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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정선미술관, 양천향교, 궁산그린공원을 보고 거리공원을 1km 걸었더니, 그분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이름만으로도 너무나 유명한 동의보감의 저자, 구암 허준선생이다. 위인전으로, 드라마로, 영화로 많이 접했지만, 그분을 기리는 박물관이 강서구 가양동에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왜 하필 강서구 가양동일까 했는데, 구암 허준선생의 출생지가 바로 여기란다. 동의보감 집필에 돌아가신 곳도 여기라고 하니 그 이유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박물관에 호를 따서 만든 공원까지 말이다

 

박물관으로 가기 위해서 지나쳐야 했던 곳, 허준테마거리다.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구암 허준선생에 대한 다양한 조형물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서울 강서구에서 태어난 조선 최고의 명의 구암 허준(1537~1615)은 우리 민족의 전통의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동의보감을 완성하여 세계의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동의보감은 실용성과 과학성을 바탕으로 당시까지 동양의학의 모든 지식을 집대성해 체계적으로 서술한 의서로, 중국과 일본까지 전해져 동아시아 의학 발달에 크게 이바지했다. 이러한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의성 허준과 동의보감을 만나는 길에서 발췌)

 

허준 이야기
구암 허준선생 동상
동의보감 집필이야기
동의보감 조형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동의보감. 길따라 걸으면서 내내 뿌듯함과 함께 긍지와 자부심이 느껴졌다. 

 

길을 건너면 바로 허준 박물관이 나온다. 그 옆에는 대한한의사협회가 있다.  

 

『옛날 뛰어난 의원은 사람의 마음을 잘 다스려서 미리 병이 나지 않도록 하였는데 지금의 의원은 사람의 병만 다스리고 사람의 마음은 다스릴 줄 모른다. 이것은 근본을 버리고 끝을 쫓으며 원천을 캐지 않고 지류만 찾는 것이니 병 낫기를 구하는 것이 어리석지 않은가. 구암 허준선생 동의보감 중에서』

옳고 또 옳은 말씀이다. 사람의 마음을 다스릴 줄 모르고 그저 눈 앞에 보이는 이익만 탐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말씀인거 같다.

 

겸재정선미술과, 허준박물관을 다 관람한다면 입장료 2,000원이 내야한다. 그런데 통합관람권으로 본다면 700원이 저렴한 1,300원이란다. 이런 꿀팁을 허준박물관에서 가셔 알았다니, 겸재정선미술관도 통합관람권을 한다는 내용을 공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술관부터 본 내 잘못이 크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미술관에서 이런 공지를 하지 않고 있다는건 문제라고 생각한다.

 

티켓과 리플렛을 들고 본격적인 박물관 투어를 시작했다.

 

1층은 스탬프를 들고 있는 어의와 의녀가 있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겸재정선미술관에서 봤던 옛 양천현아가 전시되어 있다. 구암 허준선생에 대한 모든 것은 2층으로 올라가야 나온다.

 

2층으로 올라가면서 위를 보니, 독특한 모양의 조형물이 나온다. 아마 약통이 아닐까 하는데, 잘 모르겠다.

 

2층에서 만난 구암 허준선생의 초상화다.

『조선시대 선조·광해군 때의 명의.
허준은 서자로 태어나 중인이나 서얼의 업으로 되어 있던 의학의 길을 택했다. 허준의 총명과 열성은 이미 20대에 전국적으로 유명해졌고, 30세에 어의로 선임되었다. 동양 최대의 의서라는 〈동의보감)의 찬집에 노력하여 1610년(광해군 2)에 이를 펴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이 의주까지 피신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때, 허준은 선조의 건강을 돌보았다. 이때의 공로로 허준은 뒷날 공신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정1품까지 승급했다. 광해군의 어의로 있다가 1615년 죽었다.』(출처 - 다음백과사전

 

전시관 내부는 사진촬영이 안된다. 그래서 입구만 찍은 후, 눈으로만 구암 허준선생을 바라봤다. 광해군의 두창(천연두) 치료, 선조 진료 등 구암 허준선생의 이야기와 함께 동의보감 그리고 약초약재, 의약기를 볼 수 있다. 허준박물관 사이버전시관

 

내의원과 한의원은 드라마에서 봤던 내의원이 미니어처로 재현되어 있다. 드라마 허준에서 봤던 바로 그 곳으로 어디선가 홍춘이, 예진아씨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거 같았다.

 

나의 체질을 알아 볼 수 있는 곳과 약첩싸기를 경험할 수 있는 곳도 있다. 그런데 체질을 확인하던 중 자꾸만 초기화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다하지 못하고 포기했다.

 

약갈기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약연, 약절구, 유발, 약맷돌 등 다양한 약갈기 도구들을 볼 수 있다.

 

3층은 옥상공원, 약초원 그리고 구암허준공원으로 나갈 수 있는 곳으로 올라가면서 바라본 허준박물관의 모습이다.

 

옥상공원으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도 있고,

 

약초원으로 가기 위해서 걷고 있는데, 여기에도 약초가 있다. 너무나 다양한 약초들이 있어 하나하나 살펴봤는데, 봐도 잘 모르겠다.

 

쉴 수 있는 곳도 있고,

 

약초원으로 들어간다.

 

진짜 많은 약초가 있는데, 역시나 모르겠다. 다 몸에 좋겠지라고 생각하고 구경만 했다.

 

구암근린공원(구암허준공원)으로 가기위해서는 저 문을 지나야 하는데, 자동문이다. 손으로 열어야 하는줄 알고 댔다가, 덜컹 열리는 바람에 손가락 다칠뻔 했다. 급하게 문에 손대지 말고 잠시만 기다리면 열린다.

 

구암근린공원 내 그냥 정자인줄 알았는데, 소요정이다.

 

소요정을 지나 공원으로 들어간다.

 

아이들과 함께 놀 수 있는 놀이터가 있다. 철없는 어른이라 놀고 싶었지만,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라고 누군가 말할거 같아 그만뒀다.

 

구암근린공원(구암허준공원)은 참 특이한 바위가 많이 있다. 요건 무슨 바위인지 모르겠다. 그낭 엄청난 바위다.

 

공원에는 구암 허준선생의 동상이 있는데, 박물관 입구에서 본 그것과 같다.

 

동상에서 바라본 공원의 모습. 그런데 호수가 있고, 안에 또다른 바위가 있다.

 

광주바위.

『육지로 변한 가양동 한강가 탑산 옆 강물 속에 있던 높이 12미터의 바위다. 옛날 큰 홍수가 났을때 경기도 광주에서 떠내려 왔다고 해서 광주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경기도 광주에서 큰 홍수가 났을때 커다란 바위가 물에 떠내려 왔다고 한다. 비가 그친 후 광주의 명물인 바위가 없어진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란 광주현감은 바위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바위가 양천고을까지 떠내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광주현감은 바위를 제자리로 옮겨 갈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대신 세금을 내라고 요구했다. 양천현감은 거절하지 못하고 바위에서 자라는 싸리나무로 빗자루를 만들어 매년 세자루씩 바치게 되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억울한 생각이 들어 광주현감에게 바위를 도로 가져가라고 하고는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한다.

바위를 가져갈 수 없었던 광주현감은 더 이상 세금을 내라는 요구를 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본래 순박하고 인정 넘치는 양천고을 사람들의 착한 심성과 멋진 광주바위의 풍광을 잘 나타내는 전설이다.』

 

또 다른 바위, 역시 이름은 모르겠다.

 

공원주변에는 허가바위가 있는데, 공암바위로도 불린다고 한다.

 

『허가바위는 양천 허시의 시조인 허선문의 출생한 곳이라는 설화가 전하는 바위동굴이다. 이 바위에 동굴이 뚫려 있어 공암이라고도 불린다. 동굴의 크기는 가로 6미터, 세로 2미터, 길이 5미터 정도로 어른 10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는 규모다.

허선문은 고려태조가 견훤을 징벌하러 가면서 이 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도강의 편의와 군량미 제공 등의 공을 세워 ‘공암촌주(孔巖村主)’라는 벼슬을 받았는데 그는 나이가 90이 지났는데도 고려태조에 충성을 했으며, 그 자손이 공암허씨로 공암은 양천(陽川)이므로 공암허씨는 양천허씨를 말한다고 『경기읍지』에 기록이 있다.(출처 - 다음백과사전)』

 

허준박물관에 구암근린공원 그리고 허가바위와 광주바위까지 참 볼거리가 많은 이웃동네 나들이였다. 아이와 함께 우리나라에 이렇게나 대단하고 멋진 분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현장학습장으로 최고라 생각한다. 물론 철없는 어른에게도 멋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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