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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은 한지작품 관람 2층은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서촌라운지 (feat. 봄을 오르다)

길을 걷다가 무지 예쁜 한옥을 봤다. 외관만 보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 대놓고 사진을 찍었다. 이를 즐겁게 바라볼 집주인은 없을 거다. 112에 전화해서 "이상한 사람이 우리 집을 막 찍고 있어요"라고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런데 신고는커녕 어서 오라고 인사를 한다. 누하동에 있는 서촌라운지는 우리 고유의 주거문화를 소개하는 서울 공공한옥이다.

 

서촌라운지는 서울시 종로구 필운대로 27-4에 있어요~

13시 오픈이라서 뜻하지 않게 오픈런을 했다. 이날 첫방문객이다 보니, 1층에서 2층까지 혼자서 맘껏 즐겼다. 서촌라운지는 한국을 방문하는 모든 세계인에게 열린 공간으로 K-하우스, K-리빙의 가치와 매력을 선사하는 특별한 공간이라고 한다. 서촌라운지이니 북촌라운지도 있을까? 있다.

 

한옥이라고 해서 규모가 클 줄 알았는데, 1층은 복도 형태로 쭉 이어져 있고, 저 끝에는 직원의 공간과 그 옆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공간이 있다. 후다닥 걸으며 금방 도착하겠지만, 곳곳에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관람을 하느라 느긋하게 걸었다. 

 

한지로 만든 조명

'봄을 오르다'는 나무의 죽음을 생명의 조각으로 환생시켜 우주의 별자리로 옮긴 박선기 작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김선희, 바이그레이, 스튜디오 누에, 스튜디오 신유, 스튜디오 포가 한지로 빚어낸 예술 작품들을 선보이는 전시라고 안내문에 나와있다.

한지는 나무의 각질이 물을 만나 하얀 질료로 거듭난 사물로, 종이의 속살에는 사계를 버틴 뿌리의 생명력과 줄기의 부지런함과 꽃의 노래가 숨어있다. 아이의 볼 피부와 같은 표면에는 어느 장인의 무심한 손길이 숨이 되고, 바람을 머금은 빛은 고래 심줄보다 질긴 섬유 세포 엮어 하얀 미학으로 마감한다.

 

스튜디오 포의 단색의 군상

돌로 만든 생각하는 사람처럼 느껴지면서 너무 외롭겠다 했다. 그런데 작품명이 이갑철의 적막강산이란다. 괜히 통하는 느낌이 들어 혼자서 으쓱했다. 참, 단색의 군상은 손으로 한지를 찢고 겹겹이 쌓아 올려 오직 수작업만으로 빚은 달 항아리라고 한다. 

 

스튜디오 누에의 여정
스튜디오 누에의 풍경 속으로, 한지 모빌

여름이면 여느 길목에서 마주하는 담벼락에 늘어진 능소화의 형태를 모티브로 했다. 계절의 이야기를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유할 수 있도록 자연의 이야기를 담은 행잉 작업이라고 한다.

 

아엘시즌의 아엘시즌 오브제

왼쪽은 바이 그레이의 빛나는 비로, 한지의 비치는 물성으로 한국의 계절감을 느낄 수 있도록 투각 기법과 바람에 날리는 실을 이용해 작업하는데, 내 눈에는 고급스러운 실타래? 오른쪽은 스튜디오 포의 향낭으로, 한지의 물성을 활용해 지니거나 걸어둘 수 있는 향냥이라고 한다. 

 

이갑철의 사진집과 스튜디오 신유의 LIN 2 와 TRAY
박선기의 AN AGGREGATION

전시는 여기까지, 작품이 많지 않은데 난해해서 이해보다는 그저 느낌으로 바라봤다. 게다가 작품명과 설명이 있는 안내글이 바닥에 있어 줌으로 찍은 다음에 봤다는 거, 안 비밀이다. 한옥을 소개하는 공간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시도 하는 듯하다. 

 

마당에 나오기 전에는 바람이 불어서 볼만 했는데, 막상 나오니 바람이 사라졌다.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을 담고 싶었는데, 그저 잠잠하고 고요하다. 사극드라마를 보면, 빨래를 널다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상황이 일어나는데, 그때도 바람은 필수다.

 

마당이자 이벤트 공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체험공간이다. 한옥 구경과 함께 작품 관람만 하는 줄 알았는데, 계절 차를 마셔보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한다. 현장 접수는 받지 않고, 네이O에서 사전예약을 해야 한다. 

 

바이 그레이의 한지 매듭 북마크

2층이라 쓰고 다락방이라 읽어야 하는 공간이다. 왜냐하면, 계단이 가파르기 때문이다. 1층에 비해서는 협소하지만, 그래서 더 아늑하게 느껴진다. 사람이 많으면 답답하겠지만, 지금은 혼자다. 도서관인 듯, 책장에 책이 많은데 관심이 없다. 

 

2층에서 바라본 마당

책보다는 라운지의 의미처럼 빈둥거리면 시간을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으니 거의 누운 자세로 서까래를 바라보는 중이다. 이렇게 좀 더 오랫동안 멍때리고 싶었는데, 아래층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내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 재빨리 일어났다. 낮잠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더 있고 싶었는데 아쉽다. 느낌은 5분인 줄 알았는데 촬영시간을 확인해보니 15분 동안 누워있었다. 뜻하지 않은 오픈런으로 인해 작품감상에 빈둥거리며 눕기까지 혼자만의 시간을 제대로 보냈다. 서촌라운지를 알차게 즐겼으니 다음은 북촌라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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