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물생심이 이리도 무서운지 몰랐다. 들었을때만해도 그저그랬는데, 눈으로 보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폭염이라 잠시 주춤했지만, 더는 참을 수 없다. 말복에 복달음하러 전주에 간 이유는 순전히 고로아저씨때문이다. 아주 단순하게 먹으러 떠났다.
성시경, 왜 거기서 나옵니까? 열정 많지만, 실수 연발하는 부하직원으로 박정아도 나옵니다. 전혀 몰랐기에, 보다가 깜놀. (ⓒ방송캡쳐)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던 7월의 어느날밤, 올레티비에서 고독한미식가 시즌7을 봤다. 5월쯤이었던가? 에피소드 중 한국편이 있다는 기사를 봤지만,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정말 뜬끔없이 생각이 났고, 혹시나 해서 검색을 해보니, 편당 천원이란다. 웬만해서는 안보는데, 잠이 오지 않으니 유료결제를 해버렸다. 전편을 다하고 싶었으나, 우리나라가 나오는 2편만 결제를 했다. 그중 첫번째는 전주에 있는 청국장 밥집 토방이다.
전주는 역에서 부터 우리의 전통미가 팍팍 느껴진다.
여행을 떠날때, 먹거리와 놀거리 비중을 5:5 또는 6:4로 하는데, 이번만은 10:0. 오로지 먹으러 떠났다. 원래는 중간에 전주향교를 넣으려고 했다가, 동선이 맞지 않아 포기했다. 이번 전주로의 여행은 먹고, 잠시 쉬다가 또 먹는 코스다. 기차여행을 할때면, 편의점에서 파는 감동란을 먹는데, 앞으로는 유부초밥으로 바꿔야겠다. 3,900원인데, 가격대비 꽤나 든든하다.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전주역에 도착해, 버스를 타고 청국장 비빔밥을 먹으로 토방으로 추울발~ 이날 하루종일 119버스만 탔다.
고독한 미식가에서 고로아저씨는 배가 고프면, 하라가 헷타를 외친다. 그때 영상은 줌인에서 줌아웃으로 딱딱딱 3번 바뀐다. 인물은 없지만, 비슷하게나마 따라해봤다. 대사는 배고프다가 아니라, "찾았다."
영업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고로아저씨의 사인. 무지막지하게 부럽숨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양반다리를 해야 한다. 생각보다 작은 규모라 살짝 놀랐다. 방송에 나온 곳이니, 그럴듯해 보일거라는 생각은 접어야 한다. 왜냐하면 고독한 미식가는 번지르르한 곳보다는, 이렇게 작고 소박하지만 맛은 절대 뒤지지 않은 곳을 컨셉으로 하기 때문이다. 방송에 나온 후로 찾는 이들이 많아졌나 보다. 메뉴판 부근에 이런 문구가 있다. "전국에서 많은 손님이 오시므로, 동일한 신발이 많습니다. 바뀔 우려가 있으므로 각별히 주의하세요."
1인은 합석을 해야 한다는데, 11시쯤에 도착을 한 바람에 혼자서 테이블을 독차지했다. 백반이 메인인 듯 싶은데, 보쌈과 닭도리탕이 있다. 백반은 청국장, 돼지불고기, 보쌈정식이 있고, 오늘의 백반이 또 따로 있다. 새우탕도 괜찮을 거 같은데, 처음 왔고 고로아저씨를 따라해야 하니 청국장 백반(6,000원)을 주문했다.
한 상이 육천원이라니, 참 혜자롭고 그저 감사할뿐이다.
삼색나물, 배추김치, 계란후라이, 오이무침, 청양고추가 들어간 어묵조림, 손바닥만한 상추와 알싸한 청양고추, 고추장과 참기름 그리고 따로 주문을 하고 싶은 제육볶음이 반찬으로 나왔다. 육회에 청포묵이 들어가는 고급스런 전주비빔밥에 비해서는, 소박해 보일 수 있지만 맛은 절대 뒤지지 않는다.
꼬릿꼬릿함이 좀 더 강했어도 괜찮았을 텐데, 살짝 연한 듯 싶지만 청국장 본연의 맛이다. 홍어처럼 냄새부터 확 치고 들어와야 하는데, 그러하지 않아서 살짝 아쉬웠다. 그럼에도 군내없이 잘 띄운 구수한 청국장이다.
바로 비비지 말고, 순수한 청국장 맛부터 먼저, 굳이 비빌 필요가 있을까 싶다. 이렇게 먹어도 훌륭하기 때문이다. 흰밥 위에 제육볶음도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 쌈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고민을 했다. 이렇게 밥 한공기를 순삭하고, 비빔은 따로 주문을 할까? 하지만 여기서 과식을 하면 안되므로 무지 아쉽지만 비빔으로 넘어갔다.
비빔밥은 별거 없다. 그저 모든 재료를 다 때려 넣으면 된다. 단, 오이무침과 어묵조림 그리고 제육볶음은 제외다. 냄새만으로도 매운맛이 확 났던 청양고추도 한개 넣었다. 고로아저씨는 고추장을 너무 많이 넣어, 짤텐데, 물 엄청 마셔야 할텐데 하면서 봤다. 고추장을 많이 넣으면, 각 재료의 맛이 안날 수 있으니, 참기름과 함께 적당히 조금만 넣었다. 역시나 고로아저씨는 가위로 음식을 아주 잘게 잘랐지만, 가위는 청양고추 자를때만 사용했다. 고로아저씨께, "아저씨 따라 여기에 왔지만, 청국장 비빔밥은 저처럼 먹어야 함다."
무심하게 쌈을 싸서 먹거나, 남겨둔 제육볶음 올려서 먹어도 된다. 여기서 고추장과 참기름은 그저 고명같은 존재다. 이 모든 걸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은 청국장이기 때문이다. 고명으로 인해 구수함이 사라지면 안된다. 김가루 역시 마찬가지다. 많이 넣지 말고 적당히 청국장 맛을 해치면 안된다.
아직 다 먹지도 않았는데, 숭늉이 벌써 나왔다. 무지 뜨거우니깐, 비빔밥을 먹는 동안 식히라는 주인장의 깊은 뜻인 거 같다. 잠시후에 만날 것을 기약하며, 밥 그릇에 미리 담아 놨다. 청국장 비빔밥을 다 끝낸 후, 포만감은 만땅(?)이 됐지만 여기서 끝낼 수는 없다. 텀블러가 있었다면, 옮겨 담았을 것이다. 더이상은 무리일 거 같았는데, 먹으니 또 들어간다. 구수하며 영롱한 숭늉은 역시 최고의 디저트다.
진짜, 정말 잘 먹었다. 카드 결제가 되지만, 현금으로 계산을 했다. 다 먹고 나오니, 12시다. 이때 전주는 36도였다. 밥을 먹었으면, 소화도 시킬겸 여행지를 찾아 떠나야 하는데, 못하겠다. 두번째 코스인 전일갑오는 오후 3시가 오픈이다. 그때까지 에어컨 맛집인 카페에서 쉬기로 했다. 예전에 봤던 아메리카 셰프를 다시 보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먹거리 많은 전주까지 가서, 청국장 비빔밥을 굳이 먹어야 했을까? 라고 물어본다면,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다시 전주에 간다면, 청국장 비빔밥을 먹고 올거야? 라고 물어본다면, 응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취향저격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때는 텀블러를 챙겨가서, 숭늉을 꼭 담아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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