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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을 가면, 유적지와 전통시장은 꼭 가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인이라면서, 우리나라 유적지는 왜이리 등한시 했을까요? 생각해보니, 학창시절 소풍이나 백일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본 게 전부네요. 이번 기회를 통해 제대로 알아봐야겠습니다. 우선은 예전에 내가 살았을지도 모를 그곳부터 가야겠죠. 바로 경복궁입니다. (사진은 소니 nex-3n으로 촬영했습니다.)

 

 

가는 방법 -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로 나오면 됩니다. 5호선 광화문 역에서 내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보면서 걸어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경복궁 역을 통해서 바로 갈 수도 있지만, 통인시장에서 점심은 먹은 후 경복궁 방향으로 걷다보니 국립고궁박물관이 나오네요. 그리하여 저 문은 처음 봤습니다. 같은 길로만 다니다가, 다른 길로 가보니 새삼 새롭네요.

 

 

국립고궁박물관 문을 지나서,

 

 

걷다보면, 경복궁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경복궁 역이 보이네요. 여기서 왼쪽으로 살짝 방향을 바꾸면,

 

 

경복궁 내부로 들어가는 문이 보입니다. 자~ 안으로 들어가시죠.

 

 

매표서 앞에는 내국인보다는 외국인들이 더 많네요. 가볍게 줄을 서서, 표를 삽니다. 일반 성인은 3,000원입니다. 그런데...

 

 

궁궐 통합 관람권이라는게 있더군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종묘를 관람할 수 있도록 통합 관람권을 판매하고 있네요. 각각 사는 것보다 좀더 저렴합니다. 10,000원이거든요. 그런데 제가 계획한 5대 궁궐에 종묘는 없었는데, 아무래도 경희궁은 따로 구입을 해야 할거 같네요. 더불어 5대 궁궐 + 종묘까지 나들이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궁궐 통합 관람권은 구입 후 한달동안만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낱장으로 떨어져도 안 된다고 하니, 잘 보관해야 합니다.

 

 

바로 경복궁 안으로 들어가도 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광화문을 아니보고 갈 수는 없겠죠.

 

 

느름한 광화문의 모습입니다. 자세히 보니, 어처구니가 참 많네요. 궁궐 여기저기 보다 보면 다양한 어처구니를 볼 수 있습니다. 그냥 스쳐 지날칠 수 있는데 요렇게 찾아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어처구니란, 본래는 왕궁 등의 처마에 장식된 ‘토기’를 말하나, 주로 없다의 앞에 쓰이어 생각 밖으로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물건을 나타내는데 사용된다고 합니다.

 

 

시간대가 맞으면 수문장 교대식을 직접 볼 수 있는데, 아쉽게도 못 봤네요. 저도 저 분들과 함께 인증샷이라도 남기고 싶었으나, 외국인들이 너무 많아서 그냥 들어갔습니다.

 

 

광화문에서 경복궁 안까지 좀 걸으셔야 합니다. 봄바람 때문에 모래샤워를 좀 했네요.

 

 

저 멀리 근정전이 보이기 시작하네요.

 

 

저기 사람들이 모여 있는 바로, 경복궁에 대한 안내말이 있기 때문이지요. 제가 간략하게 정리를 했습니다.

경복궁은 조선왕조 개국 4년째인 1395년에 처음으로 세운 으뜸 궁궐이라고 합니다. "하늘이 내린 큰 복"이라는 뜻으로 경복궁이라 이름 지웠다고 합니다. 북안산을 주산으로, 목면산(지금의 남산)을 안산으로 삼아 풍수지리적인 터잡기에서도 한양의 중심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정문인 광화문 남쪽으로 관청가와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를 조성하고, 그 연장선 위에 근정전, 사정전, 강념전 등 주요한 궁궐 건물들을 일렬로 놓아, 왕조국가인 조선의 상징 축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임진왜란으로 완전히 불타 없어진 후, 제2의 궁궐인 창덕궁을 재건하여 정궁으로 삼았지만, 경복궁은 재건을 미루어 270년 이상을 폐허로 남게 되었다고 하네요. 1867년에야 비로소 흥선대원군이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해 경복궁을 재건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대부분의 건물들이 철거되어 중심부의 일부 건물들만 남았고, 광화문을 비롯한 일부는 헐어내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어 궁궐의 정면을 막았다고 합니다. 이런 나쁜!!!

1990년부터 복원사업이 꾸준히 진행되어, 총독부 청사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원래의 홍례문과 행각을 복원했고, 왕과 왕비의 침전 및 왕세자가 기거한 동궁을 비롯하여 궁궐의 정문인 광화문도 다시 복원해 경복궁의 원래 모습을 회복 중이라고 합니다. 30% 정도 복원되었다고 하니, 아직도 복원해야할 부분이 많이 남았네요. 경복궁을 다니다 보면, 작은 정원같은 곳들이 많은데, 원래 그 곳은 궁궐건물들이 있던 자리라고 합니다.

 

 

경복궁 관람코스 안내도 입니다. 예전 경복궁과 비교해 보니, 뭔가 많이 부족해 보이네요. 100% 복원이 되는 날, 다시 한번 가봐야겠네요. 저 안내도를 출력해서 체크하면서 봐야 하는데, 그냥 발길 닿는대로 가다보니 빠진 곳이 좀 있네요. 그래도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면서 근정전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근정전은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의 중심 건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입니다. 태조 3년(1394)에 지었으며, 정종을 비롯한 조선 전기의 여러 왕들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했다고 합니다. ‘근정’이란 이름은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잘 다스려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정도전이 지었네요. 경복궁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궁궐답게 여행객들이 많이 있네요.

 

 

근정전을 뒤로하고 앞을 보니,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만나는거 같죠.

 

 

사정전은 왕의 편전으로 신하들과 함께 나랏일을 논의하던 곳입니다. 이곳은 온돌이 없는 마루였기 때문에 온돌이 있는 좌우의 만춘전, 천추전을 소편전으로 사용했다고 하네요. 오늘날 국무회의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정책들을 왕과 대신들이 토론을 통해 결정했다고 하네요.

 

 

왕의 침전인 강녕전입니다. 왕이 일상생활을 하였던 공간으로, 이곳에서 독서를 하거나 휴식을 취했고 신하들과 정무를 봤다고 합니다. 강녕전은 근정전과 달리 왕비나 대비를 위해 여는 내진연, 외부 손님에게 여는 외진연, 종친들에게 여는 위로연, 신하들과 함께하는 간단한 연회 등 왕실의 사적인 연회를 여는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하네요.

 

 

강녕전과 바로 연결되어 있는 왕비의 침전 교태전입니다. 중궁전으로 더 많이 알고 있는 곳이죠. 그런데 왜 교태전이라고 할까 했는데, 교태(交泰)라는 이름은 주역의 11번째 괘인 ‘지천태’에 나오는 ‘천지교태’에서 따온 말이라고 합니다. 이 괘는 세 개의 음효(땅) 아래 세개의 양효(하늘)가 겹친 모양으로 땅과 하늘이 뒤바뀌어 있는 모양이라고 하네요. 이에 하늘의 기운은 위로 향하고 땅의 기운은 아래로 흐르기에 천지음양이 잘 교화된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합니다. 천지가 교통하여 조화하듯이, 왕과 왕비가 화목하여 자손이 번성하고 나라가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깊은 뜻이 있는지 몰랐네요.  

 

 

세자와 세자빈의 생활공간인 자선당입니다. 경복궁 내 동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자선당 동쪽에 위치한 비현각은 세자가 학문을 연마하고 정무를 보던 곳입니다. 문종이 세자 교육을 받았던 곳이 여기라고 하네요.

 

수정전은 왕의 거둥이 가장 빈번했던 건물로, 세종 때 집현전으로 사용됐다고 합니다. 이 수정전 뒤에는 경회루가 있답니다.

 

 

향원정으로 걸어가는 길에 만난 개나리꽃!! 비슷비슷한 궁궐을 보느라, 혹사한 눈을 정화해 주네요.

 

 

봄 꽃 속에 숨어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이 보이네요.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그 앞에 연못을 파고, 연못 가운데 섬을 만들어 정자를 지었는데 이것이 향원지와 향원정입니다. 건축 당시에는 북쪽 건청궁 방향으로 다리가 놓였으나, 1953년 복원하면서 남쪽으로 연결되었다고 하네요. 향원지 북쪽에는 조선 최초의 발전소가 있었다고 합니다. 향원지의 물을 끌어올려 발전기를 돌려서 전등을 켰다고 하네요. 조선 최초의 전깃불이죠.

 

 

향원정을 지나, 집옥재로 향합니다.

 

 

건청궁 서쪽에 위치한 집옥재는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이었으나 1891년에 옮겨와, 책을 보관하는 서재와 외국 사신을 맞는 접견소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2층 건물로 되어 있다고 하네요. 양옆 벽을 벽돌로 쌓아 만든 건물로 화려한 장식, 건물의 초석, 창호의 형태와 살대, 용마루의 용 모양 등이 모두 청나라식이라 이국적인 건축미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더불어 집옥재는 ‘보물을 모아 놓은 곳’이라는 뜻으로 고종이 아꼈던 4만여 권의 책이 있었던 왕실 도서관이었다고 합니다.

 

 

장고는 궁궐의 장독들을 분류, 보관하던 계단식 장독대입니다. 대장금이 생각나는 곳이죠. 이 장고만을 관리하는 궁녀, 장고마마가 있다고 하니 궁궐도 장맛을 소중히 했나봅니다. 장고의 가장 큰 독에는 간장을, 항아리에는 젓갈을, 작은 단지에는 된장을 담아 보관했다고 하네요. 크기별로 다양한 독이 있는 이유가 바로 이거였군요. 참 현재 경복궁은 대장금의 주무대인 소주방을 복원하고 있어요. 복원이 되면 외국인들이 더 몰리겠죠.

 

 

교태전 뒤에 위치해 있는 아미산은 왕비를 위한 개인 정원이었다고 합니다. 아미산과 함께 독특한 4개의 굴뚝이 있는데, 교태전 온돌방 밑을 통과하여 연기가 나가는 굴뚝이라고 하네요. 지금 남아 있는 것은 고종 2년 경복궁을 고쳐 세울때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6각형으로 된 굴뚝 벽에는 덩굴무늬, 학, 박쥐, 봉황, 소나무, 매화, 국화, 불로초, 바위, 새, 사슴 따위의 무늬를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굴뚝 주제에 왜이렇게 화려할까 했는데, 굴뚝의 기능을 충실히 하면서 각종 문양 형태와 그 구성이 매우 아름다워 궁궐 후원 장식 조형물로서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고 하네요.

 

 

경복궁에 오니, 한국인이라서 참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드네요. 요즘 이런 생각 못하고 살았는데 말이죠. 곡선과 직선 그리고 여백의 미까지 참 아름답죠.

 

이제 경회루에 갈 시간이 됐네요. 늘 멀리서만 봤던 경회루를 직접 들어가서 만져보고, 걸어보고자 합니다.

 

 

경복궁 스페셜편 경회루은 내일 업로드 됩니다.


 




하트는 저에게 커다란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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