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주는 여자 & 찬실이는 복도 많지 | 배우 윤여정이라서 가능한
예상은 했지만, 정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다니 뉴스를 접하자마자 내 일처럼 기뻤다. 미나리를 한번 더 볼까 하다가, 리뷰를 재탕할 수 없기에 죽여주는 여자와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골랐다. 죽여주는 여자는 넷플릭스에 있었는데,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없어 유료로 보려고 했다. 그런데 수상 소식때문일까? 넷플릭스에 업로드가 됐다. 시즌(seezn)에서 유료로 보려고 하다가 넷플릭스에서 다 봤다.
배우 윤여정은 기존에 갖고 있는 이미지는 깨는 배우다. 자식만을 위해 헌신하는 드라마나 영화 속 엄마와 달리, 그녀가 연기하는 엄마는 자식의 인생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지 않는다. 얄미운 캐릭터인데 이상하게 끌렸고 그녀의 독특한 목소리조차 어느새 중독이 됐는지 다름을 연기하는 그녀를 좋아하게 됐다. 네 멋대로 해라에서 복수 엄마로, 돈의 맛에서 젊은 비서를 꼬시는 안주인으로, 여배우들에서 어린 배우들에게 절대 꿀리지 않는 배우로 나온다. 워낙 작품이 많아서 다 열거할 수 없지만, 윤여정이 연기하는 인물은 진부하지 않고 유니크하다.
죽여주는 여자는 2016년 영화로 이재용 감독 작품이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그녀말고 이 영화를 하겠다는 배우가 있었을까? 의문부터 들었다. 제목도 그러하지만, 소재가 넘 충격적이어서다. 영화는 허구라지만, 어느 정도는 현실에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영화를 만든다. 그러기에 종로 일대에서 노인들을 상대하는 일명 박카스 할머니는 존재하는 인물일 것이다.
남자는 문지방 넘을 힘만 있어도 어쩌고 한다더니,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있을거고, 그래서 박카스 할머니가 존재하는 이유일 거다. 그 할머니 중에 죽여주는 여자로 입소문이 자자한 이가 있는데, 그녀가 바로 소영(윤여정)이다. 67세에 성병에 걸려 병원 치료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그녀의 인기는 종로에서 압도적이다.
인기가 있으면 자연스레 안티도 있는 법. 그녀의 인기를 시샘하는 다른 박카스 할머니들로 인해 그녀는 종로가 아닌 장충단 공원으로 옮기고 거기서도 일을 계속 진행한다. "저랑 연애하실래요. 박카스 한명 딸까요? 잘해 드릴게."
죽여주는 여자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데, 정말 죽여주는 여자가 될지는 몰랐다. 혼자 죽을 힘도 없는 단골 고객의 부탁으로 명을 단축시켜준다. 그 일을 알게 된 또 다른 단골 고객은 치매 걸린 친구의 명도 재촉시켜 달라고 요청을 한다. 그리고 자신도 죽여달라고 아니 죽는 건 스스로 할테니 그저 옆에만 있어 달라고 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녀를 살인자로 만들어 버린다. 하긴 남들이 보면, 함께 호텔로 들어가서 다음날 아침에 혼자 나왔고, 남자가 그녀에게 백만원을 준 증거도 나왔다. 죄라면 혼자 떠나기 무섭다고 해서 옆에 있었준 거 뿐인데 세상은 그렇게 바라보지 않는다.
영화의 결론은 지금도 이해하기 힘들다. 그녀를 잡으러 형사가 왔기에, 편지를 보여주겠지 했다. 그리고 반지와 함께 돈을 시주한 조계사를 압수수색하겠구나 했다. 그런데 소영은 감옥에 갔고, 다른 이들의 죽음은 옆에서 지켜주면서 정작 자신은 홀로 쓸쓸하게 죽는다. 예상치 못한 결말이라서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때까지 멍하나 까만 화면만 바라봤다. 죽여주는 여자는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그저 재미로 보기에는 영화가 담고 있는 주제가 너무 무겁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2020년 영화로 김초희 감독 작품이다. 주인공인 찬실이에는 강말금 배우가 나오고, 윤여정 배우는 집주인 할머니로 등장한다. 영화 계춘할망처럼 도회적인 이미지가 아닌 순박한 할머니로 나온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하던데, 꿈을 잃어버린 찬실이가 주위의 도움으로 다시 꿈을 찾아가는 성장 드라마다.
감독이 술을 마시다가 죽게 되는 설정이 작위적인데, 더 놀라운 건 찬실이가 좋아했던 배우 장국영이 귀신이 되어 등장한다는 거다. 영화 장르를 보니, 드라마, 로맨스, 멜로 그리고 판타지다. 코미디도 포함해야 할 듯 싶지만, 로맨스나 멜로는 몰라도 판타지는 확실하다.
늘 함께 작품을 했던 감독이 죽었지만, 영화PD라는 직업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고 여겼을 거다. 그런데 영화사 대표로부터 퇴사 통보를 들었을때는 정말 감독을 따라서 요단강을 건너고 싶었을 거다. 하지만 찬실이는 가사도우미라는 임시직업으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더불어 영화대신 연애의 꿈을 꾸게 된다.
연애 상대는 연하남으로 자신처럼 임시로 프랑스 회화 강사를 하고 있는 독립영화감독이다. 감독과 PD이니 대화도 잘 통할테고, 처지도 비슷하니 영화의 꿈을 버리고 한남자의 여자가 되려고 한다. 하지만 연애는 혼자가 아니라 둘이 해야 한다. 찬실이 혼자 앞선 나간 연애의 끝은 좌절뿐이다. 이때 등장하는 또다른 남자라고 해야 할까나? 생뚱맞게 장국영이 나타난다.
장국영은 영화의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찬실이가 그녀에게 보내는 시그널이 아니었을까 싶다. 스스로가 만든 인물로 귀신인 듯 귀신 아닌 수호천사다. 한겨울에 아비정전 속 모습으로 등장한 장국영. 엄청 추웠을텐데 그가 등장할때마다 웃긴데 무지 짠했다.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힘든 현실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은 찬실이처럼, 나도 포기하려고 했던 꿈을 다시 꾸려고 한다. 죽었다 생각했던 꽃나무에 다시 꽃이 피듯, 우리의 꿈도 꽃이 필 날이 올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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