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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창경원으로 알고 있던 어린시절, 정확한 년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무료 개장을 했던 날이 있었습니다. 그때 부모님 손 잡고 갔었는데, 그때는 이 곳이 궁궐이었는지 정말 몰랐습니다. 그저 동물원 + 놀이공원으로 생각했었습니다. 한참이 지난 후 창경원이 아니라 창경궁이었고, 동물원이 아니라 조선시대 궁궐임을 알게 되었죠. 우리의 아픈 역사가 광복이 된 후에도 오랫동안 지속되었다니 참 난감하지만, 다시 궁궐의 모습을 찾게 되었으니 다행이죠. 그러나 창경궁은 경복궁, 창덕궁과 달리 지금도 아픈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 참 서글펐습니다. 궁궐임에도 궁궐답지 않은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창경궁,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궁궐임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사진은 소니 nex-3n으로 촬영했습니다.)  

 

 

가는 방법 - 지하철 4호선 혜화역 4번 출구로 나와 300미터 정도 걸으면 됩니다.
버스는 파랑버스(간선) : 104,106,107,108,140,143,149,150,161,162,171,172,272,301 / 초록버스(지선) : 1018 /  빨강버스(광역) : 9410 입니다.

 

 

창경궁

저는 혜화역에서 대학로 구경도 살짝 하고, 천천히 걸어 갔어요. 걷다보니, 돌담길도 만나고 좋네요. 저 벽 넘어 창경궁이겠죠. 

 

 

창경궁

창경궁은 성종 15년(1484), 성종이 창덕궁 동쪽에 세운 궁궐입니다. 세종 때 상왕 태종을 위해 만든 수강궁을 성종이 세 명의 대비(정희왕후, 소혜왕후, 안순왕후)를 위한 공간으로 확장 보완하면서 창경궁이라 이름하였는데, 본래는 창덕궁과 함께 동궐(東闕)로 불렸다고 합니다. 처음 지을 당시의 건물은 명정전·문정전의 정전과 수령전·환경전·경춘전·인양전·통명전 등의 침전 및 양화당·여휘당·사성각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의 궁궐중에서는 유일하게 동쪽을 향해 지어졌다고 하네요. 처음에는 별로 사용하지 않다가 임진왜란 때에 경복궁과 창덕궁이 함께 불에 탄 이후, 창덕궁과 같이 지어져 조선왕조 역사의 중심 무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1909년부터 일제는 ‘순종 황제에게 위안거리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전각들을 허물고 그 자리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했습니다. 1911년, 이름마저 창경원으로 바꿨는데, 이는 한 나라의 궁궐을 공원으로 격하시키고, 왕족이 살던 곳에 동물을 사육함으로써 민족 전체에게 모멸감을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에서 벚꽃나무를 가져와 궁 곳곳에 심었는가 하면, 궐 안에 이왕가 박물관을 세워 사생활 관련 물품들까지 전시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궁 후원의 논 ~ 내농포를 춘당지라는 연못으로 바꾸고 개방하여 봄에는 벚꽃놀이, 여름에는 뱃놀이, 겨울에는 스케이트를 즐기도록 했다네요. 창경궁의 아픈 역사는 광복 후 1983년 서울대공원으로 동물원이 이전하기 전까지 계속 유지 됐다고 합니다. 어서 빨리 복원을 해야 하건만, 다른 궁에 비해 창경궁은 많은 전각들이 여전히 복원되지 못하고 있는거 같아요. 막상 가보니, 다른 궁궐에 비해 창경궁은 좀 휑하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입구 오른편에 매표소가 있지만, 저는 통합 관람권이 있어 바로 들어갔습니다. 입장료는 어른이 1,000원입니다. 대체적으로 3,000원 정도 했는데, 여기는 볼거리가 없어 그런지, 입장료가 생각외로 저렴하네요. 자세한 관람요금 및 시간 안내

 

 

 

규모는 꽤 큰거 같은데, 너무 휑하죠. 구중궁궐이란 말이 참 무색하네요. 1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히 관람할 수 있어요. 22번의 함양문은 바로 창덕궁 후원으로 연결됩니다. 창덕궁과 창경궁이 함께 붙어있으니, 서로 연결되는 곳이 있어요. 낙선재와도 연결되어 있거든요. 그리고 21번의 선인문은 조정 신하들이 출입하는 문이었는데, 죄인들도 이곳을 통해 나갔다고 하네요. 연산군이 중종반정으로 쫓겨나갈 때, 소현세자의 비 강빈이 사가(私家)로 내보내질 때, 낙선재 부근 취선당에서 생활한 장희빈도 처형 후 이 문을 통해 나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중요한 곳인데, 못갔네요. 체크하면서 다녔는데, 아쉽게도 선인문과 관천대를 빼고 다녔네요. 아니면 처음부터 너무 휑해보여서 갈 생각도 안한건지.

 

 

창경궁

창경궁

홍화문을 지나면 500년도 더 된 옥천교(玉川橋,)가 보입니다. 이 옥천교를 건너서 명정전으로 들어갑니다.

 

 

창경궁

창경궁

창경궁

명정전은 창경궁의 으뜸 전각으로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과거시험, 궁중연회 등의공식적 행사를 치렀던 정전(正殿)입니다. 1484년(성종 15)에 창건되어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6년(광해 8)에 재건되었습니다. 현존하는 궁궐의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경복궁의 근정전과 창덕궁의 인정전이 중층 규모로 거대하게 지어진 것에 비해 명정전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습니다. 이는 애초에 창경궁이 정치를 위해 지은 궁궐이 아니라 왕대비 등의 생활공간으로 지은 궁궐이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명정전은 단층의 단아한 규모지만 2단으로 쌓은 월대 위에 세워져 있어 정전의 위용은 갖추고 있습니다. 앞쪽에 펼쳐진 마당, 즉 조정(朝庭)에는 얇고 넓적한 박석(薄石)을 깔고 중앙에는 삼도(三道)를 두어 왕궁의 격식을 보여줍니다.

 

 

창경궁

숭문당은 임금이 신하들과 경연을 열어 정사와 학문을 논하던 곳입니다. 창경궁 창건 당시에는 없었고 광해군 때 창경궁을 재건하면서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경사진 터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뒤에는 낮은 주초석을 사용하고 앞에는 높은 주초석을 세워 누(樓)처럼 되어있습니다. 저 현판은 영조의 친필이라고 하네요. 사진 앞부분에 보이는 어처구니의 궁궐은 바로 국왕이 정무를 봤던 문정전입니다. 아무래도 명정전과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렸나 봐요. 또 안갔네요. 사전에 충분히 숙지했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어이없는 실수가 나오네요. 다음번에 가게 되면 추가 촬영해서 수정하도록 할게요.

 

 

창경궁

숭문당 오르쪽으로 함인정으로 나가는 통로가 있고요. 밖으로 나오면, 왼편으로 선인문과 관천대로 가는 방향인거 같습니다. 빨간 체크 부분은 창덕궁 낙선재인거 같아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돌담이어서, 저 길로 가면 낙선재로 연결되니 갈 필요가 없구나 했어요. 어쩐지 창경궁 관람이 너무 일찍 끝났는데, 이유가 있네요.

 

 

창경궁

함인정은 원래 인양전(仁陽殿)이 있던 터에 1633년(인조 11) 건립된 정자입니다. 남향에다 앞마당이 넓게 트여 있어 왕이 신하들을 만나고 경연을 하는 곳으로 이용했다고 합니다. 현재 함인정은 건물 사방이 벽체 없이 시원하게 개방된 모습인데, 동궐도에는 지금과 달리 3면이 막혀 있다고 합니다.

 

 

창경궁

함인정에서 바라 본 경춘전과 환경전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뭔가 썰렁해 보이지 않나요? 저번에 봤던 경복궁이나 창덕궁은 궁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문은 1~2개 정도 통과해야 했고, 본 건물인지 모를 정도로 많은 행각들이 있었는데, 창경궁은 그게 없네요. 그냥 저렇게 홀로 서 있는 건물들이 많아요. 일제가 창경원으로 바꾸기 위해서 다 훼손한거 같아요. 아무래도 건물이 많으면 동물원으로 만들기가 어려웠을테니깐요. 그렇다고 해도 어느 정도 복원 좀 하지. 너무 휑하고 썰렁하니 슬프네요.

 

 

창경궁

왕비나 세자빈의 생활공간인 경춘전은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승하한 곳입니다. 사도세자가 대리청정을 할때 경춘전을 침전으로 이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날 흑룡이 여의주를 물고 경춘전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꿈에서 본 용을 비단에 그려 경춘전 동쪽에 붙였는데 그 후 정조가 태어났다고 하네요. 정조는 자신이 태어난 이 곳에 ‘탄생전’이라는 현판을 써서 경춘전 남문에 걸었으며, 자신을 낳을 때 겪었을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고통을 기리고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경춘전기 341자를 써서 이를 북문에 걸어 바쳤다고 합니다.

 

 

창경궁

환경전은 왕의 생활공간으로 사용된 침전입니다. 왕 외에 세자가 이용하거나, 왕이나 왕비의 관을 모신 빈전(殯殿)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중종과 소현세자(인조의 장자), 효명세자(순조의 장자)가 모두 이 환경전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드라마로 본 대장금의 무대가 바로 창경궁 환경전이랍니다. 중종은 이 곳에서 마지막까지 의원이 아닌 의녀인 대장금에서 진료를 맡겼다고 하네요.

 

 

창경궁

창경궁

내전 가장 깊숙한 곳에 남향으로 위치한 통명전은 왕비의 침전으로 내전의 으뜸 전각입니다. 월대 위에 기단을 형성하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으며, 연회나 의례를 열 수 있는 넓은 마당에는 얇고 넓적한 박석(薄石)을 깔았습니다. 서쪽 마당에는 동그란 샘과 네모난 연못이 있으며, 그 주변에 정교하게 돌난간을 두르고 작은 돌다리를 놓았습니다. 통명전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장희빈입니다. 인현왕후를 저주하기 위해 꼭두각시와 동물의 사체 등을 묻어 둔 곳이 바로 통명전이거든요.

 

 

창경궁

양화당은 왕의 편전이나 내전의 접대공간으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병자호란때 인조가 환도하면서 창경궁 양화당에 머무르게 되는데, 주로 이곳에서 청의 장수와 사신을 접견했다고 합니다. 청나라 사신에게 속국의 왕으로 얕보이는 것을 꺼려, 정전이 아닌 이곳 양화당에서 베개와 이불을 치우지도 않은 채 청 사신의 칙서를 받았다고 합니다.

 

 

창경궁

바로 여기가 창덕궁 후원과 연결되어 있는 곳입니다. 튼튼한 두 다리가 있다면 하루 코스로 창덕궁과 창경궁을 관람해도 되지만, 저처럼 거지같은 체력이라면 나눠서 보는게 좋아요.

 

 

창경궁

양화당 옆으로 자연 암석을 그대로 활용한 돌계단이 있어요. 자연 훼손을 하지 않았던 우리 선조인데, 일제는 이런 곳을 동물원으로 이런 망할 XX.

 

 

창경궁

돌계단에서 바라본 창경궁의 모습, 진짜 너무 휑하네요. 만약 100% 복원이 된다면, 이 곳은 어떤 모습으로 바뀔까요.

 

 

창경궁

후궁들의 처소인 영춘헌과 집복헌입니다. 정조한 승하한 곳은 영춘원이며, 사도세자와 순조가 태어난 곳은 집복헌입니다. 정조는 후궁인 수빈 박씨를 아낀 나머지 집복헌을 자주 출입하다가, 아예 집목헌 옆 영춘헌을 독서실 겸 집무실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창경궁

풍기대는 대 위에 구멍을 뚫어 깃대를 꽂고 그 깃대에 기를 달아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가늠했던 기상 관측기구입니다.

 

 

창경궁

해시계(양구일구)는 세종 16년에 처음 만들어진 천문의기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던 해시계의 일종입니다. 시계판이 가마솥같이 오목하고 하늘을 우러러 보고 있다고 해서 양구일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풍기대와 해시계는 자연암석 계단을 올라야 볼 수 있습니다.

 

 

창경궁

태실은 왕족의 태반을 묻어 기념했던 조형물이며, 태실비는 그 사연을 기록한 비석입니다. 태실은 전국의 풍수가 좋은 명당에 흩어져 있으며, 성종의 태실은 경기도 광주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창경궁에 있을까요? 이는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이왕가 박물관의 진열품으로 사용하기 위해 옮겨 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창경궁

창경원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는거 같아요. 공터도 많고, 쉬어갈 수 있는 의자도 많고, 시멘트 바닥까지, 이 곳들이 다 건물들로 가득해야 하는데, 넘 휑하네요.

 

 

창경궁

춘당지는 왕이 농정을 살피던 곳으로 현재 두 개의 연못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뒤쪽의 작은 연못이 조선 왕조 때부터 있었던 본래의 춘당지입니다. 면적이 넓은 앞쪽 연못은 원래 왕이 몸소 농사를 행하던 11개의 논이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임금이 친히 쟁기를 잡고 소를 몰며 논을 가는 시범을 보임으로써 풍년을 기원했다고 하네요. 1909년 일제가 창경궁을 파괴할 때 이 자리에 연못을 파서 보트를 타고 놀이를 즐기는 유원지로 만들었는데, 그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네요. 정말 보트 타고 놀만큼 규모가 엄청나게 커요. 다른 궁궐에 비해 창경궁은 너무 아픈 곳이네요.

 

 

창경궁

연못에서 만난 녀석들입니다. 가족과 함께 애인과 함께 놀러 나왔나봐요.

 

 

창경궁

춘당지 주변을 걷다보면, 팔각칠층석탑이 보입니다. 이 탑은 성종때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일제가 창경궁에 이왕가 박물관을 건립할 때, 상인으로부터 구입해서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창경궁

창경궁 대온실은 1909년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로 목재와 철재, 유리로 되어 있습니다. 일본인이 설계하고 프랑스 회사가 시공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바닥 면적 582.3㎡, 높이 10.5m. 건축 당시 동양최대 규모로 열대지방의 관상식물을 비롯한 희귀 식물을 전시했다고 합니다. 현재는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 야생화, 자생식물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창덕궁 후원에서 정말 어울리지 않은 건물을 봤는데, 바로 여기였네요.

 

 

창경궁

진짜 다양한 식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사진에 다 담지 못해서 아쉽네요.

 

 

창경궁

안내판에 나와 있는 문구를 그대로 인용하자면, 자생식물학습장은 우리나라의 산과 들에서 자라고 있는 여러가지 식물을 모아서 도시 어린이들이 그 생태를 익힐 수 있도록 한 곳입니다. 창경원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참 노력한거 같은데, 더 이상해진거 같아요. 그냥 복원이나 하지. 왜 이런걸 만들었는지, 대온실과 가까운 곳에 있어서 그랬나...

 

 

창경궁

예전에 해설사로 부터 궁궐에서 이런 빈 공간은 원래 건물이 있던 자리인데, 복원을 하지 못해서 이렇게 두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복원하면 되겠구나 했었습니다. 그런데 창경궁에서 보니 왜이렇게 슬퍼지는지, 경복궁이나 창덕궁도 중요하지만 창경궁도 어서 예전의 구중궁궐의 모습으로 어서 빨리 복원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까칠양파의 서울 나들이... ep11 예고 - 5대 궁궐 시리즈 4화 - 경희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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