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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가을이면 무조건 만나는 꽃이 있다. 붉은 카펫이 깔아 놓은 듯, 볼때마다 비현실적인 느낌을 들게 하는 석산이자 상사화이자 꽃무릇이다. 재작년에는 성북동에 있는 길상사에서, 작년에는 영광 불갑사에서, 그러나 올해는 꽃무릇 군락지로 신입생이라 할 수 있는 분당 중앙공원으로 향했다.

 

길상사는 4계절이 다 좋은 곳이지만, 개인적으로 가을 길상사를 가장 좋아한다. 이유는 서울에서 꽃무릇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3~4년 전부터 꾸준히 다녔는데, 올해는 길상사 꽃무릇이 군락보다는 듬성듬성 꽃이 폈다고 한다. 그럼에도 워낙 알려진 곳이라 평일에도 출사를 나온 분들이 많단다. 그럼 작년에 너무 일찍 가는 바람에 제대로 못본 영광 불갑사에 다시 도전을 할까 하던 찰나, 분당 중앙공원에 꽃무릇 군락지가 생겼고, 축제까지 한다는 기사가 떴다. 보자마자, 올해는 여기구나 했다. 

 

꽃무릇 26만 3000본이 꽃대를 올려 붉은 물결로 장관을 이루며, 500여미터 산책로를 따라 군락지가 6400㎡ 규모라고 하니 무조건 무조건이다. 굳이 먼 영광까지 아니 가도 되며, 불안한 맘으로 길상사에 안 가도 된다. 분당선(또는 신분당선) 정자역에 내려 다시 버스를 탔다. 꽃무릇 군락지는 중앙공원 황새울광장부터 보도2교까지 있다고 하니, 분당구청·중앙공원 후문 정류장에 내렸다. 중앙공원은 작은 공원이 아닌지라, 정확한 위치를 알고 가야 발이 고생하지 않는다. 

 

기사에서는 붉은 물결로 장관을 이룬다고 하더니, 과대포장이 아니라 과대기사 아니 과대보도자료였나 보다. 군락지를 넓게 만들긴 했는데, 붉은 물결은 글쎄다. 신입생(?)이라 수줍어서 그런가? 그런데 꽃무릇은 번식력이 대단하다고 한다. 올해는 여백의 미가 너무너무 심하지만, 한해 두해 지날수록 빽빽이 채워지지 않을까 싶다. 

 

아직은 여백의 미가 심한 곳이 더 많지만, 규모가 넓어서 산책로를 걷다보면 요렇게 많이 피어 있는 꽃무릇을 만날 수 있다. 

 

사진을 아닐 찍을 수 없는 절경.

매년 가을마다 꽃무릇을 만나고 있지만, 볼때마다 새롭고 신기할 따름이다. 만질 수도 있고, 볼 수 있고, 이렇게 눈으로 또는 카메라로 담을 수 있는데, 상상의 동물이라는 해태처럼 꽃무릇은 현실에 살고는 있지만 마치 상상의 꽃같다. 

 

꽃무릇은 그늘과 햇살이 공존할때가 가장 예쁘다. 이래야 더 상상의 꽃처럼 느껴진다. 연극무대에서 주인공이 된 듯, 꽃무릇은 그렇게 가을햇살을 잘 이용할 줄 아는 거 같다.

 

쭈그리고 앉는 거 참 싫어하지만, 꽃무릇 앞에서는 어김없다. 눈높이를 맞춰야, 더 예쁘게 보이기 때문이다.

 

사막에 핀 듯한 꽃무릇 한송이
볼때마다 늘 너에게 현혹된다.

꽃무릇은 꽃이 져야 잎이 나온다. 즉, 꽃와 잎은 절대 만날 수가 없다. 애절한 사랑, 이룰 수 없는 사랑, 슬픈 추억, 참 사랑은 꽃무릇의 꽃말이다. 그래서 예쁘기는 한데, 슬픔이 함께 느껴지는 꽃이다. 

 

나름 그림자를 이용한 인증샷
마치 기도를 하고 있는 거 같은...
분명 아는 꽃인데, 모르는 꽃인 듯 볼때마다 여전히 새롭고 적응이 안된다.

개인적으로 꽃무릇은 개인전보다는 단체전이다. 독특한 꽃무릇의 생김새를 자세히 담으려면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데, 괜히 슬퍼진다. 하지만 멀리서 하나가 아닌 여럿을 담으면, 그제야 아름다움이 보인다. 채워지지 않은 여백은 여전히 아쉽지만, 슬픔은 없다. 

 

지금은 꽃무릇과 함께 걸어가고 있는 중.

올해보다 내년이 더 기대된다. 멀리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내년에는 멋들어진 붉은 카펫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다 같은 꽃무릇인데 자세히 보면 생김새는 다 다르다. 마치 인간의 얼굴처럼... 

 

몽환적 꽃무릇,jpg

높다란 나무가 주는 그늘,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그 아래 수줍게 핀 붉은 2018 꽃무릇. 일년 후,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지, 어디 내놔도 손색없을만큼 군락지로 우뚝 오를 수 있을지, 직접 확인하러 갈 생각이다. 아직은 영광 불갑사에는 못미치지만, 길상사에 비해 군락지가 넓은 건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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