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지로에서 홍콩을 만나다 을지로3가 장만옥
비행기 타고 홍콩은 갈 수 없지만, 버스 타고 홍콩은 갈 수 있다. 분명 여기는 힙지로라 불리는 을지로가 맞는데, 안으로 들어오니 홍콩이다. 익숙함과 낯섦이 공존하는 곳, 홍콩 가정식을 먹으러 을지로3가에 있는 장만옥으로 향했다.
지난 여름 초계탕을 먹으러 평래옥에 가던 중, 주변과 사뭇 다른 분위기에 끌려 무턱대고 안으로 들어갈뻔 했다. 친구와의 약속이 없었더라면, 초계탕 대신 여기서 점심을 먹었을 거다. 곧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는데,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한 후에 왔다. 장만옥이라는 이름이 주는 감동이 있는데, 여기는 어떤 감동을 줄까?
점심은 3시까지, 저녁은 3시부터이니 브레이크 타임이 없나보다. 점심과 저녁의 차이점이라면, 가격 할인이 아닐까 싶다. 점심은 전 메뉴가 20% 할인이 되니,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저녁보다는 점심이다. 혼밥이기에, 늦은 오후에 방문을 했다.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은 수면제같은 영화다. 첫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한번에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늘 잠이라는 빌런의 등장으로 결말을 놓치다가, 6번째였나? 그때쯤에야 영화의 후반부를 봤다.
마치 중경삼림의 한장면처럼 장만옥은 어두운 조명 아래 암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영화라면 옆 테이블에 양조위가 앉아있을 텐데, 현실은 아무도 없다. 분위기만으로도 여행에 온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다니, 당분간 해외여행을 갈 수 없으니 이국적인 식당 투어를 종종 해야겠다.
메뉴가 많을때는 고민도 많다. 우선 밥을 먹어야 하니, 산동식마늘쫑면(9,800원)을 고르고, 이국적인 분위기에서 맥주 한잔은 필수이니 상상 페일에일(6,800원)을 주문한다. 그리고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안주가 필요하니, 표고슈마이(9,800원)도 함께 주문을 했다.
에일 맥주답게 달달한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메뉴판에는 감귤향이라고 하던데, 내가 느끼기에는 에일 특유의 향이다. 5.1%로 맥주치고는 살짝 알콜이 있지만, 쓴맛이 약해서 목넘김이 부드럽다. 기름진 음식과 조화가 좋다는 거, 안 비밀이다.
멘보샤의 표고버섯 버전이랄까? 빵대신 버섯이라 아주 살짝 건강한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자연산 송이버섯을 좋아하지만, 비싸서 잘 먹을 수 없으니 대신 표고버섯을 많이 먹는다. 향도 좋고 맛도 좋으니깐.
표고버섯 하나가 통으로 들어있고, 그 아래 새우 반죽이 있으며, 이 둘을 바삭한 튀김옷이 감싸고 있다. 튀김은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고 하는데, 표고버섯과 새우를 튀겼으니 더이상의 설명은 구차한 변명이다.
산동식마늘쫑면인데, 면은 아니 보이고 마늘쫑과 다진 돼지고기만 가득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다고 없는 건 아니다. 내 안에 너 있듯, 저 안에 쫄깃한 면있다.
별다른 양념은 없고, 이 둘을 잘 비비면 된다. 살짝 기름지지만 괜찮다. 기름짐을 없애줄 에일 맥주가 있으니깐. 매콤함은 없고, 김칠맛을 위해 굴소스를 넣었을 거다. 그나저나 돼지고기와 마늘종을 같이 먹어본 적이 없는데, 이거 괜찮을까?
마늘종이 없었더라면, 이 음식은 나올 수 없었을 거다. 센불에 볶아도 아삭한 식감은 살아있고, 과한 기름은 마늘종의 알싸함이 잡아 준다. 탱탱한 면과 다진 돼지고기도 물론 좋지만, 산동식마늘쫑면의 치트키는 마늘종이다.
홍콩식 오일파스타라고 할까나? 똑같이 흉내낼 수 없지만, 집에서는 마늘에 마늘종까지 넣어서 마늘 오일 파스타를 만들어 봐야겠다. 여기에 감칠맛 담당 굴소스는 놓치지 않고 꼭 넣어야지.
조절을 하면서 먹어야 했는데, 면은 사라지고 두 녀석(?)만 남았다. 하지만 괜찮다. 이는 밥을 먹기 위한 큰그림이니깐. 산동식마늘쫑면을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이건, 밥이 히든일거라고.
짜장면 소스가 남으면 밥을 비벼 먹는게 국룰이듯, 마늘종과 돼지고기가 남았는데 그냥 둘 수가 없다. 밥을 넣고 비비니, 면과는 다른 새로운 음식이다. 짬뽕과 짬뽕밥이 다른 거처럼 말이다.
젓가락으로 면을 먹을때는 면과 내용물이 따로 놀았는데, 숟가락으로 먹으니 마늘종을 과다 섭취할 수 있어 좋다. 아삭아삭 마늘종 폭탄이 터진다. 내세울만한 식감은 없지만, 다진 돼지고기는 본연의 맛을 뽐내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표고버섯이 반찬이 되는 순간, 이 무슨 사치인가 싶다. 입안 가득 퍼지는 표고버섯의 향, 양치하기 싫을 정도로 좋다. 정통 홍콩의 맛은 아니겠지만, 이국적인 분위기에서 먹으니 정말 홍콩에 온 듯하다.
이래서 을지로를 힙지로라고 하나보다. 안동장, 평래옥 등 주로 노포 식당만 갔는데, 앞으로는 힙한 곳 위주로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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