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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몇 남지 않은 달동네 북정마을. 서울 한양도성 백안구간에 딱 붙어 있는 북정마을. 그리고 만해 한용운선생이 입적할때까지 기거했던 심우장이 있는 곳, 북정마을. 1970년대 서울의 모습과 서글픈 우리 역사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곳, 북정마을에 가다.

 

서울 한양도성 백악구간에서 와룡공원으로 올라가는 급경사 계단 옆에 있는 암문(暗門)을 통해 나오면, 성북동에 이런 동네가 있었나 싶을만큼 1970년대 서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마지막 달동네 북정마을을 만나게 된다.

나처럼 성곽길을 통해 북정마을로 갈 수도 있고, 좀 더 편안하게 이 곳을 오고 싶다면, 한성대입구역 6번출구에서 마을버스을 타면 된다. 선택은 자유지만, 한번쯤 성곽길을 걸으면서 오는 것도 좋을 거 같다. 몸이 피곤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파란 하늘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 북정마을. 서울 하늘 아래 마지막 달동네라고 하더니, 그 말이 딱 맞다.

 

저 멀리 보이는 아파트가 참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아니 달동네 작은 집들이 이질적으로 느껴져야 하는게 맞을듯 싶다. 아파트 숲에 익숙해져 있으니깐 말이다. 

 

이런 곳이 남아 있다니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불편할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1988년만 해도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길을 이제는 그리워하다니, 그만큼 세월은 흘렸고, 그만큼 많이 발전했다는 의미겠지. 

 

북정마을 입구에서 만난, 빛바랜 안내도. 'Y'자 로 된 독특한 북정마을, 화살표 방향으로 동네 한바퀴를 돌기로 했다. 더불어 살짝 떨어져 있는 체크박스는 심우장이다.

 

마을분들의 휴게쉼터인 모정. 지금은 너무 추워서 휴지기 상태, 꽃피는 봄이 오면 이곳은 본격적인 활동을 하겠지.

 

마을 곳곳에 놓여있던 연탄. '이러다 새벽이슬 맞으면 안되는데...'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저는 연탄보다 못한 인간이지요.(마음의 소리)

 

기분 좋은 소식만 전해주라~

 

뭉클했던 문구. 달동네라서 불편함이 더 많을텐데,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거 같다.

 

북정미술관과 극단이 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폐업을 했는지 지금은 아무 것도 없었다.

 

사랑의 연탄나눔봉사로 인해 길가에 연탄이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새벽이슬 어쩌고 괜한 걱정을 했다. 함께 도와주고 싶었는데, 이눔의 못쓸 낯가림땜에 멀리서 속으로만 응원을 보냈다. '당신들이 있어, 추운 겨울이 전혀 춥지 않네요.'

 

마을버스 정류장 옆에는 작은 가게가 하나 있다.

 

따뜻한 난로에 따사로운 겨울 햇살까지 북정마을 어르신들의 또다른 쉼터일 듯.

 

가게 맞은편에는 참 예쁜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이지만, 내 안의 더러움을 버릴 수 없었다. 그리하여 물 한모금 안 마시고 엄청 참았다는...

 

화장실을 지나 올라가면, 무더위 쉼터이자 마을회관과 경로당을 만날 수 있다. 

 

마을회관에서 바라본 북정마을. 저멀리 성벽이 보인다. 

 

심우장으로 가는 길. 좁다란 계단을 지나고, 좁은 골목을 지나야 만날 수 있다.

 

심우장 가는 길에 만난 비둘기 공원. 성북동 북정마을에 비둘기가 많은 이유는 김광섭의 시 성북동 비둘기때문일 듯.

 

학교다닐때 분명히 배운 거 같은데, 성북동 북정마을 비둘기공원에서 다시 읽으니 완전 새롭게 느껴졌다.

"성북동 비둘기(김광섭)
이 시는 사랑과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가 문명과 도시 개발에 의한 자연 파괴로 보금자리를 상실한 채 쫓기는 신세로 전락해 버린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도시화, 산업화로 인해 성북동 산에까지 문명이 침투하면서 본래 그곳에 살던 비둘기는 보금자리를 잃고 떠돌이 신세가 된다. 결국 비둘기는 가는 곳마다 인간 문명에 쫓기며 사랑과 평화가 있던 옛날을 그리워하게 된다. 화자는 비둘기가 처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 무분별한 개발이 우리 인간의 삶에 끼친 영향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도시 문명의 부작용과 해악을 절제된 목소리로 경고하고 있다. 더불어 마지막 연에서는 물질문명 시대의 자연의 소중함과 사랑, 평화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출처- 다음백과사전)"

 

설마 못보고 지나친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때까지 좁다란 골목길을 계속 걸어야 한다. 

 

심우장(尋牛莊)은 만해 한용운선생이 55세가 되던 1933년부터 1944년 6월 29일 입적할 때까지 기거하던 곳이다.

 

만해 한용운선생은 3·1운동으로 3년 옥고를 치르고 나와 성북동 골짜기 셋방에서 생활을 하다, 승려 벽산 김적음이 자신의 초당을 지으려고 준비한 땅과 몇몇 유지(이들 중 조선일보사 사장 방응모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의 도움으로 땅을 더 사서 집을 짓고, 그 터를 심우장이라고 했다고 한다. 설계는 수학교사인 최수동이 맡았다. 처음에는 남향으로 공사가 시작되었지만 심우장에서의 남향은 조선총독부 건물과 마주하게 되는지라 이를 심기 불편하게 여겼던 한용운선생은 북향으로 집을 짓게 했다고 한다.

 

심우장에서 바라본 성북동의 모습, 오른쪽 하늘에 보이는 검은 물체는 비둘기 또는 까치일 듯. 남향집이 좋다는 걸 누구나 다 안다. 그런데 일제가 얼마나 싫었으면 빛도 들어오지 않는 북향으로 집을 지었을까? 선생의 뜻을 많은 이들이 알고 따라했더라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을텐데... 

 

현재 심우장은 공사중이다. 

 

원래 심우장은 안에 들어가 자유롭게 관람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공사로 인해 출입금지란다. 올 3월에 공사가 끝난다고 하니, 꽃피는 봄이 오면 성북동으로 다시 나들이를 떠나야겠다. 

 

선생의 친필문서, 연구논문집, 옥중공판기록 등이 보관되어 있다고 하던데, 아쉽게 볼 수 없었다. 다시오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아쉽게 발걸음을 옮겼다. 

 

심우장에도 비둘기가 있다. 여기서 잠깐. 참을 심(尋)에 소 우(牛)를 쓰는 심우는 말 그대로 풀면 '소를 찾는다'는 뜻이다. 이는 불교에서 인간의 본성을 찾는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열가지 수행단계 중 하나인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라는 선종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만해 한용운선생에게 심우장은 인간의 본성을 찾는 곳이었으며, 심우장에 대한 다음과 같은 시조를 남겼다고 한다.

"잃은 소 없건마는 / 찾을손 우습도다 / 만일 잃을씨 분명하다면 / 찾은들 지닐소냐 / 차라리 찾지 말면 / 또 잃지나 않으리라"

 

좁다란 골목길이니, 너무 시끄럽게 떠들면 안되겠지.

 

한쪽에는 비둘기가,

 

또다른 한쪽에는 기쁘고 행복한 소식만 전해줄 거 같은 가방이 있다.

 

마을안내도를 봤던 그곳에 다시 왔다. 아까 걸어왔던 성벽도 보이고, 이제는 하늘과 점점 멀어지는 일만 남았다. 

 

이래서 천천히 느리게 걷는게 좋다. 벽화마을은 아니지만, 너무나 앙증맞고 귀여운 벽화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으니 말이다.

 

북정마을과 한참 떨어져있지만, 한성대입구역으로 가다보면 만날 수 있는 최순우 옛집. 최순우선생은 미술사학자이자 박물관전문인으로 한국의 도자기와 전통 목공예, 회화사 분야까지 한국 미의 재발견에 힘쓰면서 많은 업적을 남긴 분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3월 30일까지는 겨울휴관이라고 한다. 꽃피는 봄이오면 성북동에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자꾸만 늘어난다. 

성북동에 가면 길상사도 있고, 북정마을도 있고, 심우장도 있고, 최순우 옛집도 있고, 간송미술관도 있고, 선잠단지도 있고, 수연산방도 있고, 성벽길도 있다. 꽃무릇으로 유명한 아름다운 절과 잊혀졌던 추억을 다시금 생각나게 하는 달동네 그리고 끊어진 성벽에 아픈 우리의 근대현사가 스며 있는 곳, 성북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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