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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공단, 이제는 IT의 메카 구로디지털단지가 되었다. 그러나 6~70년대 구로공단은 우리의 언니, 누나야가 가족을 위해 일을 해야만 했던 곳이다. 돈 없는 설움에서 벗어나고자 학교가 아닌 직업 전선으로 뛰어든 그녀들, 가족을 위해서라면 희생을 행복으로 알았던 그녀들, 당신들이 있어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너무 많이 변해버린 구로공단, 6~70년대 모습은 시대극에서만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곳, 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이다.

『구로공단은 수출산업단지개발조성법에 따라 현재의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과 금천구 가산동 일대에 1965년부터 1973년까지 3개 단지로 조성됐으며, 정부의 수출 주도 정책에 힘입어 1970년대 고도성장의 심장부 구실을 수행하였다. 봉제, 가발, 완구 등 저임금에 기초한 노동 집약적 경공업이 터를 잡아 한때 국내 총 수출액의 10%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이와 더불어 농촌의 어린 소녀, 소년들이 구로공단으로 유입되면서 주변에 이들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주거지가 형성되었고 좁은 공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인구 또는 가구가 밀집되어 있다고 하여 속칭 '벌집촌'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제조업들의 급속한 쇠퇴와 더불어 노동환경이 열악해지면서 벌집촌의 주인공들도 조선족 이주 노동자들 중심으로 바뀌어 지게 되었다. 그리고 뉴타운 사업으로 인해 앞으로는 구로 지역에서 벌집촌을 찾아보기 힘들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 오늘 70년대 구로공단 여공인 '순이'의 삶을 들여다 보자.(출처 - 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

 

1층인데 2층 같은 곳으로 올라가면 전시실을 만나게 된다. 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은 무료 관람이며, 매주 화~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한다. 위치는 지하철 1,7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 2번출구로 나와, 이정표를 따라 200미터 정도 걸어오면 된다. 

 

똑똑~ "순이 언니 있나요? 안 계신다고요. 그럼 안에서 기다리면 될까요? 기다리는 동안 집 구경 좀 할게요." 

 

구로공단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는 기획전시관이다. 

 

벌집이라고 하는 쪽방촌의 모습이다.

 

해맑은 순이 언니. 하지만 그녀의 웃음 뒤에 남 몰래 흘린 눈물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공순이라고 불렸던 그녀들. 그녀들의 삶은 너무나 가혹했다. 가족을 위해 돈을 아껴야 했던 그녀는 자신의 행복은 희생이라는 단어 속에 묻어야 했다. 

 

비밀의 방이다. 파란 통을 통해 그녀들의 비밀대화를 들을 수 있다. 

"이번에 우리 오빠 대학에 들어갔다."

"어 정말, 근데 학비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

"내가 보내줘야지."

"지금도 거의 다 보내주면서..."

"내가 더 아끼면 돼."

 

그녀들의 비밀대화만 듣지 말고, 벽면에 가득 채운 구로공단 노동 및 인권 운동사에 대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보시길. 

 

공동 세면장. 저렇게 밝은 표정은 아니었을거 같은데, 그림이 너무 해맑다.

 

희망의 방. 열두시간 작업에 잔업 그리고 특근, 야근을 했지만, 공부는 포기할 수 없는 법. 자판기 커피로 졸음을 쫓고, 야학과 산업체 야간학교를 다니면서 학구열을 불태웠다. 그녀가 공부를 해야만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다.

 

주방이라고 하기엔 너무 열악하다. 혼자 살아도 부족해 보이는 이 곳을 3~4명이 함께 살았다고 한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

 

순이의 방. 좁디좁은 쪽방이다. 혼자 있어도 꽉 차는 이곳에 3~4명이 함께 사용했다고 하니, 답답함이 밀려왔다. 함께 잠을 자기 위해서는 모로 누워야만 했을텐데, 왜 그녀들이 힘든 생활 속에서도 공부를 했는지 알거 같다. 그리고 이곳을 얼마나 벗어나고 싶어했을까?

 

여공의 연령별 구성에서 20세 미만이 50%라고 한다. 그리고 51%가 국졸 출신이라고 한다.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해 순이언니는 너무 어린 나이에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어린 그녀들에게 사회는 너무 가혹했다. 그런 그녀들을 수출역군이라고 치켜 세우면서 직원복지 개뿔, 인간이 아닌 그저 일하는 기계로 치부했다.

 

오백만불 수출의 탑. 순이언니는 기뻐했을까? 

 

어린이 체험학습 활동지 마지막 페이지, "나는 이런 어른이 될꺼에요!" 나는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어른이 되고 싶나요? 과연 아이들은 뭐라고 쓸까? 왠지 질문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순이언니가 있어 너희들이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거란다. 우리 순이언니에게 감사인사를 쓰면 어떨까?" 차라리 이렇게 물어봤으면 더 좋았을텐데.

 

세면장만 공동이 아니라, 화장실도 공동이다. 아침마다 이곳은 전쟁터였겠지.

 

진짜 벌집, 쪽방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따로 있는데, 지하는 아니고 반지하 같다.

 

좁고 길다란 복도 사이로 6개 벌집이 있다.

 

예전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공간이지만, 지금은 문화, 공부, 봉제, 추억, 생활, 패션이라는 테마로 되어있다. 단체로 방문하게 되면, 각 방에서 직접 체험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혼자 갔기에, 불 꺼진 으스스한 쪽방을 후다닥 보고 나왔다.

 

체험관 옆에는 가리봉상회라고 그 당시 구멍가게다.

 

주인아주머니가 자다가 "오늘도 또 라면이야" 하면서 푸근한 인상으로 반겨줬을거 같다. 

 

막걸리 주전자 그리고 양은냄비는 라면용인가? 직접 라면을 끓여서 판매를 했나보다. 하긴 부엌이 너무 협소하니깐, 끼니는 가리봉상회에서 간단히 해결했을거 같다.

 

그래서 라면과 국수가 가장 먼저 보이는구나.

 

끼니도 해결하고, 게임도 하고, 주전부리도 하고, 언니야들의 사랑방이었을거 같다. 개인적으로 모래요정 바람돌이 종이인형, 저거 무지 갖고 싶었다.

 

그녀들이 바라보는 하늘은 이랬을까?

 

아니다. 그녀들도 파란 하늘을 봤을 것이다. 하늘을 보면서 미래의 행복을 꿈꿨을 것이다. 순이언니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야 하는데, 자꾸만 시간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벌집촌에서 고시원으로 단어만 달라졌을뿐, 여전히 우리의 청춘들은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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