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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쯤 된 듯 싶다. 그때 전주 한옥마을은 고전미가 살아있는 한적한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겁나 유명해졌다. 그때는 조선시대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은 너무 먹거리에 편중되어 한옥마을이지만, 한옥마을스럽지 않게 변해 버린거 같다. 볼거리와 먹거리는 10년전 보다 더 많고 다양해졌지만, 느낌적인 느낌은 그때가 더 좋았던 거 같다. 한옥마을만 보기 아쉬워서, 한꺼번에 다 둘러봤다. 오목대를 시작으로 한옥마을, 경기전, 전동성당, 풍남문 그리고 풍패지관까지 걸어서~ 



자만 벽화마을에서 다리를 건너면 바로 오목대가 나온다. 날은 좋지 않았지만, 그나마 눈이 그쳐 다행이다. 소복하게 눈이 쌓인 풍경을 많이 담고 싶었는데, 별로 없어서 아쉬웠다.



오목대는 고려 우왕 6년 운봉 황산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른 이성계가 개선길에 잠시 머물렸던 곳이라고 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한제국 광무 4년에 비석을 건립했는데, 태조가 잠시 머물렀던 곳이라는 뜻의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蹕遺址)라는 비문은 고종황제가 직접 끈 친필을 새긴 것이라고 한다. 



승전 축하 연회를 여기서 했겠지.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고 그랬을 거 같다. 이 곳은 오동나무가 많아서 오목대(梧木臺)라고 명명했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느낌적인 느낌으로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蹕遺址)라는 비문은 바로 저기에 있을 않을까 싶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봐야 하는데, 걷기 귀찮아서리..




오목대에서 바라본 한옥마을 풍경. 그나마 전동성당은 잘 보이는데, 맞은편에 있는 경기전은 안 보인다.



오목대에서 한옥마을로 가기위해서는 계단을 이용하면 된다. 눈이 내린 후라 계단이 미끄러워서, 한계단씩 천천히 내려갔다. 



와~ 한옥마을이당.



한옥마을답게 한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한복매장도 많다. 입고 싶다는 생각, 솔직히 안했던 건 아니다. 그런데 갈아입기 귀찮아서...




유명하다는 집 앞에는 언제나 인산인해. 방송에 나왔던 곳들을 보면서 먹어보고 싶었으나,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포기했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볼 수 있는 경기전. 무료라면 들어갔을텐데, 입장료가 있는 관계로 패스. 사실 10년전 전주 한옥마을 여행때 자세히 봤기에, 이번에는 문앞에서 인증샷만 남겼다. 



다리 아픔과 추위 그리고 배고픔이 없었더라면 한번 더 봤을텐데, 자만벽화마을에서 한 개고생으로 인해 경기전의 모습은 여기까지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핫플레이스인 전동성당. 경기전 바로 맞으편에 있는 줄 몰랐다. 10년 전 여행때 봤을텐데, 영화 약속도 봤으니 분명 알았을텐데, 그때는 왜 모른척 했을까? 아마도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멀리했던 거 같다. 종교가 다르다고 멀리할 필요는 없는데, 고지식했던 거 같다. 



10년 전에는 이렇게 유명하지 않았던 거 같은데, 그때 찍었다면 사람없는 성당의 모습을 제대로 담을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인생사진을 남기려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한산해지면 찍을까 하다가 새벽에 오지 않는한 절대 그럴 수 없을 거 같아서 포기했다.



성당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기에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성당 입구에는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는데, 뒤쪽으로 오니 사람이 없다.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사진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곳이 어떤 곳인지 둘러보는 것도 좋을텐데...



전동성당은 호남지역 최초로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로 장방형의 평면에 외부는 벽돌로 쌓았으며 중앙과 좌우에 바진탄 양식의 종탑이 있다. 회색과 붉은색 벽돌을 이용해 지은 건물로 겉모습은 서울 명동성당과 비슷하다고 하다. 조선시대 천주교도의 순교터에 세워진 성당이라고 한다. 고종 28년 프랑스 보두네(Baudenet) 신부가 부지를 매입하고 1908년 성당 건립에 착수해 1914년(일제시대)에 완공했다고 한다.



전동성당을 지나 건널목을 건너면 만나게 되는 곳, 풍남문이다.



풍남문은 조선시대 전라감영의 소재지였던 전주를 둘러싼 성곽의 남쪽 출입문이라고 한다. 전주성에는 동서남북에 각각 출입문이 있었으나, 지금은 이 문만 남아 있다. 고려시대에 처음 세웠으나, 정유재란때 화재로 불타버렸고, 영조 44년에 전라감사 홍락인이 다시 세우면서 풍남문이라고 했다고 한다. 풍남이란 풍패의 남쪽이란 뜻이며, 풍패란 중국 한나라 고조가 태어난 곳으로 조선왕조의 발원지인 전주를 그 곳에 비유한 것이라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뒤쪽까지 와봤지만, 결국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풍납문 근처에 있는 작은 호떡가게. 씨앗호떡보다 칼칼한 어묵국물이 더 좋았던 곳이다. 주인장에게 영화호텔에 가려면 몇번 버스를 타야 하냐고 물으니, 걸어가도 된단다. 옆에 있는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 쭈욱 직진을 하면 객사길이 나오는데, 그 길로 계속 가다보면 나온단다. 걷기보다는 타고 가고 싶었지만, 멀지 않다고 하니 걸어가기로 했다. 



걷지 않았다면 놓쳤을 곳, 전주 풍패지관이다. 왜 객사길이라고 했는지 여기를 보고서야 알았다. 



조선초기에 세운 풍패지관(객사)은 전주를 찾아온 관리나 사신의 숙소로 사용하던 곳이라고 한다. 본관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나무 패를 걸어두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이면 여기에 경의를 표했으며,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는 이곳에서 축하 의식을 행하였다고 한다.



풍남문에서 풍남은 풍패의 남쪽이란 뜻으로, 풍패란 중국 한나라 고조가 태어난 곳으로 조선왕조의 발원지인 전주를 그 곳에 비유한 것이라고 한다. 풍패지관의 풍패도 같은 의미라고 한다.




아이들이 전통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방송촬영때문에 그런거 같지는 않다. 안내문에 지금은 열린공간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하니, 누구나 다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거 같다.



전주 객사답게 원래는 건물이 많았다고 한다. 뒤쪽에 넓은 공터가 있던데, 원래 모습으로 복원이 됐으면 좋겠다.



나름 인생사진. 



전주 풍패지관 옆에 있는 저 길은 객사길이다.


오목대를 시작으로 한옥마을, 경기전, 풍남문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남부시장을 거쳐 풍패지관까지 했어야 완벽한 코스였는데, 남부시장을 놓쳤다. 방송에도 나오고 핫한 시장이라고 하던데, 아쉽게 또 놓쳤다. 이번 전주여행에서 못간 전주향교와 남부시장은 다음 기회에 꼭 갈 예정이다. 전주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님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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