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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반에 나온 자막, "이 영화에 등장 인물은 실존인물입니다" 변호인조차 허구라고 했는데, 박열은 허구가 아님 실화임을 밝히고 시작한다. 실존인물이 주인공이니 실화라고 하는게 당연한데, 체기가 가신 느낌이랄까? 소재는 암울하고 비극적이지만, 첫장면부터 유쾌, 상쾌, 통괘가 느껴졌다. 영화 박열은 처음 그 느낌처럼 유쾌하고, 상쾌하며 통쾌한 영화다. 그러나 그 속에는 아픈 우리 역사가 담겨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하더니, 박열은 그들의 플레이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플레이를 펼친다. 일본인들이 원하는 원수 역할을 당당히 받아 들이지만, 그로인해 그는 조선인들에게 영웅이 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본 법정에서 당당히 맞짱뜬 박열, 나는 꼼수다에서 김어준 총수가 늘 했던 그 말이 생각났다. "쫄지마 시바~"

 

박열과 그의 아내인 가네코 후미코. 영화 박열은 이 둘의 이야기이다. 1932년, 관동대지진 직후 폭동의 위기를 무마하기 위해 공공의 적을 만들고, 이상한 괴소문을 퍼뜨린다. 조선인이 일본인들을 죽이려고 우물에 독을 탔다. 천황과 일본내각에 향했던 민중의 분노는 조선인으로 옮겨가, 3일 만에 6천 명이 넘는 무고한 조선인이 희생됐다.

 

예상보다 심각해진 사태로 인해 미즈노(괴소문을 기획한 자)는 자신에게 책임을 물을까봐 꼼수를 생각해 낸다. 괴소문을 넘어서 황태자 암살이라는 엄청난 기획을 또 만들어낸다. 때마침 폭탄을 밀반입하려는 첩보가 입수되니, 순풍에 돛을 단 듯, 그 주동자로 박열(이제훈)을 체포하게 된다. 황태자 암살 기도라는 혐의를 씌워 대역죄로 재판에 회부한다. 

 

대놓고 짜고 치는 고스톱인 걸 알면서, 박열은 내가 했소라고 자백한다. 그리고 또 한사람만 가네코 후미코(최희서).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 하늘을 보고 짖는 / 달을 보고 짖는 / 보잘 것 없는 나는 / 개새끼로소이다. /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 뜨거운 것이 쏟아져 / 내가 목욕을 할 때 / 나도 그의 다리에다 /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이 시를 읽고 가네코는 박열에게 빠졌고, 그 둘은 동거를 시작했다. 동거 서약을 보면, 가네코가 어떤 인물인지 대략 짐작이 된다.

하나, 동지로서 동거한다.

두울, 운동 활동에서는 가네코 후미코가 여성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세엣, 한쪽의 사상이 타락해서 권력자와 손잡는 일이 생길 경우 즉시 공동생활을 그만둔다. 

어쩌면 박열보다 가네코가 더 강인한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텐데, 다른 동료들은 다 풀려났지만, 가네코만은 끝까지 박열과 함께 한다. 가네코는 재판관의 선고가 우리를 갈라놓는다 해도 결코 박열을 혼자 죽게 하지 않겠다고 그러니 함께 단두대에 세워달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대역죄라서 바로 사형인데, 죄도 없으면서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더구나 그녀는 일본인이다.

 

박열이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가네코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법정을 결혼식처럼 만들고, 일본어가 아닌 우리 말을 하고, 결코 쫄지 않고 당당하게 재판에 임했다. 어차피 결론은 정해져 있으니, 그들은 사형을 선고받게 된다. 슬퍼해야 하는데, 그들은 도리어 만세를 외친다. 

 

모든 일을 꾸미고 기획했지만, 결코 자신의 존재를 들어내지 않은 자. 숨어있는 자가 범인이라고 하더니, 미즈노가 범인이다. 그에게서 자꾸만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던 기춘대원군이 연상된다. 죄 없는 사람들은 간첩으로 만들어서, 정부에 비판적이면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고, 나와 가는 길이 다르다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없는 이 취급하고,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는데 여성의 사생활이라면서 7시간을 모른다고 하고, 순시리를 모른다고 하다가 결국 모른다고는 못하겠다고 말했던 그.

 

미즈노는 관동대지진으로 인한 폭동을 막기위해 괴소문을 만들고, 괴소문의 파장이 너무 큰 나머지 황태자 암살로 사건을 틀어버린다. 그리고 박열을 대역죄로 만든다. 하지만 폭탄 밀반입을 계획했지만, 만져본 적도 없는 폭탄으로 황태자 암살이라니, 진상 규명을 하자는 의견이 많아지자 제안을 한다. 진상조사 위원회를 만들자. 그러나 대충 노력한다는 걸 보여주고, 권한과 기간을 한정해서 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면 된다. 어쩜 이리도 닮아 있는지, 다시한번 느끼는 거지만, 반민특위만 제대로 됐다면...

 

미즈노같은 인물만 있으면 안되는 법. 후세 다쓰지는 박열의 변호인으로 시종일관 무죄를 주장했던 인물이다. 마지막 선고 공판을 앞두고 박열과 가네코의 옥중 결혼 수속을 해줬으며, 감옥에서 가네코가 죽자 불령사 동지들과 함께 유골을 수습해 박열의 고향 문경에 안장되도록 노력한 인물이다.  2004년 일본인으로서는 최초로 대한민국 건국훈장(애족장)을 수여받았다.

 

(ⓒ 박열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문경에 박열의사 기념관이 있다고 하니, 기회가 되면 꼭 가볼 생각이다. 최근에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영화 박열도 그렇다. 실존인물이라고 알려주지 않았다면, 로맨틱 코미디 시대극이구나 할 뻔했다. 60~70년이 지나고, 태블릿 PC로 시작된 일련의 사건들을 영화로 만든다면, 그때도 지금처럼 실존인물이며 절대 허구가 아니라 실화라고 자막으로 알려줘야 사람들이 믿을 수 있을 거 같다. 

 

나는 일본 동경에 있는 박열 동지에게 부탁하여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세 분 열사의 유골을 본국으로 모셔 오게 하고… 내가 친히 잡아 놓은 효창원 안에 있는 자리에 매장하기로 하였다. 제일 위에 안중근 의사의 유골을 봉안할 자리를 남기고, 그 다음에 세 분의 유골을 차례로 모시기로 하였다. (백범일지 중에서) 혹시나 하는 맘으로 경교장 사진 폴더를 살펴봤다. 윤봉길 의사 유골이라는 제목의 사진인데, 저 안에 박열 의사가 있지 않을까? 

 

【1926년 3월 25일, 박열과 가네코는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얼마 후 감형되었다. 박열이 사형을 받으리라 생각한 가네코는 은사(恩赦)를 거부하고 1926년 7월 우쓰노미야 형무소에서 목을 매 자결하여 스물세 살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자살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남아 있다). 그녀의 유해는 박열의 고향인 경상북도 문경에 묻혔고, 박열은 패전 후 석방되어 한국으로 돌아갔다. 

1949년 5월,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한국전쟁의 와중에 납북된 후 행적이 묘연했다. 훗날 확인된 바로는 1956년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에서 상임위원장으로 활동했다는 것뿐이었다. 이 단체는 그와 함께 납북된 조소앙, 안재홍, 엄항섭, 김약수 등 민족지사들이 남북한 정권에게 자주적 평화통일원칙을 촉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평양방송에 따르면 그는 1974년 1월 17일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젊은 날 일제와 치열하게 맞서 싸웠고 해방 후에는 조국통일을 염원했던 그는 끝내 얼어붙은 남북의 거리를 녹이지 못하고 치열한 투쟁의 기록만을 남긴 채 사라졌던 것이다.(ⓒ 다음백과)】

 

영화 밀정과 영화 박열은 공통점이 있다. 독립운동가는 다 같은 독립운동가로 봐야하지 않을까? 그들의 마지막이 어디가 됐든, 독립을 위해 목숨 받쳐 싸운 분들이니깐. 이준익 감독 인터뷰에서 "우리는 한반도라고 하면서 남한만의 역사, 즉 반토막만을 배운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북한으로 간 사람들에 대해서 지난 70년 동안 배우지 않았는데, 이제부터라도 관심있게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말로 가짜 뉴스라고 하는 유언비어의 피해를 본 박열이란 놀라운 조선 청년을 모르고 산다면 미안하지 않나."(ⓒ 뉴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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