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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에세이출처 - 아이폰 홈페이지

 

S#1.선술집, 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 벽면 여기저기 낙서가 잔뜩 있는 그런 오래되었지만, 정겨움이 있는 술집이다. 나와 너 그리고 그가 허접한 노가리 안주에 쓴소주를 마시고 있다. 그때 노래(Sting의Shape Of My Heart)가 들려온다.

 

나: 이거 무슨 노래지?

너: 나 이거 알아. 이거 그거 요즘 라디오에서 무지 많이 나오던데, 아 나 들었는데.

나: 너두 배철수 듣냐? 나도 어제 들었는데, 이거 무슨 영화 주제곡이라고 하던데.

너: 나두 알어, 킬러랑 여자아이가 나오는 영화 주제곡이라고 하던데.

나: 아 맞다. 레옹

너: 맞아 맞아. 근데 이거 누가 부르지, 아 진짜 알았는데, 왜케 생각이 안나냐?

나: 잠만, 잠만, 나 기억날거 같아. 이 노래 부르는 가수가 시, 스, 사, 암튼 S로 시작했는데.

(나와 너는 서로 알아내고 싶어 안달이 난 거처럼, 머리를 쥐어짜면 생각하고 있다.)

나: (입으로 계속 읊조리다가) 아 맞다. 이거 스팅이다.

너: 그래 스팅. 스팅이 맞다. 근데 제목은 뭐였더라.

나: (또 다시 생각을 하려고 하지만, 무리다) 우리 집에 CD있으니깐, 확인하고 담에 만날 때 알려줄게.

그: (이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다가,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둘 다 애쓴다 애써.

 

 

S#2. 이자카야, 밤.

2014년 가을밤. 오래된 선술집이었던 곳은 사라지고 벽면은 일본 전통 인형과 액세서리로 장식되어 있고, 한 켠에는 값나가는 사케들이 즐비해 있다. 정겨움보다는 간결하고 깨끗한 인테리어로 탈바꿈했다. 그때 노래(Sting의Shape Of My Heart)가 들려온다.

 

나: 이거 무슨 노래지?

너: 나 이거 알아. 요즘 가을노래라고 해서 유투브에서 자주 봤는데.

나: 나두 유투브에서 봤는데. 알았는데. 나이를 먹었나. 왜케 생각이 안 나지.

너: 그러게 어제도 들었던 거 같은데. 좀만 있어봐 생각날 거 같으니깐.

나: 뭔 생각을 그리해. (아이폰에서 가을노래 베스트를 검색한다.)

너: 찾았냐?

나: (터치 몇 번을 하다가) 가수는 스팅이고, 제목은 Shape Of My Heart, 레옹 영화주제곡이네.

너: 맞다. 맞어. 스팅 노래는 가을에 들어야 제 맛이지.

나: 노래 좋다.

그: (이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다가) 스마트폰이 없으면, 대화가 안 되는구나.

 

 

뭐가 좋은 걸까요? 예전에는 어떻게 해서든 기억을 되살려서 답을 찾았는데, 이제는 노력할 생각도 안하고 아이폰 비밀번호부터 누르게 되네요. 언제부터인가 집, 부모님, 친구의 번호가 생각이 안 나더니, 가끔 제 번호도 생각이 안 날 때가 있더군요. 몰랐던 정보를 바로 바로 알게 돼서 좋아졌지만, 그만큼 뇌 용량은 작아지고 있는 건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원래부터 기억력이 안 좋아서 메모하는 습관을 가졌는데, 그 습관으로 인해 기억력이 더 좋아지더군요. 듣고, 쓰고, 읽는 과정을 반복해서 그런거 같은데, 이젠 듣지도 않고, 쓰지도 않고, 그냥 습관적으로 검색을 하게 되네요. 기억을 찾는 시간보다 검색을 하면 더 빨리 찾게 되었고, 굳이 메모하지 않아도 다음, 구글, 네이버라는 든든한 친구(?)가 있으니깐요. 저의 기억보다 그들의 검색결과가 더 정확하더군요.

 

노래방도 마찬가지인 거 거 같아요. 예전에 불렀던 노래들은 지금도 가사가 기억나는데, 노래방에서 불렀던 노래들은 후렴부분만 생각이 나고 그냥 허밍으로 때우거나, 담에 노래방 가서 제대로 불러야지 라고 생각을 하게 되네요. 어느새 이렇게 변해버렸네요.

 

간편함과 가벼움 때문에 전자 책을 선호했습니다. 출퇴근길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잠들기 전 불 꺼진 방에서 그야말로 제격이었죠. 그러다 최근 종이 책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손으로 직접 한 장 한 장 넘기는 맛이 좋고, 종이 내음도 좋고요. 그대신 오래된 책은 멀리하고 있습니다. 괴물(김용의 영웅문, 녹정기 등 무협지 속에 괴물(?)이 살고있다!!)이 나올까 봐서요. MP3대신 가끔 LP로 음악을 듣기도 하고, 보이는 라디오보다 귀로 듣는 라디오를 더 선호하고,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지만 온라인 쇼핑보다는 직접 눈으로 보고 구입을 하는 오프라인 쇼핑을 여전히 좋아합니다.

 

그런데 기억의 조각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스마트폰을 멀리해야 하지만, 이것만은 제발 이것만은 포기를 못하겠네요. 빠르고 정확함을 찾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인가 봅니다. 처음부터 없다면 모를까? 이 좋은 녀석을 그냥 두면 너무 아까우니깐요. 그대신 적절한 조절이 필요하겠죠. 중독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말이죠. 예전에는 쓸데없지만 아는 게 많아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제는 빠른 손가락만 있으면 되니 살짝 허무해지기도 하네요. 하나가 좋아지면 하나가 나빠진다고 하더니, 스마트폰으로 인해 기억의 조각들이 조각모음을 못하게 되어 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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