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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if, 만약은 없다. 그래서 안타깝고 안타깝다. 좋은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27년이 아니라 만수무강을 했을 것이다.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의 누나가 아닌, 여류시인 허초희 그녀를 만나러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으로 향했다.

강원도 한나절 여행코스는 서울역 - 강릉역 - 토담순부두 - 허균허난설현 기념공원 - 강문해변 - 해파랑 물회 - 강릉역 - 서울역 

 

설현이 아니라 설헌이다. 허난설헌으로 많이 알고 있지만, 그녀의 이름은 허초희다. 아버지는 초당 허엽, 첫째 오빠는 허성, 둘째 오빠는 허봉 그리고 남동생은 허균이다. 이들을 가리켜, 허씨 5문장가라고 한다. 강릉 바닷가 사천과 이어진 교롱산 정기를 타고난 허균과 난초향과 눈처럼 깨끗한 성품을 지난 허초희는 문향 강릉이 낳은 오누이 문인이다. 남존여비 사상이 극심했던 조선시대가 아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허난설헌을 생각하면 언제나 이 생각뿐이다.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은 그들의 생가와 기념관 그리고 전통차 체험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강릉이 여성친과 도시라고 하더니, 도로명 주소가 허균로일 줄 알았는데, 아니다. 기념공원의 주소는 강원 강릉시 난설헌로 193번길이다. 학교에서는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을 쓴 허균은 중요하게, 허난설헌은 그의 누나이자 시인으로만 다뤘던 거 같다. 이와 비슷하게 신사임당은 율곡 이이의 어머니.

지금의 5만원의 주인공이 됐지만, 신사임당도 허난설헌도 황진이도 남존여비 사상에 가장 큰 피해자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정말 21세기에 태어났다면 최고의 화가가, 최고의 시인이 그리고 아이돌 빰치는 최고의 가수이자 배우가 되지 않았을까?

 

허균과 허난설헌 기념관이지만, 허씨 5문장가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다. 이곳이 초당 마을이 된 것은 아마도 아버지인 초당(호) 허엽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는 서경덕의 제자였다. 허균은 황진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녀와 관련된 몇 가지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아마도 아버지나 아버지의 친구들로부터 들었을 것이다. 

 

남존여비 사상이 강했던 조선시대에, 남자와 여자가 한 방에서 학문을... 있을 수 없었을 거다. 하지만 허씨 집안은 허초희와 허균에게 똑같이 교육을 시켰다. 스승은 서얼(양반의 자손 중에서 첩에게서 태어난 자식) 출신인 손곡 이달이다. 허균에 이어 허초희까지 제자로 받아 들일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스승이 서자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허균은 스승에게서 신분제애 대한 비판적 인식을 배워 홍길동전을, 허초희는 방랑생활을 즐겨했던 스승의 자유로움을 배워 그녀만의 아름답고도 멋진 시를 쓰게 된 것은 아닐까? 

 

허초희의 시비
허균의 시비

그녀의 재주를 하늘이 질투해, 일찍 하늘로 초대했던 것일까? 27세는 빨라도 너무 빠르다. 그녀보다 먼저 어린 자식들이 죽고, 친정아버지와 오라버니는 객사를 하고, 못나고 찌질한 남편은 방탕한 생활만 하니, 하늘의 질투인게 틀림이 없는 거 같다. 삶의 의욕을 읽어버린 그녀는 삼한(三恨), 세 가지 한탄을 노래했다고 한다.

첫째는 조선에서 태어난 것이요. 둘째는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요. 셋째는 남편과 금술이 좋지 못한 것이라 한다. 그녀 스스로도 남존여비 사상이 심했던 조선시대가 싫었던 것이다. 시대를 바꿀 수 없다면 남성으로 태어나야 하는데 그것도 그러하지 못했으니, 어쩌면 요절은 당연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허초희의 평가는 그녀가 죽은 후에, 동생인 허균이 그녀의 작품을 중국에 알렸고, 이게 대박이 났다고 한다. 그녀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거 같다. 허균의 누나가 아니라, 형으로 태어났다면, 우리는 홍길동전뿐만 아니라 더 많은 자산을 유산으로 받았을 것이다. 

 

기념관을 나오니, 저절로 시상이 떠오를 만큼 겁나 멋진 풍경이다. 구름 한점 없는 파란 하늘아래, 높디높은 나무는 드넓은 그늘과 함께 싱그러움을 준다. 그녀의 생가로 가는 길에 만난 따가운 햇살마저 반가웠다.

 

허난설헌 동상
허씨 5문장의 시비(시를 새긴 비석)
허균 허난설헌 생가
사랑방
교산 허균의 영정
안방
허난설헌 허초희의 영정

여름의 끝자락에 만난, 능소화와 배롱나무꽃은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아는지 안녕을 준비하고 있다. 그들이 동문수학하면서 뛰놀던 때에는 어떤 꽃들이 있었을까? 계절이 바뀔때마다 피는 꽃을 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를 지었을 거 같다. 

 

전통차 체험관으로 가는 길조차 멋지다.

천원이면 전통차 체험을 할 수 있지만,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좁고 답답해 보이는 방 안으로 들어가기 싫었다.

 

바람 좋고, 햇살 좋고, 하늘 좋고, 나무 좋고, 모든게 다 좋다. 잠시인 줄 알았는데, 한동안 멍때리며 앉아 있었다. 그저 가만히 가만히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봤다. 하늘하늘 바람에 따라 나무와 풀냄새가 스쳐 지나간다. 급 떠난 강릉이지만, 정말 잘 온 거 같다. 이번에는 허초희를 만났으니, 다음에는 신인선을 만나러 오죽헌으로 가야겠다.

이번 강릉여행은 BMW이다. B는 강릉역에서 여기까지 타고 온 버스, M은 원래는 지하철이지만 이번에는 KTX, 남은 하나 W는 지극히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으로 걷기다. 걸어서 세계속으로가 아니라, 걸어서 강문해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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