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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책 보기지하철에서 책 읽기 좋아요. (캐논S50, 2005년)

 

지하철을 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빈자리를 찾는 것이다. 한 두 정거장을 간다면, 서서 가도 되지만 한 시간 정도 가야 한다면 앞뒤 가리지 않고 빈자리 사수에 나선다. 이 날은 운 좋게 타자마자 빈자리가 있었다. '아싸~ 오늘은 왠지 좋은 일이 생길거 같은데'하면서 자리에 살포시 앉는다. 그리고 바로 하는 일은 아이폰으로 게임을 하는 것이다. 퍼즐게임, 숨은 그림 찾기 게임, 사천성 등 보유하고 있는 게임 앱을 다 터치하면서 하트가 다 사라질 때까지 게임을 한다. 더 이상 게임을 할 수 없으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메일, 블로그 등 검색질에 빠진다. 그래도 시간도 남으면 뉴스를 보거나 연예인 가십 기사를 찾아 본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최근 나의 모습이다.

 

나만 이런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는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이젠 이런 모습이 낯설지 않을 만큼 모든 이들이 다 같은 공간 속에 있지만 자기만의 시간 속으로 빠져든다.

 

이랬던 내가, 다른 이들과 같은 행동을 했던 내가, 어느 오후 지하철 안에서 아이폰 대신 책을 꺼내 들었다. 당연히 자신과 놀아 줄거라 생각한 아이폰은 슬퍼했지만, 아침부터 읽기 시작한 책에 정신이 빠진 나머지 늘 영순위였던 그 녀석을 두고 책을 선택했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 책의 세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런데 자꾸만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시선이 느껴졌다. 11시 방향에서 이름 모를 낯선 시선을 느껴, 살짝 고개를 드니 어느 어르신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면 날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첨에는 내가 아니라고 생각해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그 분은 날 보고 있는 거였고,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는 분인데 하면서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 시선은 한동안 계속 되었고, 어르신이 내리고서야 느낌은 사리졌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다시 지하철을 탔다. 이번에는 책이 아닌 아이폰을 들고 한 시간을 게임에, 문자에, sns까지 원 없이 배터리가 20%가 될 때까지 완전 집중 모드에 빠졌다. 아까와 같은 지하철이었지만, 사람들도 다르고 시간도 늦은 저녁이라 이번은 낯선 시선의 느낌이 전혀 없었다. 물론 이름모를 그 어르신도 없었다.

 

집에 도착해, 잠들 기 전 아까의 낯선 시선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봤다. 지금부터는 나만의 착각일 수 있는 나 혼자만의 생각이다.

 

'저 학생(학생이라고 생각해주시겠지^^), 요즘 드물게 지하철에서 책을 보네, 참 기특하구나. 내가 쳐다보는걸 알았나? 고개를 드네. 이런 내가 피해를 줬구나. 난 그저 학생이 기특해서 쳐다 본거야. 다들 휴대폰 보느라 책 보는 사람을 오랜만에 구경하는 거거든'

 

'어르신, 죄송합니다. 사실 저도 오랜만에 책을 들고 나왔어요. 실은 이 무거운 책을 들고 나올 생각이 없었는데, 제 아이폰 배터리의 수명이 그리 길지 못하거든요. 충전기도 안 갖고 나와, 2시간을 지하철에서 아이폰질(?)을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 무거운 책을 들고 나왔어요. 어르신께서 지금 저의 모습을 보셔서 그렇지, 이따 저녁에 저를 다시 보게 되면 실망할 거에요. 저 역시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거든요.

 

 

그 분에게 차마 사실과 진실의 차이를 설명해드릴 수 없었다. 나만의 착각이 착각으로 끝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도저히 그분에게 진실을 알려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 역시 책보는 나의 모습이 살짝 대견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짜 종이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찾는 게 어려워지긴 했나 부다. 책을 보고 있던 나와, 스마트폰을 하고 있던 나를 비교해보면, 이젠 책을 보는 내가 남들 눈에 띄게 보이니 말이다.

 

참 허무맹랑한 에피소드이지만, 사실과 진실의 차이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사실 너머에 있는 진실은 꼭 알아야 하기에, 묻어둬서는 안되기에, 밝혀진 사실만으로 끝내면 안되기에, 아무리 덮어두어도 언젠가는 그 진실이 밝혀질 거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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