1910년 일본인 학교였던 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면서 대부분의 궁궐 건물이 헐려 나갔고, 그 면적도 절반 정도로 축소되어 궁궐의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1987년부터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현재 왕의 공식행사가 행해진 숭정전, 경희궁의 정문인 홍화문, 돌다리 금천교, 신하들과 회의를 하던 자정전, 영조의 어진을 보관하던 태령전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창경궁은 동물원인 창경원으로 경희궁은 학교로 바꿔 버리다니, 힘없는 나라는 이런 수모와 수난을 당하게 되는군요. 이렇게 넓고 멋진 곳이 경희궁인데 지금은 너무 작고 협소해졌습니다.

 

경희궁

흥화문은 경희궁의 정문으로, 원래는 현재 구세군회관 빌당 자리에서 동쪽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일제가 1932년 흥화문을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사당인 박문사의 정문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떼어갔던 것을 1988년 경희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현재의 위치에 이전하여 복원했다고 합니다.

 

경희궁에는 매표소가 없습니다. 더불어 입장료도 없습니다. 그래서 궁궐 통합관람권에 경희궁대신 종묘가 포함되었나 봅니다. 너무 작고 협소해서 입장료를 안 받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울나라 궁궐인데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다니 서글퍼지네요. 각 궁궐마다 안내책자를 500원에 판매하고 있었는데, 경희궁은 그 돈도 안 받고 간단한 리플렛 형식으로 된 안내책자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습니다.

 

경희궁

흥화문을 지나 숭정문을 가기 위해서 서울 시립 경희궁미술관을 지나고 휑하니 넓은 곳을 지나야 만날 수 있습니다. 한옥식 공원같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이 귀여워 보였지만, 그 아이들에게 여기가 바로 임금이 살았던 곳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경희궁

다른 궁궐에 비해 경희궁 복원은 많이 늦어지겠죠. 힘 있는 나라였으면 이런 훼손이 없었을 텐데, 참 아쉽네요.

 

경희궁

숭정문을 지나 숭정전으로 들어갑니다.

 

경희궁
경희궁
경희궁

숭정전은 경희궁의 정전으로 국왕이 신하들과 조회를 하거나, 궁중 연회, 사신 접대 등 공식 행사가 행해진 곳입니다. 특히 경종, 정조, 헌종 등 세 임금은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했다고 합니다. 숭전전은 경희궁 창건공사 초기인 1618년(광해군 10)경에 정면 5칸, 측면 4칸의 규모로 건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가 경희궁을 훼손하면서 1926년 건물을 일본인 사찰인 조계사에 팔았는데, 현재는 동국대학교 정각원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 위치의 숭정전은 경희궁지 발굴을 통하여 확인된 위치에 발굴된 기단석 등을 이용하여 복원한 것입니다. 숭정전 내부 당가에 용상을 설치하였는데, 그 뒤로 곡병과 일월오봉병을 두었습니다.

 

경희궁

원래의 숭정전인 동국대학교 정각원의 모습입니다.

 

경희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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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

자정전은 경희궁의 편전으로서 국왕이 신하들과 회의를 하거나 경연을 여는 등 공무를 수행하던 곳입니다. 숙종이 승하한 후에는 빈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선왕들의 어진이나 위패를 임시로 보관했다고 하네요. 1617~20년(광해군 9~12) 사이에 건립되었으나, 역시 또, 또 일제가 훼손했다고 합니다. 서울시에서는 발굴을 통하여 확인된 자리에 '서궐도안'에 현재의 건물을 복원했습니다. 내부는 텅텅 비어 있습니다. 뭐라도 세팅을 해놓지, 너무 썰렁하네요.

 

경희궁
경희궁

자정전 서쪽에는 발굴을 통하여 행랑의 바닥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돌이 발견되어, 발굴 당시의 모습을 보존하여 복원했다고 합니다. 다 훼손되고 이 전돌만 남아 있었네요.

 

경희궁
경희궁
경희궁

서암은 태령전 뒤에 있는 기이한 모양의 바위입니다. 바위샘이라는 뜻을 갖는 '암천(巖泉)'으로 불리는 샘이 그 속에 있어 예로부터 경희궁의 명물이었다고 하네요. 이 바위는 임금님 바위라는 뜻의 '왕암(王巖)'으로 불렸는데, 그 이름으로 인하여 광해군이 이 곳에 경희궁을 지었다는 속설도 있습니다. 1708년(숙종 34)에 이름을 상서로운 바위라는 뜻의 '서암(瑞巖)'으로 고치고, 숙종이 직접 '서암' 두 글자를 크게 써서 새겨 두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재 서암을 새겨두었던 사방석은 전해지지 않고, 다만 바위에 깎아 놓은 물길이 옛 자취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경희궁

서암은 태령전 뒤에 위치해 있어 태령전을 먼저 소개해야 하지만, 이상하게도 태령문을 통해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서암에서 태령전 뒷편으로 돌아가야 태령전을 볼 수 있게 되어 있네요. 사진 속 중앙에 있는 곳이 바로 태령전입니다.

 

경희궁

저 곳이 바로 태령문일거 같은데, 닫혀져 있습니다.

 

경희궁

태령전은 영조의 어진을 보관하던 곳입니다. 본래는 특별한 용도가 지정되지는 않았던 건물이라고 하네요. 그러나 영조의 어진이 새로 그려지자 1744년(영조 20)에 이 곳을 중수하여 어진을 봉안하였고, 영조가 승하한 후에는 혼전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흔적조차 거의 남아있지 않던 태령전을 서울시에서는 서궐도안에 따라 정면 5칸, 측면 2칸의 건물로 복원했습니다.

 

경희궁

영조의 어전입니다.

 

경희궁

경희궁 궁궐의 모습은 여기까지입니다. 궁을 나와 금천교로 향했습니다. 금천교를 가기 위해서 서울역사박물관을 지나가야 하는데, 곳곳에 또 다른 역사 유물들이 있어 같이 소개해 드립니다.

 

경희궁

역사박물관 뒷편에 흥선대원군의 손자 영선군의 신도비와 흥선대원군의 증손 이우 신도비 등이 있습니다.

 

경희궁

흥선대원군의 아들 흥친왕의 신도비입니다. 흥친왕은 흥선대원군의 장남이자 고종의 형입니다.

 

경희궁

서울역사박물관 야외전시구역에 있는 창경궁 · 종묘 육교의 난간석입니다.

 

경희궁

역사박물관 앞에는 40년 간 서울시민의 발 역할을 했던 전차가 복원되어 있습니다.

 

경희궁

서울역사박물관입니다. 안으로 들어가 자세히 봐야하지만, 박물관 투어는 따로 할 예정이라 참고 바깥만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이 역사박물관을 지나야 금천교로 갈 수 있습니다.

 

경희궁

금천교로 가기 전에, 눈에 들어오는 이상한 조형물이 있어 발길을 멈췄습니다.

 

경희궁

바로 2007년 해체된 철근콘크리트 광화문의 주요 부재였습니다. 60년대 정부의 공업화정책으로 문화재 복원에 철근콘트리트가 자주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철근콘크리트 광화문은 전체를 일체화하여 타설하는 일반적인 건축방식이 아닌, 각 부재별로 제작되어 조립하는 전통목구조의 방식으로 세워졌다고 합니다. 눈 가리고 아웅이 바로 이거네요.

 

경희궁

여장이라는 것으로 성벽 위에서 전투시 공격과 수비를 위하여, 규칙적으로 총구 높낮이 변화를 둔 낮은 담장이라고 합니다.

 

철근콘크리트 광화문 추녀의 모습니다. 참 어처구니가 없죠. 

 

경희궁

걸어가도 되고, 뛰어가도 되는 저 곳이 바로 금천교입니다.

 

경희궁
경희궁
경희궁
경희궁

금천교(禁川橋)는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을 들어서면 궁내의 전각에 들어서기 전에 흐르던 금천에 놓여진 돌다리입니다. 난간의 돌짐승들이나 홍예 사이에 새겨진 도깨비 얼굴은 대궐 바깥의 나쁜 기운이 궐내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상징성을 띠는 것이라고 하네요.

1619년(광해군 11)에 건립되었던 것을 일제가 매몰시켰지만, 서울시에서는 2001년 발굴을 통하여 발견된 옛 석조물을 바탕으로 현재와 같이 복원했습니다. 다른 궁궐과 달리, 금천교는 경희궁 내에서 볼 수 없고, 밖으로 한참 나와야 만날 수 있습니다. 훼손의 아픔이 바로 여기에서도 나타나네요.

 

경희궁

훼손이 너무 심해 궁궐보다는 한옥식 공원같았던 경희궁, 개인적인 느낌으론 100% 복원은 왠지 안될거 같아요. 길 중앙에 외로이 서 있는 저 나무처럼 외롭고, 짠하고, 슬프고, 아팠던 경희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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