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 봉평메밀막국수 목동본점
여름이 오니 시원한 음식을 자주 찾게 되는데, 문뜩 묵사발이 먹고 싶어졌다. 고깃집에서 후식으로 쬐금 나오는 묵사발이 아니라, 온전한 한그릇을 만나고 싶어졌다. 폭풍검색을 시작하고 얼마 후, 고깃집이 아닌 제대로 된 식당을 발견했다. 강원도 원조 40년이라는 간판 문구가 맘에 든다. 목동에 있는 봉평메밀막국수다.
이름부터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사진까지 딱 봐도 메밀막국수 전문점이다. 원래 계획은 묵밥(묵사발)인데, 주변 테이블을 보니 죄다 막국수를 먹고 있다. 게다가 봉평산 100% 국산메밀로 막국수를 만든단다. 막국수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확~ 바꿀까? 주문하기 전 5초동안 왔다갔다 수만번을 반복했다. 이럴때는 혼밥이 싫다. 둘이 왔다면, 고민없이 다 주문했을테니깐.
막국수와 묵사발 사이를 왔다갔다 했는데, 메뉴판을 보니 메밀전에 감자만두, 가자미식혜, 곤드레나물솥밥 등등등 둘이 아니라 여럿이 와야 제대로 먹을 수 있을 듯 싶다. 차라리 메뉴판을 안봤더라면 주문하는데 좀 더 수월했을 거 같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처음 느낌 그대로 묵사발(9,000원)을 주문했다. 100% 국산 도토리로 만든 묵에서 딱 꽂혔기 때문이다.
테이블에는 겨자와 식초가 있는데, 아무래도 막국수 때문인 듯 싶다. 그 뒤로 보이는 작은 안내문구에서 맘에 드는 구절을 발견했다. 가능하면 가위로 자르기 않는다. 이유는 면이 빨리 삭기 때문이란다. 이유까지는 몰랐는데, 이런 깊은 뜻이 있다니 놀랍다.
밑반찬은 아삭한 열무김치와 새콤한 절인무가 나왔다. 밥은 반공기 정도 따로 나왔는데, 온기가 남아 있기에 뚜껑을 열어놓았다. 묵사발에는 식은밥이 더 어울리니깐.
김가루를 살짝 걷어내니 상추, 오이, 절인무 등 채소가 나왔고, 채소를 걷어내니 빨간맛 잘 익은 배추김치가 나왔다. 그나저나 묵은 아직이다.
육수 아래 숨어 있던 녀석(?)을 위로 올렸다. 젓가락이 아니라 숟가락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묵이 묵직하다. 어떤 도토리묵은 젓가락으로 들면 뚝뚝 끊어지는데, 이건 끊어져서가 아니라 무거워서 젓가락보다는 숟가락을 사용해야 한다. 제대로된 묵사발을 만나니, 막국수에 대한 아쉬움은 이순간 싹 사라졌다.
반으로 자르지 않고 온전한 모양 그대로 숟가락에 올려보려고 했으나, 자꾸만 스르륵 밑으로 떨어진다. 하는 수 없이 반으로 잘랐는데, 어찌나 탄성이 좋은지 쉽지가 않다. 묵사발을 먹는데 가위의 필요성을 느낀 건 처음인 듯 싶다. 묵 특유의 부드러움과 말랑함이 먼저 느껴지다가, 목넘김을 할때쯤 도토리 특유의 쌉쌀함이 훅 치고 들어온다. 그래~ 내가 찻던 그맛이다.
담백하니 슴슴한 육수에 김치와 채소 그리고 구수한 들기름 등 모든 재료를 섞어주니 빨간맛으로 더 맛깔난 비주얼이 됐다. 고기 먹을때 후식으로 먹었던 묵사발과는 차원이 다르다. 고기를 먹고 난 후라 그저 시원과 깔끔한 맛만 났는데, 이번에는 육수부터 채소 그리고 도토리묵까지 재료 하나하나 맛이 다 느껴진다. 후식으로 나올 녀석(?)이 절대 아닌데, 그동안 너무 몰라줬다.
기본찬으로 나온 열무김치와 절인무를 올려서 먹어도 되지만, 묵사발 자체에도 채소가 많아서 굳이 뭘 또 추가할 필요는 없을 거 같다. 어릴때는 콩국수처럼 묵사발을 왜 먹나 했는데, 아무래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이제는 자극적인 음식보다는 구수한 토속음식이 더 좋다.
묵밥을 제대로 먹기 위해서 밥은 필수다. 처음부터 밥을 넣어도 되지만, 밥이 뜨거운 상태라 식을때까지 기다렸다. 식은 밥이 확인한 후, 살포시 투하.
역시 음식에는 탄수화물이 들어가야 맛이 산다. 그저 밥이 더해졌을 뿐인데, 뭔가 더 풍성해지고 꽉 찬 느낌이다. 참, 도토리묵을 숟가락으로 한입 크기로 자르는데 생각보다 꽤 힘들었다는 건 안비밀이다.
묵사발을 쉽고 간단한 음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묵사발 한그릇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불 앞에서 묵이 눌러붙지 않도록 끊임없이 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정성을 알기에 남김없이 다 먹어야 한다. 양이 부족하다 싶으면 1차는 묵사발, 2차는 막국수였는데, 위대하지 못해서 1차에서 끝냈다. 그러므로 막국수 먹으러 다시 갈테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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