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은 부자랍니다.(김천 직지사에서... 캐논 400D)
어렸을 때,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왜냐하면 밖에 있는 화장실이 싫었기 때문이다. 특히 겨울 밤 신호가 오면 정말 정말 가기 싫었다. 요강이라는 기특한 물건이 있어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냄새 나는 푸세식 화장실이 너무 싫었다. 시커먼 연탄도 싫었고, 이불을 코까지 덮어야 했던 웃풍도 정말 싫었다. 매 끼니마다 음식을 부엌에서 방으로 운반해야 했던 부엌도 참 싫었다. 연탄가스 중독은 아니지만, 가스 냄새도 싫었다.
그나마 좋은 점은 막 뛰어 놀 수 있다는 정도. 이걸 제외하면 주택이었던 우리 집이 참 싫었다. 화장실과 부엌을 가기 위해서는 항상 신발을 신어야 했던 우리 집. 유치원때 까지는 모르다가 초등학교(국민학교였는데^^)에 들어가고 난 후부터 부모님에게 우리도 아파트에 살자고 투정을 부린 적도 있었다. 집 안 사정도 모르고 말이다.
동네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5층으로 된 참 멋져 보였던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그 곳보다 살짝 아래쪽에 살았던 나는, 높고 높은 아파트가 왜 이리도 멋있어 보이던지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엄청난 부자라고 생각했었다. 초등학교 2학년때, 친한 친구가 바로 그 아파트에 살았었고, 친구 덕에 강남 아니 동경의 대상이었던 거기를 구경하는 기회가 생겼다.
"우리 집에서 놀자."라는 친구 말에 "학교 끝나면 바로 집에 와야 한다"는 엄마 말을 어기면서 하교 후 바로 부자들만 사는 그 곳으로 향했다. 처음 가는 아파트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그날의 기억이 너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아마도 냄새 때문이겠지.
친구가 초인종을 누르고, 멋진 홈드레스는 차려 입은 아주 멋져 보였던 친구 엄마가 문을 열어줬다. 울 엄마는 항상 몸빼(?)바지만 입고 있는데,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외출복 같은 옷을 집에서 입고 있구나 했다.
"엄마, 얜 내 짝 000야"
"아 그래, 너구나"
"네, 안녕하세요"
간단히 인사를 하고 친구 집에 들어선 나는, 신발을 벗다가 태어나서 한번도 맡아 본 적이 없는 냄새와 마주하게 됐다. 향기는 아니고 냄새가 분명한데,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냄새였다. 달콤, 쌉살, 고소 등등 아무튼 태어나서 처음 느껴본 냄새였다. 이거라고 표현할 수 없는 냄새이기에, 혼자 이건 '부자냄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티 나지 않게 계속 코를 끙끙거렸고, 조금이라도 더 그 냄새를 맡기 위해 엄청나게 들이 마시기도 했다.
친구 엄마가 차려준 우유에 맛난 과자도 먹고 그렇게 놀다가 저녁때가 돼서야 집에 돌아갔다. 집에 가면, 부자 냄새가 이런 거라고 자랑하려고 빨리 뛰어서 갔는데, 결과는 말 한마디 못하고 매만 맞았다. 말도 안하고 늦게 들어왔다는 이유에서다. 자기 전까지 엄청 울었던 거 같다. 울면서 내내 나도 아파트에 살고 싶고, 부자 냄새를 풍기면서 다니고 싶은데, 왜 우리 집은 이리도 가난할까 하면서 그렇게 속앓이를 했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나고 동경의 대상이었던 5층 아파트는 아니지만, 3층 연립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이제는 더 이상 신발 싣고 화장실에 갈 필요도 없어졌으며, 푸세식이 아닌 신식 화장실이 집 안에 있었다. 부엌에는 식탁이 있어, 상을 들고 방으로 갈 필요가 없어졌으면, 내 방도 생겼다.
이제는 나도 부자 냄새를 풍길 수 있는 그런 집에 살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원하고 원한 부자 냄새가 우리 집에서는 맡을 수가 없었다. 친구는 아파트고 나는 연립주택이라서 그런가? 왜 우리 집은 친구네 집처럼 부자 냄새가 안 날까 하면서, 아직 우리는 부자가 아니구나 하고 포기를 해버렸다.
가지지 못한다면 욕심보다는 포기가 맘 편히 살 수 있다는 걸 알기에, 그렇게 포기를 했다. 부자 냄새가 잊혀질 무렵 드디어 우리 집에서 그 냄새와 만나게 됐다. 하교 후 아무도 없는 집에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글쎄 그 냄새가 났다. 잊었는데, 머리는그 냄새가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신발을 벗으면서 끙끙대니 어렴풋이 그 냄새가 코 안으로 들어왔다.
'어라~ 우리 집이 부자였던 거야. 내가 모르고 있었던 거야. 부자인데 나 혼자 가난하다고 생각했던 거야'하면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서 혼자 미친 듯이 좋아했었다. 그런데 부자냄새는 엄마의 등장과 함께 완벽하게 사라져 버렸다.
"얘는 베란다 문 좀 열지. 아침부터 모든 창을 다 닫고 나갔더니 환기가 너무 안됐네."라고 하면서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 버렸다.
그렇게 나의 부자 냄새를 한 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져 갔다.
그리고 부자냄새에 대한 진실을 바로 목격하게 되었다. 그 건 바로, 환기가 안 된 집에서 나는 다양한 냄새들이 합친 것이었다. 화장실, 부엌, 거실, 방, 현관 등등 모든 곳이 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에 가능했던 냄새였던 것이다. 예전에 살던 집은 다 떨어져 있기에 절대 날 수 없는 그런 냄새였던 것이다. 완전 안 좋은 냄새를 부자냄새로 여기고는 그렇게 동경을 했다니, 나도 참 바보였다.
그래서 아토피가 생겼는지 모르지만, 몇 년 동안 부자냄새로 알았던 그 냄새의 진실을 안 순간, 말도 못하고 그저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그리고 그 날 엄마에게 '우리 집은 가난해서 부자냄새가 나지 않아'라고 말하지 않았음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친구의 부자냄새와 우리 집 부자냄새는 비슷했지만, 살짝 다름이 있었다. 아마도 그건 부엌 냄새 때문일 것이다. 가끔 양식을 먹는다는 친구와 늘 한식만 먹었던 우리 집, 버터, 마가린의 존재가 바로 부엌 냄새의 차이점이었다. 환기를 너무나 잘하는 우리 집과 달리, 친척 또는 친구 집에 가게 되면 가끔씩 부자냄새를 맡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조용히 일어나서 창문을 열거나, 환풍기를 가동한다. 이제는 나쁜 냄새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순수했기에, 동심이 많았던 아이였기에 가능했던 추억이겠지. 지금은 개 코가 돼서 이상한 냄새만 나도 질색팔색 하면서 살아가는 중이다.
다음 메인과 모바일 투데이 블로그에 두둥~(2015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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